일못러에서 벗어나기
서 차장은 입사 15년 차의 구매팀 직원이다. 이미 그의 동료들 중에서는 하나둘씩 팀장을 단 직원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서 차장은 팀장은커녕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일 뿐이다. 제대로 된 업무는 좀처럼 그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 명색이 차장인데 부서 택배가 오면 그가 수령하고, 사무실 정리, 보안 점검 등 온갖 허드렛일이 그에게 주어지고 있다.
사실 그는 지난해에 구매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늘 야근에 시달리고, 잦은 회식에 시달리던 그는 큰 마음먹고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그 결과 지금의 구매팀으로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구매업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가서 배우면 되지 뭐 별거 있겠어?' 이랬던 그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사팀 업무와 구매팀 업무는 너무나도 달랐다. 정확하게 수치를 파악해서 발주하고, 그걸 현장에 인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 그는 온갖 실수를 반복하였다. 100개 발주할 것을 1000개 발주를 넣기도 했고, 구매처와의 소통 부족으로 구매처에서 본사에 클레임이 들어오기도 했다.
팀장은 서 차장에게 더 이상 구매 업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경력도 부족하고 업무 능력이 낮은 그에게 이 일을 맡겼다가는 큰 사고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단순 업무로 밀려나게 된 배경이다.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하는 서 차장이었다. 인사팀에 있을 때 일을 잘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몫 정도는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푸대접을 받는 것이 견딜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 팀장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툭하면 서 차장을 불러 면박을 줬다. 왜 이메일에 이 첨부파일은 안 넣었느냐? 나랑 이야기 안 하고 옆 팀원에게 업무 부탁을 했느냐 등등 정말 별 것 아닌 것들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서 괴롭히고 망신을 주기 일쑤였다.
팀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택배를 찾아왔더니 이 택배는 왜 안 가져왔느냐고 면박 주고, 종이 파쇄를 부탁하기도 하고 이제 서 차장은 신입사원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뒤에서 수근수근대고 팀장에게 다 일러바쳤다. 그리고 차장이 이런 것 밖에 못한다고 자기들끼리 비웃어댔다.
서 차장은 너무나 속상하고 이 상황이 비참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다른 부서로 가고 싶었지만, 이미 지금 팀장이 여기저기에다가 이 사람은 일 못하는 애물단지라고 소문을 낸 통에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퇴사하고 이직을 하고 싶어도 이미 40대 중반인 그가 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서 차장은 도대체 무리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지옥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혹시 당신도 지금 이런 처지에 있지는 않은가?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지는 않은가? 직급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해 눈 밖에 나 있지는 않은가?.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고, 그 일의 성과를 가지고 평가를 받는 곳이다. 그런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는 것은 엄청난 시련이 닥쳐오게 됨을 의미한다. 팀마다 정해진 인원, 즉 TO가 있다. 내가 일을 못하는데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면 남은 팀원들이 팀 업무를 더 가져가야 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팀원들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다른 팀원들이 나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이다.
결국 내 경력에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는 허드렛일만 맡아서 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싫으면 이직을 해야 하는데 필요한 경력을 채우지 못하면 이직도 힘들어진다. 어필할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사면초가 상황에 빠지게 된다. 업무 평가야 내 퍼포먼스가 있으니 나쁘게 받는 것을 감수한다고 치자. 그런데 석연치 않은 차별이나 말도 안 되는 지적도 자주 받게 된다.
"너 이거 또 틀린 거 아니야? 그동안 자료 다 전수조사해서 가져와"
"너 표정이 왜 그래? 내 말이 우스워서 지금 비웃은거지?"
"일은 못하면서 사무실에는 업무 시작 시간 10분 전이나 돼서 오네?"
"그렇게 땀 흘리고 다니니? 외모라도 단정하게 하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니야?"
온갖 것을 가지고 다 꼬투리를 잡히게 되고, 설령 나도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내 이야기는 그저 변명으로만 들을 뿐이다. 나는 아예 형편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고 마음에 안 드는 조그만 일이라도 발견되면 사정없이 물어뜯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직장생활은 더욱 힘들어진다. 사방에 적으로 가득 차게 되고 내 편을 드는 사람이 없다.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이런 일 못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자기 먹잇감으로 삼는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이들은 지나치게 짧은 기간을 주고 일을 다 끝내도록 한다던가, 정보는 하나도 공유해주지 않은 채 일만 띡하고 던져준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려고 하면 "잘 찾아보면 정보 다 있어" 이런 소리만 한다. 답답해지는 것이다. 팥쥐 엄마가 콩쥐에게 하루 만에 밑 빠진 독에 물 다 채워 넣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 휴가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재는 일은 똑바로 못하면서 휴가는 잘도 챙기네?" 이런 비아냥거림과 마주하게 된다. 심지어 하루 시간 내서 건강검진받는 것조차 눈총을 받게 된다. 당연히 내가 누려야 하는 권리인데도 조롱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집에서조차 마음이 편하지 않다. 회사에서 온갖 사람에게 욕먹고 손가락질당하면서 짓눌렸던 감정이 집에 오면 갑자기 싹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모든 것이 다 짜증 나고 귀찮다. 아이들이 같이 놀아달라고 하는 것도, 배우자가 산책 같이 하자고 하는 것도 다 성가시기만 하다. 가정생활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의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적을 당함
- 태도를 갖고 걸고넘어짐
- 은근히 차별당하고 왕따를 경험함
- 허드렛일만 주어짐
- 나르시시스트 상사, 동료에게 괴롭힘을 당함
- 집에 와서까지 후유증이 지속됨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소개드렸지만, 두 가지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단기적 방법, 다른 하나는 장기적 방법이다.
단기적으로는 일 못하는 일못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을 못하면서 위의 차별과 무시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일못러에서 탈출해야 한다.
일 못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일을 잘하려면 일머리, 일센스가 있어야 한다. 이 것들은 사실 타고나는 부분도 있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양육 방식, 가정환경, 내 학습 방식, 자립해서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본 경험 등 인생 전체를 걸쳐 형성된 것들이다. 나이 30살이 넘어서 이 것들을 만회하기란 불가능하다.
10km 중장거리 달리기에서 이미 2km 앞에서 뛰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출발선에서 다리에 모래주머니까지 차고 뛰는 사람도 있다. 이 승부는 보나 마나 뻔하다.
그러나 일 못하는 사람이 몇 가지 단점만 극복하면 남들만큼은 충분히 일 할 수 있다. 평균 수준까지는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평균 수준만 돼도 적어도 50세까지는 그럭저럭 회사를 다닐 수 있다.
태도를 바로잡으면 된다. 사람의 역량은 K(지식), S(기술). A(태도)로 결정된다. 이 중에서 A에 해당하는 태도를 다시 돌아보는 것이다.
- 쉽게 거짓말하고 불확실한 사실을 사실인양 말하지는 않는지,
-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면은 없는지
- 대충 일을 끝내려는 모습은 없는지
- 내가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그 어떤 조언과 충고도 거부하지는 않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위 4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만일 내가 저 4개 중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꼭 개선하자 (개선방법은 다른 글에서 소개하였다) 이것들만 개선돼도 내 업무능력이나 평판은 확 올라간다.
이 부분들이 개선되었다면 이직하거나 팀을 옮기자. 이미 이 팀에서 나는 망했다. 쓰나미 맞은 직후의 해안가를 상상하면 된다. 수많은 잔해 일일이 다 걷어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나미 피해받지 않은 다른 곳으로 옮기자.
이렇게 업무 태도가 개선되어도 사실 생명을 연장한 것뿐이다. 상사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이 50살이 되면 당장 내일 내가 회사에서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직장이다. 더욱이 당신은 직장 체질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루하루 내 단점과 싸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는 살지 말자.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것으로 제2의 인생을 열자.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쳇바퀴 도는 것 같던 은행원 생활을 청산하고 자기 기업을 차려 세계 1, 2위를 다투는 갑부가 된 것처럼 당신도 그런 인생을 시작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직장인의 경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최소 3년 이상은 필요하다. 내 길을 가자. 이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 어떻게 준비했고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자. 만일 전문강사가 되고 싶다면. 내가 어떤 분야의 강사를 할지, 강의 교안은 어떻게 만들지, 책을 미리 써야 하지는 않을지. 발음이나 성량은 어떻게 향상할지, 톤 앤 매너는 어떻게 할지 등등 생각할 부분이 정말 많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을 내어 실제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수입이 확보된 상태에서 다소 느릴 수는 있어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일을 못하는 것은 인사평가에 따라 평가를 받으면 된다. 그 이상의 물리적, 정신적인 피해가 미쳐서는 절대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일을 못하게 되면 참 힘들어진다. 남들에게는 그냥 넘어가는 일들도 일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하나 다 따지고 드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하지 않은 일인데도, 나는 타당한 근거에 따라 한 일인데도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단정 짓고 나를 공격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 성향의 리더나 팀원이 주변에 있으면 더더욱 고달파진다.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차별한다. 주변 팀원들도 그저 방관하거나 심지어 이 괴롭힘에 동참하기도 한다. 나는 조금씩 몸과 마음이 지쳐가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이것저것 노력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며 나 역시 이 상황에 체념하게 되고 무기력하게 변하게 된다.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 당장 이직하하 거나 다른 팀으로 가는 방법, 아예 제2의 인생으로 바로 뛰어드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변해야 한다. 그 어떤 길을 가더라도 내가 먼저 바뀌어야 당당하게 새로운 곳에서 두 번 다시 이런 비참한 꼴을 겪지 않게 된다. 지금 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일단 내가 남들만큼은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약점들을 꼭 고치도록 하자. 앞에서 말한 이 4가지 요인만 개선해도 크게 달라진다.
그렇게 내 약점을 보완하면서 직장에도 적응하고 장기적으로는 조금씩 제2의 인생을 고민해 보자. 그동안은 약점을 고치는데만 신경 썼다면, 제2의 인생은 내 강점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뭔가 신이 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