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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굼뜬 편이신가요?

일못러에서 벗어나기

by 보이저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소설 중에 '모모'라는 책이 있다. 주인공 소녀 모모의 친구 중에는 베포라는 이름의 환경미화원 노인이 있다. 그는 행동이 매우 느리다. 누가 물어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는 법이 없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답을 준다. 이미 물어본 사람은 내가 그런 질문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이다.


거리를 청소하는 속도도 확연히 느리다. 다른 사람들은 두세 시간 만에 다 끝낼 청소를 그는 하루 종일 하고 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법 없이 빗자루를 들고 쓸고 있다. 속도가 느린 대신 그가 지나간 길은 먼저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하기만 하다.


그는 신중하고 꼼꼼하며 사려 깊은 성격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걸 알아주지 않았다. 치매 증상이 있어 저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는 혼자 방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한국에서 느린 것에 대한 반응


소설 모모의 배경이 된 곳은 이탈리아이다. 여유 있고 느린 것으로 유명한 국가이다. 그런 곳에서조차 베포 할어버지처럼 심하게 행동이 느린 경우에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가 지닌 수많은 장점들에는 눈을 감은 채, 행동이 느린 것을 보고 다른 것도 다 엉망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빨리빨리가 일상화된 한국은 어떨까? 눈총 받는 정도가 아니라 조림돌림 받는 수준이 될 것이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굼뜨고 행동이 느린 것은 죄악으로 인식되고 있다. 파란 불이 켜졌을 때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뒤에서 경적이 울리고, 엘리베이터에서도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는 한국에서 느린 것은 사회생활에 큰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행동이 굼뜰 때 나타나는 문제점


일단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고 지적받기 쉽다. 그 일에 후다닥 매달려서 빨리 끝내는 신속성을 요구받는 한국 직장사회에서 필요 이상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업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쉽다. 중국집 짜장면 배달도 '신속 배달'을 모토로 삼는 곳이 많다. 신속한 배달이 되지 않으면 그 가게는 고객 만족과는 거리가 먼 식당으로 취급받는다. 일단 빠른 것은 잘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답답하고 고지식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다. 무엇인가 부탁을 해도 속 시원한 해답을 얻어내기 어렵고, 자꾸 오해가 생겨 피곤하게 만드는 그런 유형의 사람으로 인식되기 쉬운 것이다. 즉 행동이 느리고 굼뜬 것은 개인의 특징일 뿐이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것이다.




행동이 느리고 굼뜬 이유


그렇다면 행동이 느리고 굼뜨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다음 두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1. 신체적 원인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거나 질 좋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몸이 무겁고 뇌 기능이 저하되어 행동이 느려질 수 있다.


그 외 갑상선 호르몬 부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갑상선 호르몬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조절하는데, 이 호르몬이 부족하면 모든 신체 기능이 전반적으로 느려지고 굼떠지는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저혈압일 경우, 뇌와 근육에 충분한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쉽게 피로해지고 기운이 없어져 행동이 느려질 수 있다.




2. 심리적 원인


가장 큰 원인이다. 사실 행동이 느리고 굼뜬 것의 상당한 측면은 심리적인 것에 기인한다. 어떤 심리적인 요인들 때문에 내 행동이 느린 것일까?


1) 우울증: 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넘어, 신체 활동과 사고 속도까지 느려지게 만든다. 신체 전반이 침체되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자주 놓치게 되고, 실수가 많이 나오게 된다.


2) 무기력증: 반복되는 일상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삶의 의욕과 흥미를 잃으면 새로운 행동을 시작하기 어려워지고 움직임이 줄어들게 된다.


3) 불안 및 강박: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결정 장애가 있으면 행동을 망설이게 된다. 특정한 것을 계속 수행하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기에 빠른 실행이 안 되는 것이다.


4) 과도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는 자율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몸을 둔하게 만들고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일을 신속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5) 복잡한 환경: 주변이 어수선하거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행동이 느려질 수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다 보니 우선순위 정리가 안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해결방안



1. 상사가 시킨 업무는 최대한 빨리 하자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상사는 성격이 급하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상위 리더에게 수시로 보고해야 하고 그 자료를 빨리 받아야 보고서를 쓸 수 있기에 밑의 직원들에게 재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사가 시킨 일을 빨리 하지 않게 되면 독촉이 들어온다. 빚쟁이가 빚 안 갚는다고 매일 집에 쳐들어오는 상황과 같다. 일단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상사가 시키는 업무는 최우선으로 처리하자.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지 물어보되, 그 기한에 맞춰서 하기보다 좀 더 속도를 내서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




2. 주변 환경에 관심 갖는 습관을 기르자


누가 박스를 옮겨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 어떻게 하는가? 말 그대로 그냥 박스만 옮기는가? 아니면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도 같이 확인하는가?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누가 이 박스에 있는 물건에 대해 물어볼 경우, 그냥 날랐던 사람은 대답할 수 없게 된다.


재활용품을 버리기 전, 그냥 아무거나 통에 넣는 사람과 내가 어떤 물건을 넣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쌓이면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습관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확인하는 것이 몸에 익게 되어 빨리 처리하면서도 놓치는 것이 없게 된다.




3. 포모도로 기법을 활용하자


포모도로 기법이란, 25분간 집중해서 일하고 5분간 쉬는 것을 반복하는 방법이다.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보통 45분에서 90분 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25분간 집중하라고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연락이 온다. 온갖 알람, 메신저, 단체 채팅방, 이메일 등 계속 연락이 밀려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5분 간은 이런 연락을 끊고 집중해서 일하자. 그 뒤에 메신저를 확인하는 것이다. 정말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경우, 이 방법을 추천드린다.




4. 멀티태스킹은 하지 말자


행동이 느린 사람의 경우, 절대로 멀티 태스킹을 해서는 안된다. 느린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하나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잘해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서툴다.


아예 컴퓨터 창에 지금 당장 하는 업무 관련 1~2개의 창만 띄우자. 나머지는 싹 다 닫아버리자. 그렇지 않으면 신경이 분산돼서 업무처리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5. 지나치게 쪼아대는 환경에서 벗어나자


일 처리 속도가 느리다고 필요 이상으로 독촉하고 망신주는 리더가 있다. 갑자기 일을 휙 던져주고 오늘 퇴근 시간까지 다 끝내라고 말하는 상식 이하인 리더들도 있다. 이런 사람 밑에서 행동이 굼뜨거나 느린 사람은 눈 밖에 나게 된다. 왜 이렇게 느리냐고 매일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되며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런 팀에서는 절대 성과를 낼 수 없다. 나에게 맞는 조직으로 가자. 조금 느리게 일해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어울린다. 그런 곳이 없다면 장기적으로는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내 강점을 찾아 나서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마무리하며


1965년 인텔의 창립자였던 고든 무어는 '무어의 법칙'을 발표했다. 마이크로 칩의 트랜지스터의 수는 매 2년마다 두 배로 용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 속도가 불과 몇 개월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기술이 변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사람들은 빠르게 왕래하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행동이 굼뜨게 되면 낙오자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느린 사람에게 억지로 빠르게 행동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내 지식수준이나 정보 처리 능력,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오는 것이기에 이게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그냥 나 이렇게 살다 죽을래 이러면 진짜 회사에서 죽을 수도 있다. 직장인으로서의 생명이 끊어진다는 말이다. 상사가 시킨 것은 일단 가장 최우선으로 하자. 그리고 마감시간 맞추려고 말고 빨리 마무리하자. 언제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치고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딱 그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자. 그리고 평소에 주변에 관심을 갖자. 그래야 내 기억을 기반으로 바로 떠올려서 신속하게 일을 할 수 있다.


내 노력으로 100퍼센트 해결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70퍼센트는 바로 잡을 수 있다. 그 정도만 돼도 느리고 굼뜨다고 욕먹을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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