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박세리 선수 부친 논란)

지나친 보상 심리가 가져오는 부작용들

by 보이저

진경 씨가 중학생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 퇴근길에 쓰러진 아버지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원더우먼이 되셨다. 낮에는 보험사 영업사원으로, 밤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시면서 진경 씨를 억척스럽게 돌보셨다.


진경 씨도 어머니의 그 고생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목숨 걸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 덕분에 유명 대학교 의대에 진학하여 기나긴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끝마치고 여엿한 대학병원 전문의가 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인간승리의 주인공 스토리이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진경 씨가 결혼해서 분가해 살림을 차렸는데 어머니의 참견은 계속되었다.


"넌 반찬을 이것밖에 못 만드니?"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는데 아침식사 하나 제대로 못 차려주니?"

"너한테 의사 남편 솔직히 과분한 거 알지? 그거 알면 남편에게 더 잘해야지"


처음부터 어머니는 며느리를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5년 연애 후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지만, 지금의 아내는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알아줄만한 집안 출신 며느리를 기대했던 어머니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보험사 영업사원할 때 진상 고객들에게 그렇게 못 볼 꼴 다 겪으면서도 너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이 악물고 버텨낸 거였어. 그런데 나한테 서운하게 하면 안 되지. 며느리 교육 좀 잘 시켜라"


진경 씨는 고부갈등 상황이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양쪽 사이에 끼어서 늘 눈치만 보는 진석 씨였다. 아내는 아내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진경 씨에게 하소연하고 있으니 너무나 괴롭기만 하다.



진경 씨 어머니의 심리


진경 씨 어머니에게 진석 씨는 어떤 존재일까? 단순한 아들이 아닐 것이다. 남편이자 애인이자 삶의 모든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홀로 힘들게 자식을 양육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성공했다는 것을 누가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도 존재한다. 그래서 더욱 진경 씨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이 갈등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런 스토리를 가진 아침 드라마를 많이 접해보았다. 결국 새드엔딩으로, 파국으로 끝나게 된다. 사람의 자존심은 유리잔과 같아서 한 번 금이 가게 되면 테이프를 칭칭 감아도 머지않아 다시 물이 새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즉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이런 보상심리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박세리 선수와 부친과의 갈등' 이야기이다.




박세리 선수와 아버지와의 갈등


박세리 선수는 한국 골프 레전드이다. 불과 중학교 3학년 때 국내대회(KLPGA) 첫 우승을 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아마추어임에도 당시 한 해에 있던 11개 대회 중 4개 대회를 우승하는 어마무시한 능력을 선보였다.


세계무대로 진출한 뒤에는 통산 LPGA 25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한참 IMF 금융위기로 힘들어하던 당시 국민들에게 호수에 빠질 뻔한 공을 양말을 벗고 치던 모습은 양희은의 '상록수' 노래 배경이 될 정도로 국민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녀의 성공 배경에는 아버지의 헌신이 있었다. 박세리 선수 아버지는 혹독하게 딸을 훈련시켰다. 늘 딸의 경기에 골프백을 메고 쫓아다니면서 딸 뒷바라지를 했다. 심지어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찌검도 서슴지 않았고, 제대로 스윙폼이 나올 때까지 잠도 재우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프로 골프선수 하나 키우는데 기본 5억 원이 든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예나 지금이나 골프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이다. 박세리 선수 아버지는 딸의 성공에 자기 인생을 바쳤던 것이었다. 어쩌면 딸의 성공을 통해 못다 한 자기의 꿈을 이루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뜨거운 부성애에 대한 휴먼 다큐일 것이다. 그러나 부녀간에 심한 갈등이 있었고, 이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나오게 되었다.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두고 새만금개발청이 박세리 선수 아버지에게 사업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참여에 부정적이었던 딸 대신 본인이 박세리 장학재단의 도장을 가짜로 파서 인장을 날인했던 것이었다. 사문서위조인 셈이었다.


사실 박세리 선수 아버지가 무단으로 딸의 이름을 사용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딸을 보증인으로 내세워 수많은 대출을 받았고,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딸에게 기생하여 온갖 혜택을 다 누리려는 파렴치한 아버지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이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지금의 박세리 선수를 만든 사람이다. 내가 이 정도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 힘으로 딸을 지금 위치까지 올려놓은 것이니 내가 이 정도 요구하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이냐, 딸이 나에게 이러는 게 오히려 배은망덕한 행동 아니냐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눈감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박 선수의 아버지 태도를 볼 수 있다.

박세리 선수와 아버지


기존 멤버들이 부리는 텃세 사례


문제는 이런 일이 비단 박세리 선수 부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교회가 개척교회에서 중견교회로 성장하는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성장통이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초창기 개척교회부터 함께 했던 원년 멤버들 문제이다.


그분들은 교회를 일구었다는 자부심이 워낙 강하다 보니 새로 온 신도들이 있으면 종종 텃세를 부린다. 예배 때 태도나 심지어 옷차림 이런 부분까지 터치하게 되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새로 온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렇게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이다.


회사들도 이런 사례들이 있다. 조그마한 벤처기업으로 시작하여 성장한 회사들은 초기 멤버들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그만 사무실 하나 빌려서 밤샘하며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계약을 따냈던 일, 회사가 무너질 뻔했던 위기에서 힘을 합쳐 회사를 살려냈던 것, 이 공통분모 속에서 하나로 똘똘 뭉쳐있다.


문제는 회사가 커지고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온 이후이다. 이 사람들은 회사에 빨리 적응해서 성과를 내고 싶은데, 기존 멤버들이 협조적이지 않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정보도 자기들만 공유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새로 온 사람들을 배제하게 된다.


텃세가 심한 조직문화 탓에 새로운 사람들은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래지 않아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렇게 회사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고인 물들로 운영되고 만다.




보상을 기대하는 이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과거에 고생했던 것에 대해 그토록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보상을 기대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인간은 내가 고생한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사회 심리학의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투입한 노력에 비해 보상이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불쾌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고통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긍정적인 결과가 따라야 정의로운 것이라고 믿는다. 이게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왜곡된 방법으로 그 욕구를 충족하려고 하게 된다.


새로 합류한 사람들은 그런 고생 없이 이미 갖추어진 환경 하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이다. 나는 고생했는데 이 사람은 그런 고생 없이도 나랑 똑같은 것을 누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고생한 것을 이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주지도 않으니 이 분노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사람들을 차별함으로써 내 가치를 높이고자 하게 된다.




보상 심리가 가져오는 부작용


이런 보상심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사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우리가 회사에서 뼈 빠지게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런 보상도 없고 오히려 승진에서 누락된다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보상은 자동차에 있어 연료와도 같다. 연료를 넣지 않고도 무한동력 마냥 계속 갈 수 있는 차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은 보상 없이 계속 달릴 수 없다.


그러나 이 보상에 대한 욕구가 앞서 보았던 박세리 선수 부친 사례나 개척교회 초기 멤버, 벤처기업 초기 멤버 사례처럼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되면 곤란하다. 발전을 저해할뿐더러 내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요구하게 됨으로써 반발을 사게 되기 때문이다.


"주고도 욕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헌신하고도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거나 생색을 내는 바람에 도움을 받은 사람이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게 도를 넘을 때는 제삼자에게도 생색을 내게 된다. 조직에 늦게 합류한 팀원들에게도 내 공로를 알아달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구성원 간의 조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과거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멤버들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아웃사이더 마냥 겉돌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게 충족되지 않으니 불만을 갖게 되고 결국은 조직을 떠나게 되고 만다. 이런 조직은 늘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게 된다. 뽑으면 나가고 다시 뽑으면 또 나가고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부에서 전문성 있는 인재 수혈이 어려워진다. 채용시장에 소문이 다 나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은 사람도 도가 지나친 요구를 계속 받다 되면 점점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만날 때마다 생색을 내며 밥 사라, 선물은 없느냐 과도한 요구를 반복하는데 질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너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그렇게 그 사람은 도와주고도 욕을 먹게 된다.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 대처 방법


도움의 대가로 과도한 보상 또는 나를 알아주기를 지나치게 요구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인정욕구가 강하며 대개 자신의 선의를 '부채'로 활용해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미안한 감정 객관화하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상대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할 의무는 당신에게 없다. 진정한 도움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대가를 바라더라도 이미 급여를 받았고 그에 따른 승진을 했다면 그걸로 끝난 것이다. 그 이상의 보상을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거래'가 된다.


상대의 요구를 거절한다고 해서 당신이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선을 넘은 쪽은 상대방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죄책감이나 미안함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2. 고마움의 표현과 한계 설정을 동시에 하자


상대의 도움 자체는 인정해 주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도와준 건 정말 고마워. 고마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하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들어주기 힘들 것 같아."

"네가 신경 써준 덕분에 잘 해결됐어. 내가 보답으로 식사 한 번 대접하고 싶은데, 근데 다이아몬드 목걸이라.. 사실 그건 부담스러워."


이것저것 핑계 댈 필요 없다. 고마움을 먼저 표시하되 그건 안된다고 단호하고 명확하게 선을 그으면 된다. 말이 길어지면 이 사람은 설득하면 통할 것 같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된다.




3. 적정 수준의 보상을 먼저 제안하기


상대가 구체적인 요구를 하기 전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보상을 먼저 제안하여 상황을 주도하자.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의 간 보기에 계속 끌려다니게 된다. 커피 기프티콘, 식사 대접, 혹은 작은 선물 등 사회 통념상 적절한 수준에서 먼저 감사를 표하고 상황을 마무리 짓는 인상을 주는 것이 좋다. 이게 잔불 정리 안된 산불 마냥, 계속 상대방이 요구하게 되면 피곤해진다.


그리고 보상은 짧고 굵게 끝내자. 할부금 갚아나가듯이 길어지게 되면 아까운 생각이 들게 되고 어느 순간 고마운 마음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4. 도움이 계속되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기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가급적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상대가 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다면, "마음은 고맙지만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어. 나중에 정말 필요하면 그때 부탁할게" 이렇게 미리 차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5. 손절도 고려하자


만약 무리한 요구가 반복되고 견디다 못해 보상을 거절했다고 하자. 이때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럴 수 있어?" 이렇게 나온다면 이 관계는 손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애초에 보상을 기대하고 도와준 것이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한 것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구사항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화제를 돌리자. 그리고 멀리할 수 있다면 최대한 멀리하자. 가까이할수록 피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람이 가족이나 직장상사와 같이 떨어뜨릴 수 없는 사람이라면, 개인적인 친분을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말만 나누는 무미건조한 관계로 지내도록 하자. 그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




마무리하며


박세리 선수가 오죽 견디지 못했으면 그런 강수를 두었을까 싶다. 아버지가 본인의 공을 강조하며, 딸의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고 보증을 서는 것을 처음에는 눈감아줬을 것이다. 박세리 선수가 골프 레전드가 되는 데 있어 아버지의 공로가 컸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자 박세리 선수도 눈물을 머금고 칼을 빼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보상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사람은 고마움도 증오로 바꾸게 할 만큼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개척교회나 벤처회사, 새로 생긴 팀에서 고군분투하며 조직을 궤도에 올려놓은 분들.. 당신들의 수고와 헌신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말을 해야 알아주는 자기 PR의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게 지나치게 되면 안 하는 것만 못하게 된다.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 보상요구가 변형되어 새로 오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텃세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 조직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만일 내가 이 조직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생각부터 버리자. 그래야 새로운 사람들이 잘 적응하게 되고 조직이 더 건강해진다. 죽도록 고생하고 훌륭한 결과까지 냈음에도 나중에 욕먹는 안타까운 상황은 만들지 말자. 얼마나 억울한가? 적당히 드러내면 된다. 그 수위 조절을 못해서 도리어 망하는 상황은 절대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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