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 다시 들여다보기
민수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화광이다. 국내, 국외에서 출시되는 모든 영화 중 그가 보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는 영화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한다. 물론 그 목적 때문에 영화가 미쳐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영화가 좋을 뿐이다.
민수 씨는 어릴 때 동네 허름한 단관 영화관에서 조조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홀로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그 기쁨과 환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영사기가 철커덩 돌아가면서 필름 가장자리에 치지직 스키드 마크가 군데군데 찍혀서 재생되던 모습.. 그때 그는 영화와 내가 한 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민수 씨가 그 이후 시청한 영화는 무려 3,000개가 넘었다. 유명작품뿐 아니라 저예산 독립영화, 예술영화들도 섭렵한 그였다. "이창동 감독이 찍은 영화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이렇게 누가 물어보면 마치 논문 한 편을 읽어나가듯이 막힘없이 자기주장을 전개하는 민수 씨였다.
신기한 것은 영화 3,000편을 보고 나니 그게 머릿속에서 저절로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몽타주 기법을 주로 사용한 영화, 롱테이크 촬영 기법을 활용한 영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던 과도기 시기의 영화 이런 식으로 카테고리가 형성되어 머릿속 회로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로 보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양이 쌓여가면서 한 편의 영화 백과사전처럼 정리되는 것이 민수 씨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제는 정말로 할리우드 키드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1987년에 삼성 2대 회장으로 부임하고 남긴 유명한 어록이 몇 가지 있다. 이 중 기억나는 어록이 하나 있다.
맞는 말이다. 제대로 만들지 못한 물건은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소비자들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은 연구개발에 아낌없는 돈을 투자하였고,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양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머릿속에 지식이 있어도 이걸 몸으로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골프를 배울 때 골프 교본 책이나 동영상을 아무리 많이 봤어도, 연습장에서 직접 스윙해보지 않으면 절대 교과서대로의 폼이 나오지 않는 것과도 같다.
계속 골프채를 휘둘러봐야 한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잡히도록 골프채를 잡고 휘둘러야 그게 내 것이 된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엑셀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도 같다. 처음 해보연 표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계속 다루다 보면 고급함수를 활용해서 다른 자료 수치를 끌고 와서 분석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그만큼 양이 쌓인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의 경우, 생전에 무려 2천 개가 넘는 발명을 했다. 오직 발명 하나만을 위해 자기 전체 인생을 바친 것이다. 이 중에서 실용화된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전구, 축음기 등 큰 히트를 친 발명품들은 수많은 실패작들 뒤에 나온 걸작들이다.
만일 에디슨이 2,000개의 발명품을 만들지 않았다면 전구나 축음기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발명이 있었기에 그중에 원석이 발굴된 것이다.
금 1g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돌을 광산에서 캐내야 할까? 광산에 함유된 금의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품위 광산이라 할지라도 200kg의 돌을 캐어야 겨우 금 1g을 얻을 수 있다. 나머지 199,999g의 돌은 버려지는 것이다. 금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돌을 캐어야만 한다.
성경 읽기도 마찬가지이다. 한두 번 읽어가지고는 그 안에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왕 중 아하스는 어떤 일을 했고, 아비야는 어떤 일을 했고.. 이런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이 문제는 많이 읽으면 해결된다. 5독, 10독이 되는 순간 체계가 펼쳐진다. 사랑에 대한 말씀은 뭐가 있지? 궁금할 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이 요한복음 3장 16절 등등 관련 구절이 쭈르륵 떠오르게 된다.
이처럼 좋은 질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일단 충분한 양이 쌓여야 한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였던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1만 시간의 법칙'에서 특정 분야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을 꼬박 투자했을 때 무려 10년이 걸리는 엄청난 시간이다.
이 책은 출간 이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만 시간이 정확한 수치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노력을 강조하는 긍정론자들이 한 무리였다. 1000시간만 들여도 전문가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2만 시간을 들여도 안 될 사람은 안된다는 부정론자들도 있었다.
논쟁을 떠나서 충분한 노력이 쌓여야 성과가 나타난다는 말은 옳은 주장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충분한 양이 축적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애는 머리는 참 좋은데 공부를 도통 안 해요!" 고슴도치도 제 자식 털은 부드럽다고 말하는 부모의 생각이겠지만, 아이의 머리가 진짜로 좋다고 하더라도 노력 안 하면 그건 말짱 꽝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1만 시간이 딱 되는 순간, 없던 능력이 뿅 하고 생기는 건 절대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들이 있다. 무식하게 1만 시간 뼈 빠지게 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당연히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면 효율적으로 양을 쌓아나가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숙고된 연습(Deliberate Practice)' 개념을 통해 그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숙고가 무엇일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아니다 보니 의미가 잘 안 들어올 수 있다. '심사숙고'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숙고의 의미가 들어온다. 어떤 일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다는 뜻인 것이다.
무식하게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롭고 효율적으로 체계에 맞춰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 못하는 영식 씨 사례를 통해 숙고된 연습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영식 씨는 재무회계팀에서 금쪽이로 통한다. 사원 3년 차로 내년에 대리가 될 연차인데, 업무수행능력이 너무나 미흡하기만 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늘 대충 흘려듣다가 엉뚱한 소리 하기 일쑤이고, 상사가 지시한 것은 꼭 한 두 개씩 빼먹고 처리하고는 한다. 지난주에는 대금지급하면 안 되는 압류업체라고 상사가 신신당부했는데, 여기에다가 지급했다가 큰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금쪽이 영식 씨가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했던 것이다. 한꺼번에 다 해결하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하나씩 정복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회사 생활의 기본은 원활한 의사소통! 영식 씨는 잘 알아듣는 방법부터 익혀 나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전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전략을 바꾸었다. 들은 말을 바로 내 언어로 바꾸어서 되묻는 방법을 연습해 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과 대화할 때도 이 방법을 써먹었다. 하루에도 열 번 넘게 이 연습은 이루어졌다.
"설거지할 때는 기름때 묻은 그릇은 먼저 휴지로 기름 닦아내고 물로 씻어야 돼. 그리고 떡가루 같은 거는 싱크대에 그대로 버리면 수채구멍 막히니까 별도로 버리고. 세제는 이번에 새로 산 걸로 써"
평소 같으면 영식 씨는 아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영식 씨는 그러지 않는다. 그가 이해한 언어로 다시 물어본다.
"기름 묻은 건 먼저 휴지로 닦고, 떡가루는 싱크대에 버리지 말고, 세제는 새 걸로.. 이거 맞지?"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혹시 쥐가 밤에 영식 씨 손톱 먹고 영식 씨로 변신한 게 아닐까? 영식 씨는 어디 창고에 감금된 건가?
"응.. 맞아. 웬일로 이렇게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대?"
"앞으로 달라지기로 했어. 이제 이렇게 리마인드 하면서 기억할 거야"
영식 씨는 티브이를 보면서도 내용을 요약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말을 AI로 녹음해서 요약해 달라고 하고, 자기가 정리한 내용과 비교해보고는 했다. 처음에는 싱크로율이 절반도 안되었는데 3개월이 지난 지금은 90퍼센트 가까이 되었다.
이제 회사에서도 영식 씨는 말귀가 밝아졌다. 누가 말하면 이제 일부러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잘 정리가 된다. 심지어 마인드맵을 하듯이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로 카테고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수많은 듣기 및 정리 훈련 덕택이었다. 양이 수북이 쌓이니 자연히 질이 향상된 것이다.
영식 씨는 그저 노력만 많이 한 것이 아니다. '숙고된 연습'을 많이 한 것이다. 숙고된 연습은 안데르스 에릭센이 제시한 개념으로, 다섯 가지 핵심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말귀를 잘 알아듣겠다"는 숙고된 연습이 아니다. 영식 씨처럼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리마인드 하고 이걸 AI가 녹음, 정리한 자료와 비교해서 90퍼센트 일치 수준까지 올리기" 이런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너무 쉬우면 실력이 늘지 않고, 너무 어려우면 좌절하게 된다. 현재 내 실력보다 약 10~20% 정도 어려운 수준에서 작업해야 한다. 손을 최대한 뻗었을 때 탈락 말락 한 지점의 목표가 가장 적당하다.
"지금은 50퍼센트 밖에 일치율이 나오지 않지만, 딱 3개월 만에 90퍼센트까지 끌어올릴 거야!"
아슬아슬하면서도 도달 가능한 난이도의 목표가 적당하다. 이 안락지대를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라고 부르는데, 이 안락지대를 벗어난 난이도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바로 알아야 교정할 수 있다. 혼자서 체크하면 객관적인 진단이 어렵다. 내가 어떤 점이 문제이고, 이것 때문에 상대방을 당황하게 했던 일들은 없었는지 물어보자.
개선하기 시작한 경우에는 지금 내가 과거보다 얼마나 좋아졌는지 물어보자. 영식 씨라면 직장동료나 와이프에게 진전 상태를 수시로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숙고된 연습은 정신적으로 매우 소모적인 활동이다. 대충대충 반복하는 5시간보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짧고 굵게 1시간이 훨씬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영식 씨라면 하루 네 번, 직장에서 두 번, 집에서 두 번 이렇게 대화내용을 잘 듣고 핵심이 무엇인지 요약해 본다면 가장 이상적인 횟수일 것이다. 그 네 번을 제대로 정리하고 잘 정리했는지 분석하면 된다.
피드백을 통해 발견한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다시 반복하자. 이때 중요한 것은 안 되는 부분만 떼어내어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은 한 번 실수하는 것은 계속 실수하는 경향이 있다. 수능공부할 때 오답노트를 정리하다 보면 한 번 틀린 문제는 다시 풀면 또 틀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식 씨의 경우, 유독 팀장과 대화할 때 놓치는 내용이 많다면 어떤 포인트에서 자꾸 놓치는지 체크해 보자. 그리고 원인도 분석해 보자. 팀장이 싫다 보니 대화하기가 싫어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팀장이 말을 빙빙 돌려서 하기에 핵심 파악이 어려워서 그런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원인을 알고 팀장과의 대화 때는 녹음 앱을 켜놓기 이렇게 대책을 마련한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영식 씨 사례를 보면 내가 가진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숙고된 노력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 없이 그저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절대 성과를 낼 수 없다.
특히 직장에서 일을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숙고된 연습이 매우 중요하다. 영식 씨처럼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요약, 정리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급한 상황에서 실수가 많다면 급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내가 뭘 자주 실수하는지 체크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게 바로 숙고된 연습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내가 숙고된 연습을 한다면 1만 시간의 법칙은 분명 맞다. 잘만 한다면 5,000시간만 갖고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한 번 시작해 보자. 나 역시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