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기업별 고유한 조직문화 살펴보기
얼마 전 아시안 U-23 축구대회가 있었다. 준결승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0대 1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사실 일본은 21세 이하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2년 뒤 올림픽에 대비하여 어린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은 두 살이나 어린 일본 선수들에게 보기 좋게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
사실 40년 전에는 한일전 축구 전적은 압도적인 한국의 우위였다. 일본에게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된다는 반일감정 탓에 일본을 상대로는 객관적인 실력 이상의 놀라운 저력이 발휘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세대가 바뀌기도 하였고 지금 한국 축구는 냉정하게 말해서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갈수록 출산율은 하락하는 데다가 자녀들에게 운동선수를 시키려는 부모들은 줄어들고 있다.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은 데다가 학업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보니 중간에 공부로 진로를 바꾸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선수 저변이 너무나 부족하기만 하다.
체력, 무게중심, 볼 키핑, 패스 등 기본기 위주로 착실하게 배우기보다는 당장 실전에서 써먹기 좋은 개인기 위주로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니 프로에 와서도 기본기가 부족해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당장 실전에서 써먹기 좋은 기술은 잘 알아도 의외로 기본기는 부족한 것이다.
일본은 어떨까? 80년대까지 일본은 한국축구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축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게 되었다. 프로축구 리그인 J리그를 출범하였고, 유소년 축구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수많은 중, 고등학교에서 수많은 축구선수들이 체계적으로 기본기부터 착실하게 배우고 있다. 좋은 기술은 최상의 환경에서 학습된다는 가치 아래 겨울에도 푸르른 천연잔디가 자랄 수 있는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중국은 어떨까? 축구굴기를 주장하면서 벌써 30년 넘게 축구에 집중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투자방향은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 해외의 유명한 축구선수들을 자국 대표팀에 귀화시켜 실력을 끌어올리고자 하였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게 되었다.
반면 유소년 축구에 대한 지원은 빈약하기만 했다. 중국은 13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인구대국이지만 유소년 축구선수 숫자는 부족하기만 하다. 평범한 농민공 자녀들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 팀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소수 엘리트들을 집중 육성하여 해결하는 방식으로 추진한 중국 정부였다.
민간이 추진하지 않고, 중국정부가 주도적으로 축구 발전을 추진한 것도 중국만의 특징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축구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중국의 자존심을 걸고 축구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만들어내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지도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 중국이 월드컵을 진출하는 일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월드컵 최종예선은커녕 2차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심지어 2026년 월드컵 예선 때는 일본에게 0대 7로 대패하여 축구팬들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중일 이 세 나라를 보면 축구를 대하는 각국의 입장이 묘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당장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선호한다. 차근차근 기본기부터 마스터하는 단계 별 학습보다는, 속성으로 빨리 실전에서 활용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적이 좋아야 중, 고등학교 감독들도 자리를 오래 보존할 수 있고 선수들도 프로팀 스카우터들의 눈에 더 많이 뜨일 수 있다.
축구를 사랑해서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축구 기술을 몸으로 터득하는 모습,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빨리빨리 문화가 축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한 두 명의 에이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한국 축구의 특징이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과 같은 슈퍼 에이스들이 먼저 센세이션을 일으키면 많은 유망주들이 비슷한 길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준척 여러 명이 이끌어가기보다는 강력한 에이스 몇 명이 진두지휘하는 스타일이 한국이다.
일본은 축구에 있어서도 장인정신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기초를 중시하기에 단계별로 하나씩 습득해 나가는 것을 중시한다. 드리블, 패스, 볼 트래핑, 슈팅 등 기본부터 마스터하고 올라가는 것을 중시한다.
시설이 완벽해야 실력이 제대로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헝그리 정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시설을 갖추고 장비를 구비하는데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다. 사시미 칼도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듯이, 용도에 맞는 설비를 갖추는데 초첨을 맞춘다. 기초체력이나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가 축구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손흥민과 같은 슈퍼스타는 없지만, 준척급 실력을 가진 실력자들은 상당히 많은 것이 일본 축구팀이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국가대표팀 여러 개 운영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움직인다. 중화사상이 축구에도 뿌리 깊게 박혀있어서 축구를 통해 국위를 선양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공산주의 체제 특유의 중앙정부식 통제는 축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망주 발굴보다는 소수 엘리트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며, 단시간에 안 되는 건 외부에서 수혈한다. 중국축구 국가대표팀은 외국인 귀화 선수들이 공격, 수비를 도맡아 한다. 내부에서 역량이 부족하면 다른 나라가 가진 기술을 갖고 오고 사람을 데려오는 것, 그게 중국의 방식이다. 자연히 이런 방식은 기존 중국선수들과의 융화 측면에서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스포츠는 그 나라의 성격을 놀랍도록 잘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스포츠뿐이 아니다. 국가마다 회사마다 심지어 가정마다 고유한 색깔이 존재한다. 이 색깔을 이해해야 그 조직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축구에서 알아본 각 국가별 스타일은 사회 전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한국은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속성 스타일을 선호한다. 스파르타식 입시학원이나 족집게식 과외가 큰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뛰어난 사람 몇 명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축구와 같다. 과거 황우석 교수가 그랬고 한강 작가나 김연아 선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람들이 앞에서 이끌어가면 불모지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개척한 길을 따르게 된다.
과학 분야 역시도 오랜 기간 연구해야 비로소 성과가 나오는 기초과학 대신, 기업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응용과학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다. 한국이 아직 과학 쪽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이런 환경 영향이 크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떨까? 기업 역시도 고유의 문화가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대기업들인 삼성, 현대, 한화, LG는 각자 고유한 문화가 있다. 구성원들은 여기에 큰 영향을 받게 되고 행동 하나하나를 이 규율에 따라 하게 된다.
풍문으로만 듣고 각 회사문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과거에 다녔거나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 두 곳의 특성을 경험자 입장에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삼성의 경우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 해마다 계열사 별로 돌아가면서 경영진단을 받는데, 몇 달간 그룹에서 조사관들이 파견되어 회사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지 조사를 하게 된다. 이때 걸리게 되면 짐을 싸서 곧바로 집으로 가야만 하다. 그만큼 철저하게 하나하나 다 관리하는 게 삼성이다.
LG는 인화경영을 중시한다. 시스템 중심, 관리 중심이라기보다는 원만하게 사람들끼리 협의하며 어울릴 줄 알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중시한다. 경쟁 측면에서도 삼성보다는 LG가 덜한 편이다. 실제 LG의 경우 정년까지 근무하는 직원들도 상당히 많을 정도로 한 번 직원은 끝까지 같이 가는 문화가 강하다.
삼성과 LG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회사 문화가 이처럼 다르니 일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과를 빨리 내야 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과, 직원과의 유대관계를 중시하는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일에 대한 접근법이 다른 것이다.
같은 회사라도 팀에 따라 이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리더의 성향에 따라 팀 문화가 정해지는 것이다. 서로 감시하면서 뒤에서 흉보는 문화에서는 늘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설령 실수해도,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해해 주는 문화 속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훨씬 더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가마다, 회사마다, 심지어 팀마다 각기 문화가 다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형성된 문화를 내가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환경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무실 안팎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을 먼저 파악하자. 각 회사, 부서마다 암묵적인 룰이 있다. 여름철에 반바지 차림도 인정해 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양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즈니스 캐주얼 정도는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들도 있다.
업무 지시가 주로 카톡이나 팀즈와 같은 메신저로 이루어지는지, 구두로 이뤄지는지, 아니면 공식적인 문서나 메일 위주인지 관찰해 보자. 실수를 했을 때 리더가 조용히 회의실로 불러서 딱 그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만 간결하게 이야기하는지, 다른 사람들 다 있는데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과거의 일까지 다 끄집어내서 망신주는 분위기인지 살펴보자.
의사결정은 상향식(Bottom-up)으로 구성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분위기인지, 하향식(Top-down)으로 까라면 까라는 식의 권위적인 분위기인지 살펴보자. 권위주의적인 부서의 경우 다 같이 식사하러 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한다. 이 조직은 식사 때 어떤 규칙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은 분위기를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팀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는 팀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팀장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출근은 몇 시까지 하면 되고, 칼퇴해도 눈치 주는 분위기는 아닌가요?"
"의사소통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이렇게 잘 모르는 것은 하나씩 물어보자. 잘못 넘겨짚는 것보다 두 세 사람을 통해서 확인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도대체 이 조직은 왜 이러지? 싶은 문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 다니던 회사는 회장이 직원들은 근무 시작 최소 30분 전에는 사무실에 앉아있게 만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런다고 추가 근무 수당도 안 줄 거면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일 내가 그때 이 회사는 전근대적이고 뒤떨어져서 직장문화가 개판이라고 한 소리 했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동료들이 "너 멋있다! 브라보!" 이랬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뒤떨어진 회사라면서 이런 회사는 왜 들어와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일단 그 조직의 시스템과 문화를 존중하자. 그 회사의 경우는 생산직 직원들이 "우리는 토요일도 일하는데 사무직 직원들은 주 5일 편하게 사무실에서 근무한다"는 불만이 큰 탓에 회장이 더 사무직들을 쪼아댄 것이다. 생산직 눈치를 본 것이다. 이렇게 회사의 문화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전 직장에서는 이렇게 했는데..."라는 말은 절대 금물이다. 전에 다니던 대기업은 회식도 별로 없고, 의사표시도 자유로웠는데 이 회사는 작은 회사라 부족한 게 너무 많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반발을 사게 된다. 불만은 속으로 생각하고 내가 조금씩 바꿔 나가도록 하자. 그게 지혜로우면서도 합리적인 행동이다.
축구는 그 나라 문화의 축소판이다. 기본기부터 강조하며 시설 구축에 투자하는 일본, 한두 명의 에이스에게 의존하며 금방금방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중시하는 한국, 외국인 귀화선수들을 충원해서 전력을 강화하고 정부가 직접 컨트롤하는 중국.. 각각의 국가들은 고유의 특징이 있다.
놀랍게도 이 한중일 삼국은 사회 전반의 시스템도 축구와 유사하게 돌아가고 있다. '모 노쓰쿠리'로 통하는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일본, 신기술은 빨리빨리 습득하여 바로 실전에 활용하는 한국, 해외 우수인재와 기술은 불법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으며 정부 주도로 다 쓸어오는 중국.. 이게 삼국에 내재된 문화이다.
이런 고유의 문화는 회사 안에도 다 존재한다.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그 조직의 임원, 팀장 성향에 따라 조직문화는 천차만별이다. 그 문화는 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걸 섣불리 비판하거나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문화라는 나무는 뿌리가 워낙에 깊게 내려가 있기에 이걸 모종삽 한 자루 들고 파내려고 한다고 뿌리가 제거될 리 없다.
스포츠 하나에도 이렇게 재미있는 원칙이 담겨 있다. 그래서 스포츠를 보면 그 나라 전반적인 문화 특성을 알 수 있다. 축구가 '그깟 공놀이'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 축구가 지금 다소 침체기인데 이번 월드컵에서 부디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