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
내가 사는 평촌 신도시는 안양시에 속해있다. 안양시는 그 어떤 시장도 해내지 못한 숙원 사업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경부선 철도 지하화' 사업이다. 안양시는 이 경부선 철도로 인해 도시가 두 동강이 나있다.
가뜩이나 산도 많고 군사 시설들도 많은데 철도까지 도시를 가르고 있으니 신도시나 공업단지 개발이 어렵다. 경부선 철도는 1호선 지하철부터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 심지어 화물열차까지 쉴 새 없이 지나가는 통에 열차 소음이 엄청나다. 자연히 그 주변으로는 아파트 개발도 어렵고 사람들도 잘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없으니 상권도 잘 형성되지 않고 그 주변은 그냥 버려진 땅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 때문에 수 십 년 전부터 경부선 철도를 지하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철마다 끊임없이 제기되고는 한다. 철도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이상 도시개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를 지하 화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다. 지하철도 다녀야 하고 여객 열차, 화물열차까지 모두 다니기에 철도를 여러 개 설치해야 한다. 중간중간 대피선까지 만들어야 한다. 디젤 기관차는 엄청난 매연을 쏟아내는데 그게 터널 속에 고이는 순간 승객들은 감당하기 힘든 매연에 시달리게 되니 환기도 신경 써야 한다.
안양시가 하고 싶어 한다고 지하화 사업을 쉽게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양시 구간만 지하화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서울시 구역들, 안양시, 수원시, 천안시 등 지역들도 같이 해야 한다. 몇 개 시, 군 지역만 하게 되면 "왜 우리는 빠뜨리냐, 수도권만 사람 사는 곳이냐?" 불만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하다가는 부산까지 전체를 지하화 해야 할 판이다. 이러다 보면 경부선뿐 아니라 호남선, 장항선 등 다른 철도도 다 지하화 요구가 나오게 된다.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이 아닌 것이다.
갑자기 경부선 철도 지하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떤 장애물이 내 앞에 버티고 있는 경우, 이걸 극복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장애물을 뛰어넘어라, 고난을 극복해라, 하면 된다! 이런 구호가 빗발치지만, 세상에는 해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걸 가지고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이렇게 폄하할 일도 아니다. 뭘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삶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떡하니 버티고 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수민 씨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수민 씨는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40대 후반의 팀장이다. 고등학생 아들, 중학생 딸을 둔 가장으로 쳇바퀴 돌아가는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회사를 위해 일하고 가족들을 책임진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책임감 있는 수민 씨이다.
그런데 최근 수민 씨는 너무나 골치 아픈 어려운 일들을 겪고 있다. 우선 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억력이 나빠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수민 씨를 알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부터는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수민 씨를 보고도 "누구세요?" 물어보고, 심지어 손주들을 보고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느냐고 외부인 취급을 하기도 했다.
수민 씨가 어린 시절, 산업재해 때문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억척스럽게 일하던 어머니 었다. 그렇게 강인한 어머니가 치매로 자식, 손주 얼굴도 이제 못 알아보다니... 수민 씨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를 수민 씨 집에 모셔서 돌보고 싶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용접사였던 아버지는 감전사고로 오른팔을 절단해야만 했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의 아버지가 치매 노인을 한 팔로 돌보게 하는 것은 안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데려오자니 한참 입시 준비 중인 자녀들이 문제였다. 맞벌이 었기에 아내가 어머니를 돌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돌볼까 싶었지만, 한참 아이들이 커나가는 시기라 돈이 한 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기나긴 전세살이를 벗어나 내 집 마련을 한지 겨우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수중에 모아놓은 돈이 넉넉하게 있을 리 없었다. 치매 요양병원을 알아보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동생은 이미 십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오늘도 수민 씨는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 가뜩이나 회사는 바쁘고 프로젝트는 시작하는데, 어머니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으니 머릿속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풀리지 않는 매듭인 것 같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어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데, 내 인생은 멀리서 봐도 비극인 것만 같다. 사실 수민 씨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이제 좀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어머니 치매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제발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수민 씨였다.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이 노력한다고 다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일들은 수두룩 빽빽하다. 당장 카드 대금 납기일은 다가오는데 수중에는 땡전 한 푼 없는 경우도 있고, 취업을 해야 하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내 힘으로 장애물을 극복하기 힘들 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수민 씨 사례에서 당장 치매인 어머니를 어떻게 돌볼까 이 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고 하면 벽에 부딪치게 된다. 일단 문제를 잘게 쪼개야 한다. 해발 5,000미터 산을 한 번에 오르려고 하면 숨이 턱 막히게 된다. 그러나 100미터씩 서서히 오르는 것은 단계로 나눈다면 부담은 줄어든다.
문제에 압도당하는 이유는 그 덩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 덩어리를 쪼개버리자. 수민 씨가 일단 부모님 집으로 퇴근해서 어머니를 돌본다면 아버지와 역할을 줄일 수 있고,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일단 다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심리학에는 '부화 효과(Incubation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달걀만 쳐다본다고 해서 병아리가 태어나지는 않는다. 다른 일을 하면서 달걀은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병아리가 태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한 발 물러서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가 바로 부화 효과이다.
이처럼 하나의 문제에 너무 매몰되면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시야'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잠시 문제를 내려놓고 산책을 하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 보자. 수민 씨의 경우라면 하루 종일 어머니 생각만 하지 말고 산책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생각을 내려놓자. 고민한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는 우리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외생 변수'가 존재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혼자 문제를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같이 분담하는 것이다. 분담을 강요할 수는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고 설득해야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진심 어린 모습으로 도움을 구할 때 마음을 내려놓는 법이다. 그렇게 같이 문제를 바라보고 대처해 가자.
수민 씨의 경우, 이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가족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말이라도 아내에게 어머니 돌보는 일을 부탁할 수 있을 것이다. 치매라는 게 언제 닥칠지 모른다. 꼭 치매가 아니라도 나이 많은 부모님들은 언제 병으로 몸져누울지 모른다. 지금 수민 씨 아내가 시어머니 간병에 성의를 보인다면 당연히 수민 씨도 처가에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진심으로 나설 것이다.
만일 지금 힘들다고 아내가 간병을 거절한다면 훗날 수민 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은혜라도 하나님께서는 갚아주신다고 성경에 나와 있다. 분명히 큰 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것들을 가족들에게 말하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이게 어렵다면 대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에 고정수입이 있으니 대출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 큰 비용은 들더라도 치매 전문 요양시설에 어머니를 의탁하고 자주 찾아뵙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안을 찾아보자.
일부 문제들은 사전에 내가 조심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문제들인 경우도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수민 씨 문제는 이와 다르다. 치매라는 건 아직도 발생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방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로 인해 금전적인 문제를 겪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런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의 꼬임에 빠져,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큰돈을 투자하지 말자. "여기 좋은 땅 있어요!" 전화가 온다면 십중팔구 사면 안 되는 땅이다. 그런 좋은 땅은 자기가 사지, 여기저기 정보를 흘리고 다닐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분석하며 문제를 바라보고 시도하도록 하자. 일단 문제가 터지면 수습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게 된다. 최선의 방법은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다.
경부선 철도 지하화처럼 좀처럼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있다. 누가 나타나서 한 번에 지하로 싹 넣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고, 뭘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 그런 문제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끙끙 앓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안절부절못하고 그 문제에만 매달리게 되면 터널링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시야가 좁아져서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달걀을 사람이 품는다고 해서 일찍 병아리가 태어나지는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병아리는 때가 되면 알아서 태어난다. 조금은 마음을 편히 갖자. 그럴 때 좋은 생각도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절대 문제를 혼자 다 짊어지고 끙끙 앓지 말자. 반드시 주변 사람들과 문제를 공유하고 이해를 구하자. 휴직이 필요하다면 직장 상사에게 이해를 구하고, 돌봄이 필요하다면 가족들의 양해를 구하자. 서로 도우면서 사는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들도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
문제없이 평탄하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자책하지 말자. 누구나 정해진 고통의 총량이 있다. 고통을 누가 더 빨리 겪느냐 늦게 겪느냐의 차이이다. 그렇게 마음을 편히 갖고 살아가자. 힘든 길을 걷고 있는 당신을 응원한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