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유행했던 물건들의 성공 비결
1592년 5월 23일, 이른 아침 부산진성 앞바다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병사들과 주민들은 어느 때처럼 잠에서 깨어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산진성을 지키던 첨사 정발이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니 배는 수백 척에 이르렀다. 그는 급히 주민들을 성 안으로 모두 대피시키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병사들은 성 위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화살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왜군의 배가 상륙했고 왜군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이 특이했다. 성으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세 줄로 서서 긴 막대기를 성으로 향해 겨누는 것이었다. 그 막대기에서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성 위의 조선 병사들이 저게 뭐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우왕좌왕했고, 당황해서 그 자리에서 몸이 얼어붙었다. 귀신들이 자기를 공격한다고 믿은 것이었다. 그 사이 왜군 병사들은 손쉽게 성벽을 올라 부산진성을 점령하고 말았다. 조선이 조총에 호되게 당했던 첫 경험이었다.
임진왜란 초기, 일본이 사용했던 조총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사실 조선이 조총을 처음 접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의 위정자들은 조총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는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에 의해 국토가 쑥대밭이 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활에 비해 조총이 갖는 위력은 과연 무엇일까? 강한 관통력이나 긴 사정거리도 있겠지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빨리 배워서 쉽게 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활의 경우, 제대로 된 궁수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과녁을 맞히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는 법은 단기간에 마스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살을 열 발 이상 쏠 경우, 팔이 아프다 보니 명중룰도 낮아지고 사거리도 급격하게 감소하게 된다.
반면 조총은 숙지하기가 참 쉽다. 한 달만 훈련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쉽게 사용할 수가 있다. 팔의 힘이 아니라 화약의 힘으로 총알을 날려 보내기에 힘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조총은 이런 장점이 있기에 조선에서는 전쟁 직후부터 조총 제작에 열을 올렸고 불과 1년 만에 조총을 자체 제작하게 되었다. 조총의 매력이 그만큼 컸던 탓이다.
조총에서 볼 수 있듯이,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도구는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쉽고 빠르게 일이 처리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조총 외에도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최근 사례들이 있다. 과연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캔바(Canva)'라는 디자인 플랫폼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디자인을 제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템플릿과 문구, 이미지들을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나처럼 디자인 감각이 제로인데 교육 안내문은 많이 만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캔바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예전에 파워포인트로 작업을 할 때는 어디서 예쁜 디자인을 가져와서 뭘 어디서부터 꾸며야 할지 막막했다. 안내문 하나 만드는데 반나절이 걸리기도 했다. 그러나 캔바를 쓰면서 쉽고 간편하게 디자인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미 다 만들어진 디자인에 문구만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템플릿이 무려 25만 개이기에 나에게 맞는 템플릿을 고르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AI를 통해 맞춤형 디자인까지 만들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편리함이 장점인 캔바는 25년 기준으로 월 누적 이용객이 무려 2억 6000만 명에 이르렀다. 디자인이 필요한 전 세계 사람들이 선호하는 세계인의 플랫폼이 된 것이다.
'토스(TOSS)'는 국민 금융앱으로 불릴 만큼 대한민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 사용자수가 3,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시중은행들이 개인금융 분야에서는 토스에 밀린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토스가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리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상대방의 계죄번호를 모르더라도, 연락처만 알아도 송금이 가능하다. 심지어 공인인증서나 보안 프로그램 설치 없이도 신분증 촬영 만으로 2분 만에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가계부 작성이나 미성년자 자녀들이 송금 기능 사용 시 부모가 한도액 설정이 가능하도록 한 부가 기능들은 토스는 기존 금융앱과는 다르다는 신뢰를 쌓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이처럼 복잡한 방식보다 직관적이고 편리한 방식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게 인간 본능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이유가 숨어있다.
우리의 뇌는 신체 에너지의 약 20%를 소비하는 기관이다.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가급적 생각을 덜 하고 싶어 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성향을 갖게 된다.
복잡한 절차는 많은 정보 처리를 필요로 한다. 이는 상당한 에너지를 고갈시키게 된다. 반면 편리한 방식은 뇌가 최소한의 자원으로 결과를 얻게 해 줌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화폐와도 같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처리해야 할 정보량과 선택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회사에서는 수시로 날아들어오는 상사 지시에 다른 부서 요청사항까지 처리해야 한다. 집에서는 육아에 신경 쓰느라 또 정신이 없다.
한정된 시간에 지금 처리해야 하는 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기에 복잡한 플랫폼까지 더해진다면 시간을 잡아먹게 되고 사람들은 지치게 된다. 현대인들은 복잡한 절차에 더 이상 감정 노동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복잡함은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스트레스'를 준다. 반면 편리함은 상황을 내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한 상황을 싫어하고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누리고 싶어 한다.
특히나 현대인은 스마트폰으로 주문, 배송도 쉽게 받을 수 있고 필요한 자료도 클릭 몇 번이면 누워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편리함에 익숙해진 인간에게 복잡한 절차를 강요하는 것은 불편함을 주게 된다. 이미 실패가 예견된 방식인 것이다. 심리적 보상감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회사들은 비싼 돈을 들여서 외부에서 프로그램들을 도입한다. 워크데이, SAP, 더존 등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에게 수많은 전파교육을 하고 온갖 홍보자료에 교육까지 해도 참여율은 극히 미미하다. 그 주된 원인은 사용방법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잡함을 없애는 것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건이 된다. 그렇다면 쉽게 이용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 가장 귀찮아하는 것은 '찾는 과정'과 '로그인'이다.
SSO(Single Sign-On)처럼 한 번의 로그인으로 사내의 모든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 비밀번호를 매번 입력하는 수고, 비밀번호 잊어버렸을 때 찾느라 고생하는 스트레스를 없애준다.
통합 대시보드 구축: 사내 인트라넷 첫 화면에 주요 프로그램 링크를 모아둔 '업무 포털'을 제공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여기에 AI 기반 챗봇을 도입하여 필요한 기능은 검색어로 쉽게 찾아 들어갈 수 있게 하면 매우 편리해진다.
두꺼운 매뉴얼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긴 PPT 자료는 용량만 잡아먹을 뿐 읽씹.. 그냥 휴지통으로 직행한다. 그거 꼼꼼하게 참고 다 읽는 사람은 뭘 해도 다 성공할 사람이다.
숏폼 가이드가 효과적이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이나 이미지 한 장으로 된 자료를 제공하자. (예: "우리 회사 슬랙 채널 활용법 3가지")
퀴즈로 내고 상품을 거는 것도 효과적이다. 장표 다 읽으면 맞출 수 있는 문제 몇 개를 출제한 뒤 다 맞추는 사람에게 커피나 케이크 쿠폰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선물 앞에 장사 없다. 지루한 자료에 재미 요소를 결합하자.
프로그램이 따로 놀면 데이터 입력만 두 번 하게 된다. 콜센터 전화를 생각해 보자. 전화를 걸면 "개인 고객은 1번, 기업 고객은 2번.." 이렇게 기나긴 안내멘트가 이어진다.
기나긴 시간을 뚫고 마침내 상담사와 통화 연결에 성공하면, 여기가 담당 부서가 아니라고 전화 돌리기가 시작된다. 당연히 상담사에게 고운 말을 쓰기 힘들어진다. 이미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와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곤란하다. '원스탑(One-stop)'으로 여러 경로를 거칠 필요 없이 한 번에 다 처리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API 연동을 통해 자동화를 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자. 예를 들어, 결재 시스템에서 승인이 나면 자동으로 알림이 가고 구글 캘린더에 일정이 등록되는 식의 시스템 연동이 되면 손이 많이 가지 않기에 편리하다.
단일화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구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소통은 메신저, 자료는 이메일, 일정은 캘린더로 파편화되면 곤란하다. 메신저를 중심으로 모든 알림을 통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조총이 조선에 급속하게 퍼진 이유, 캔 바와 토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모두 동일하다. 누구나 쉽게 배워서 쉽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무기나 디자인 도구, 금융 서비스는 복잡하고 어렵기 짝이 없었는데 이 틈새를 파고들어 성공한 것이다.
직장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권장하는 경우, 무조건 쉽고 간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 것이다. 가뜩이나 일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그램에 눈길을 줄 리 없다.
직장을 떠나 강의를 하거나 전공서적을 출간하는 경우,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예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건강법'은 간단했다. 내 몸에 맞는 운동하기, 옛날식으로 먹기, 즐겁게 웃기 이 딱 3개였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원로목사였던 조용기 목사의 신앙관은 '삼박자 축복론'이었다. "신앙생활 잘하면 영혼 구원,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받는다" 이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기억하기 쉬운 이 메시지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쉽고 간단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관심을 갖고 기억할 수 있다. 하나라도 더하려고 하지 말고 덜어내려고 하자. 그리고 비슷한 것은 다 하나로 통합해 버리자. 군더더기 없는 몸만 좋은 것이 아니다. 군더더기 없는 삶, 시스템도 좋은 것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