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
KBS에서 고려 시대 때 귀주 대첩을 배경으로 방영했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통주성 함락에 실패하고 수많은 거란군이 죽게 되자 거란의 황제 성종은 비탄에 잠긴다. 이때 거란의 장수 소배압이 이렇게 간언 한다.
"폐하께서 이번 패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시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것이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힘들어하는 아이유에게 이선균이 살며시 다가와 이런 조언을 건넨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생각하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다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이 두 개 대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진짜로 별 것 아닌 일이 된다"는 사실이다. 살면서 의외로 이 법칙이 잘 적용되는 경우가 참 많다. 사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막상 뚜껑을 열고 나면 별 것 아닌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교육팀으로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교재를 직접 제작하는 일을 맡았었다. 일일이 다 출력해서 그걸 순서대로 합치고 구멍을 뚫어 표지를 끼고 링을 꽂는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어떨 때는 강사 5명 이상이 각각 주는 교재를 합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종종 실수하기도 했다.
그날도 딱 그런 케이스였다. 교육 하루 전 날 강사 8명이 강의자료를 건네주었다. 교육생은 70명인데 70부를 하루 만에 정신없이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뿔싸.. 강사 한 명 강의자료를 빠뜨린 것이다. 8명 강의자료가 들어가야 하는데 한 명은 빠져 있었다. 만들 때 분명히 받은 파일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가슴이 철렁했다. 이걸 담당자에게 이야기할까? 싶었다. 그 담당자 앞에까지 갔다. 그 순간 이 생각이 들었다.
'강의내용이 꼭 교재로 나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내가 내 입으로 말하게 되면 사람들이 다 알아버리게 되고 일이 커지지 않을까?'
결국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교육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었고, 교재에 누락이 있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일 그날 내가 빠진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면? 주변이 시끌시끌했을 것이고 다시 만들어라, 왜 실수했냐 등등 피곤한 일이 펼쳐졌을 것이다. 무조건 다 털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때로는 조용히 넘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임직원 교육 영상을 게시한 플랫폼이 있다. 임직원들이 언제든 지난 교육 영상을 보고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어느 날, 퇴근 후 급하게 업로드할 교육 영상이 있어 플랫폼에 접속하였다. 그 순간 큰일이 터지고 말았다. 클릭을 잘못하는 바람에 그 안에 있던 채널 하나를 통째로 다 삭제했던 것이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치 시간이 딱 멈춘 것만 같았다. 채널 안에 들어있던 백 개 넘는 영상이 싹 다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이걸 어쩌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급하게 복구할 수 있는지 IT 담당자에게 물어봤지만 안된다는 답이 들려올 뿐이었다.
멘붕에 빠져있던 그 순간..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내가 복구하면 되잖아' 갑자기 빛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밤을 새워서 채널 디자인을 다시 만들고 들어 있던 교육 영상들을 과거 자료들을 샅샅이 찾아서 하나씩 연결하였다. 그렇게 하니 동이 터오를 무렵 채널을 복구할 수 있었다.
혼자 멘붕에 빠져 좌절만 하고 있었다면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 순간 다시 용기를 내어 복구할 수 있었다. 내가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진짜 대단하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실제 역사 속 사건을 소개하여 드리고자 한다. 예전에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는데, 조선 영조 때 벌어졌던 '이인좌의 난'이었다.
영조는 선왕 숙종의 친자식이 아니기에 왕이 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이인좌를 중심으로 한 소론 세력들이 일으켰던 반란이었다. 이들은 거침없이 진군하였다. 한쪽은 영남 지방에서, 다른 한쪽은 호남 지방에서 올라오고 있었고 이들이 충청도에서 합쳐 한양으로 진군한다는 전략이었다.
조정은 난리가 났다. 이들이 충청도에서 힘을 합치는 순간 끝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때 오명항이라는 신하가 자청하여 이번 반란을 진압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특이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빨리 해결책을 내어 놓으라고 밑의 사람들을 닦달하고 힘들게 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일부러 코를 드르렁거리며 점심때까지 잤고, 군령을 어기고 소리 내어 적을 기습하는 바람에 작전에 실패한 부하를 벌하지도 않았다. "그깟 한 줌도 안 되는 반란군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부하들을 안심시킬 따름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 병사들도 안심하기 시작했다. "총사령관은 저렇게 느긋한데 괜히 우리만 긴장하고 있었나 봐"
안심하기 시작한 병사들은 동요하지 않고 반란군을 크게 격파했다. 결정적으로 충청도에서 두 반란군 무리가 힘을 합치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이번 반란을 토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오명항이 불안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병사들도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같이 불안해했을 것이다. 문제가 심각하게 인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명항은 편안한 모습을 보임으로서 이 문제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들었고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사람은 갑자기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우왕좌왕하게 되고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며 힘든 모습을 보이게 된다.
불씨가 크지 않아 소화기만으로도 끌 수 있었던 불이었는데 내가 당황해서 "불이야" 소리만 치다 보니 불은 점점 커진다. 사람들은 달아나기 시작하고 온 동네가 뒤집어진다. 결국 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게 된다. 그렇다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당장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지만, 과연 이 일이 앞으로도 나를 짓누르는 심각한 문제일까? 아래 질문을 해보자.
Q) 10분 뒤에도 이 문제가 지금처럼 괴로울까?
Q) 10개월 뒤에도 이 일로 밤잠을 설칠까?
Q) 10년 뒤에도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내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문제는 10년이라는 긴 세월 앞에서는 아주 작은 점으로 변하게 된다. 굳이 10년까지 갈 필요도 없다. 10개월만 지나도 이 문제는 별것 아니었기에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때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에 대응하는 편안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문제가 너무나 커 보이는 이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까지 짊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날씨'처럼 받아들이자. 내일 소풍을 가는데 비가 온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런 상황은 어쩔 수가 없다. 비 오는 날 산책도 나름 운치가 있으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고민해도 안 되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말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하면 문제는 훨씬 단순해진다. 등에 진 그 무거운 짐은 내려놓자.
막연한 공포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사람은 공포가 온몸을 휘감으면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고 만다.
예전 글에서 6.25 전쟁 때 국군 최대의 패배였던 '현리전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총사령관이 도주했다는 소문이 병사들 사이에서 퍼져나가자 공포에 사로잡힌 장병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기 바빴다. 당시 국군 병력이 많았기에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포위망 돌파를 시도했다면 충분히 돌파가 가능했다. 그러나 공포에 사로잡힌 지휘부는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같이 도망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선 아예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리 전투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1) "정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 "그래, 큰 희생이 발생하겠지."
2) "그다음엔?" -> "큰 희생이 발생하겠지만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고 나가면 돼. 그러면 병력을 다 잃어버리지는 않아."
최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 순간, 역설적으로 마음에는 평온함이 찾아오고 문제를 해결할 에너지가 생긴다. 분명히 그 최악의 상황에서도 해결책은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삶을 둘러싼 배경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가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일이 찾아오기 마련이야. 그동안은 살면서 나쁜 일만 있었으니 이제 바닥치고 올라가겠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실제로 사람이 겪는 고통은 총량이 있어서 지금까지 잘 살았다고 앞으로도 잘 산다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지금까지 나쁜 일만 있었다고 앞으로도 나쁜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이야기를 해보자면, 서울대 합격할 때만 해도 내 인생은 순탄하게 흘러갈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팀도 여러 번 옮겨야 했고, 어떤 회사에서는 쫓겨나듯이 나와야만 했다. 불행이 30대 이후에 집중적으로 몰아닥친 것이다.
그러나 이 고통도 영원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직장생활에서 수많은 쓴 맛을 보면서 이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부터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영원한 행복도 없고, 영원한 고통도 없는 법이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또다시 고통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심한 노이로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 상황이 다시 찾아오게 되면 온몸이 다 얼어붙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문제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게 될 때가 많다. 1억 빚을 졌다면 부지런히 일해서 갚으면 된다. 조선소 가서 몇 년만 이 악물고 일 힘들게 하면 그 돈 모을 수 있다. 몸이 아프다면 휴직하고 조금 쉬면서 몸을 추스르면 된다. 그래도 안 낫는다면?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자. 미래에 있을 나쁜 일들까지 근저당 설정해 놓고 미리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많은 일들이 그렇다. 그런데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구 들쑤시고 다니면 진짜 심각한 문제가 되고 만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원효대사가 숲길을 가던 중 한밤에 목이 말라 벌컥벌컥 마신 물이 사실 시체가 썩어 해골에 괴인 물이었다. 밤에는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물이었는데.. 결국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편하게 마음먹자. 그러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