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볼펜화로 넘어간다.

나의 아름다운 드로잉

by 컨추리우먼


벌써 네 번째 미술 수업 시간이다. 선생님은 어른의 수업을 잘 아시는 듯하다. 지루할 거 같으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연필로 장미와 포도를 완성한 후 볼펜 화 작업을 한다며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었다. 연필 잡은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볼펜 화를 할 수 있을까, 물으니 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신다. 이거 참 할 말이 없다. 맘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 해서 난 전봇대가 많은 마을 경치 사진을 골랐다. 내가 놀던 어린 시절 우리 동네 골목이 생각나는 사진이었다. 전봇대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고 전깃줄이 얽기 설기 이어진 풍경이다.


풍경화를 그릴 때는 소실점을 찾아야 한단다. 소실점이 무얼까? 사전을 뒤져보니 ‘실제로는 평행한 직선을 투시도 상에서 멀리 연장했을 때 하나로 만나는 점’이란다. 즉 원근법에서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핵심 요소다. 소실점을 찍어 사방으로 선을 그으면 밑그림 그릴 때 수월하다. 무엇이든 새로 배우려면 알아야 할 게 많다.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뒤 파란색 볼펜으로 실루엣을 그렸다. 한 시간 정도 그린 작품을 사진 찍어 선생님께 보냈더니, 직선으로 그리면 안 되고 동글동글 굴리면서 그려야 한다고 답장이 왔다. 이크 그걸 몰랐네.


다시 선을 둥글게 해서 그렸다. 지붕이나 나무 기둥을 진하게 그리고 전깃줄이나 나뭇잎은 연하게 그렸다. 지난 주말에는 강릉 마라톤 가느라 서울역에서 케이티엑스를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스케치북을 꺼내서 마저 그렸다. 기차밖에는 가을하늘과 들판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난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풍경을 영상으로 담았다. 내가 꿈꾸던 일을 실행에 옮기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건 소소한 낭만을 즐기는 것이다. 텀블러에 담아 간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스케치 한번 하다 보니 기차는 어느새 강릉역에 도착했다.


가을 낭만과 러닝이라니. 맛집을 찾아 식도락을 즐기고 건강을 위해 달린다. 이 맛에 사는 거지 뭐. 다음 시간에는 수채화를 그린단다. 도화지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여서 준비하고 물감 붓 물통을 챙겨야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써봤나 기억도 가물가물한 수채 물감을 써보게 되는구나.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