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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Sep 05. 2023

플로리다에서 연구하기

출근, 점심, 그리고 퇴근 후 나의 삶

지구 반대편 미국 플로리다에 도착한 지 벌써 2 주가 흘렀다. 도착 다음날부터 요가원에도 등록하고 근처 마트를 탐방했다. 동네 산책도 하고 괜찮은 조깅 코스를 모색하면서 앞으로 출퇴근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파견 연구를 수행하게 될 플로리다 대학교의 (University of Florida, UF) 공식 휴일은 언제인지 파악하기 위해 학업 일정표도 (academic calendar) 꼼꼼하게 정독했다. (10월 초 콜럼버스데이와 11월 중순 추수감사절, 그리고 연말 크리스마스 휴일이 기대되는군!) 역시 노는 게 (그리고 놀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대학원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잊지 말아 할 명백한 사실은 나... 여기 연구하러 왔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까먹을 뻔했네. 해외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바이겠지만 이왕 나온 김에 뭐라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잘 다니고 있는 한국의 연구실을 떠나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굳이 해외에 잠시라도 나온 만큼 커리어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지금 나의 경우엔 학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박사 졸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들고 와야 한다는 생각이 출발 전과 도착 직후에도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더 이상 "경험"이 중요한 연차가 낮은 대학원 신입생도 아니고... 실제로 실적과 졸업에 집중해야 하는 대학원 5년 차이자 박사과정 3년 차가 된 나에게 한국의 연구실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결코 홀가분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그래서 도착 직후 시차적응을 위해 쉬어갔던 첫 주말을 제외하고는 곧바로 플로리다 대학교 연구실로 출근했다. 최대한 부지런히 출근을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앞서 거쳐야 하는 행정적인 일들이 정말 많았다. 먼저 '나'라는 사람을 UF 시스템에 방문 연구원으로 (visiting scholar) 등록하고, ID 카드 발급도 신청해야 했고 (해당 카드가 있어야 출퇴근 용 지역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고 그 외에도 학교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그 외에도 세포 실험을 위해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 (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 교육 과정도 밟아야 했다.


첫 번째 주 금요일 앞서 언급한 교육들과 J-1 비자를 받고 플로리다 대학교에 도착한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리엔테이션 참여도 끝이 났다. 행정적인 절차 외에도 슬슬 연구실에 계신 박사님들과 연구적 디스커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운 좋게도 한국에서 수행하던 연구와 비슷한 결과 내용의 프로젝트라 새로운 내용을 따라잡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당연시 여겨 간과했을 수 있는 디테일들에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아무래도 나는 RNA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고 이곳의 박사님들은 면역학 분야에서 오랜 시간 연구하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각자 익숙한 분야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 오히려 하나씩 캐묻다 보니 내가 놓치고 있던 빈틈도 더 잘 보였고 앞으로도 '박사과정생'에서 진정한 박사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연구를 하든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실험적 원리들도 상세하게 공부해 놔야겠다고 다짐했다. (기특한 녀석...) 여기 계신 박사님들과 서로 세부 전공은 다르지만 실험적 팁과 (tips) 연구적 아이디어를 교류하다 보면 새롭게 빛날 수 있는 시너지가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단백질 발현량을 비교하는 Western Blot 실험 잘 하는 사람을 찾는 구인광고(?)
굉장히 클래식한 분위기의 연구실이다.

그렇게 새로운 공간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감을 잡기 시작하니 나 역시도 일상생활의 '루틴 만들기' 작업에 돌입할 수 있었다. 연구실 생활을 하려면 우선 1) 출근과 2) 끼니 챙기기 그리고 3) 퇴근 후 삶 이렇게 세 가지 파트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출근은 연구실 박사님께서 도와주시게 되었다. 이른 시간 자녀분들의 통학 시간에 맞추어 하루를 시작하신다고 하는데 운 좋게도 내가 지내는 곳과 학교가 바로 옆 동네라 감사히도 마음을 써주셨다. 그래서 반강제로 출근을 아침 7시 반에 하고 있는데 (연구실에 도착하면 아침 8시 정도이다) 한국에서도 오전 9시 출근이면 "이른 시간부터 실험하는 나 자신, 좀 멋져"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그 시간이 한 시간이나 더 앞당겨진 셈이다. 비몽사몽 출근하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오히려 간편해진 출근 준비 덕분에 하루가 더 길어지는 느낌이다. 아마 미국 대도시가 아닌 지역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이러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이곳에서는 겉모습에 대해 신경 쓰는 정도가 한국보다 훨씬! 덜 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옷도 간편하게 화장도 간편하게 소지품도 간편하게 챙기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데 한국에서는 연구실 출근이어도 기본 화장은 했던 내가 이제는 딱! 선크림만 바르고 배낭과 도시락 가방을 챙겨 출근길에 오르고 있다. 소중한 에너지를 더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느낌이다.


두 번째는 "끼니 챙기기." 일단 이곳의 점심 카페테리아는 맛도 없는데 비싸다. 한국에서부터 맛없는 학식 때문에 온갖 신세한탄을 다 했었는데 나름 5-6,000원 ($4.50) 정도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면 감사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도시락을 챙기지 못했던 첫날 사 먹은 치킨랩이  9,500원 ($7.20)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미국은 택스 때문에 (여기에 팁도 추가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물건을 집을 때 가격과 계산하는 가격 차이가 상당해서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여러모로 매 끼니 사 먹기에는 신경 쓸 부분이 많다.

9000원 짜리 치킨랩 (내가 만들어 먹는게 훨~씬 더 맛있다. 다행히 쵸바니 요거트를 챙겨가서 좀 더 든든하게 챙겨 먹은 첫 날 점심.)

이곳에서 점심을 사 먹는 것에 대한 또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바로 병원 내 입점되어 있는 수많은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다. 내가 있는 곳은 University of Florida Shands Hospital의 치의과대학 건물인데 종합대학병원 건물인데 많은 환자들과 간병인 가족 그리고 의료진들이 '구내식당 (Cafeteria)'이 아닌 곳에서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곳에 Wendy's, Panda Express, Subway, Chick-fil-A 등 수많은 패스트푸드를 종류별로 판매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출근 초반에는 몇 군데를 시도해 보긴 했으나 처음에는 자극적인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저녁 늦게까지 더부룩해지는 불편함이 초래되었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미국은 외식할 때 워낙 양이 많아서 남은 음식을 여러 끼니 나눠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미국의 1인분 제공량에 익숙해지는 때가 도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는데 평소에 과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따스한 햇살 아래서 혼밥에 열중하는 미국 대학생/대학원생들. 개강을 맞이해서 랩 미팅 때 피자도 먹었다.
병원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양이 워낙 많아서 남으면 다음날 데워먹을 수 있어서 좋다.
영양을 보충하고 (Nourish) 수분을 충전하라고 (Hydrate) 하는데 온갖 군것질 거리와 설탕 듬뿍 액상과당 메뉴 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서론이 길어졌는데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탕비실 애용하기"다. 연구실 층 작은 공간에 공용 냉장고와 정수기, 커피포트, 작은 오븐 토스터기 그리고 전자레인지가 비치되어 있는데 친구가 선물해 준 보냉백에 밀프렙을 (meal prep) 해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까지는 간단한 요구르트나 과일, 또는 샌드위치를 준비해 오는 정도지만 연구실 동료들을 보면 파스타나 감자조림, 냉동식품등을 준비해 오는 것 같다. 이건 천천히 레벨업을 시도해 봐야겠다.

해외 연구실 생활을 미리 해본 단짝 친구가 선물로 준 점심 도시락용 보냉백. 요즘은 시도때도 없이 배가 고파져서 간식은 필수다.

마지막으로 퇴근과 그 후의 삶인데 우선 퇴근은 앞서 언급한 ID 카드로 지역 버스를 타고 있다. 플로리다 게인즈빌에는 통학과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RTS (Regional Transit System) 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모두가 개인 승용차를 몰고는 있지만 특히 학교 시설에는 주차비가 굉장히 비싸서 대중교통이 필수인 상황이다. 이곳의 GATOR ONE Card를 발급받은 덕분에 퇴근쯤 어플로 버스 도착 정보를 확인해서 병원 건물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으로 뛰어간다. 걸리는 시간은 엘리베이터 포함 5분 정도? 버스 시간도 길지 않아서 시간만 맞으면 10분 내로 귀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곳의 "퇴근 러시 아워 (Rush hour)"는 한국처럼 저녁 6시 이후가 아닌 오후 4시부터 5시 사이다. 다들 이른 출근과 이른 퇴근을 (사실 반드시 이른 출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하는 분위기라 오히려 6시 넘어서 퇴근해야 길이 뻥 뚫려있는 상황인데 그래서 앞으로는 퇴근하면서 곧바로 요가원에 가려고 한다. 집에 들러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요가 매트를 챙겨서 다시 나오는 것보다 연구실에서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버스를 타서 곧바로 요가 스튜디오로 가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조급한 마음 없이 이렇게 맞추어둔 일상생활만 잘 지켜나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멀고 먼 복도를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실험실. 오피스랑 거리가 좀 되다보니 왔다갔다 할 때 논문을 챙겨 다녔다는 지도 교수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논문도 뽑아 읽고 노트필기 하면서 공부하는 나란 녀석. 역시 공부 쟁이다.
이번주 허리케인 ‘이달리아’ 때문에 화요일부터 조기 퇴근하고 수요일에도 연구실에 가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논문만 실컷 챙겨왔는데 집중력은 역시 다르다.

대학원은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회색존에 (Grey zone) 갇혀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왜냐면 엄밀히 따지자면 대학원 학위는 직무 연수는 (Occupational training)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졸업 후 찾게 될 직업과의 연관성은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 땅의 대학원생들은 분명 청춘을 바쳐 공부를 하고 실력을 키우고 있지만 그만큼의 금전적 수입은 없다는 슬픈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에 오니 내 대학원생 자아에서 '학생'다움이 좀 더 크게 발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도착한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논문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대학원 생활과 비교했을 때 거의 3개월치 2주 만에 읽은 느낌... 지도 교수님 죄송합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면 되는 시간들이다 보니 공부도 실컷 하고 아이디어 발전과 실험 계획도 내가 조율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여기 계신 박사님들과 디스커션 하려면 나 역시 계속 공부해야 함을 느낀다. 근거를 갖고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익숙하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고등학생 자아로 빙의하여 '열공모드'에 도입했다. 심지어 이번주 수요일에는 허리케인 주의보 때문에 연구실에 출근하지 못했는데 오피스에서 공부하지 못할 것에 굉장히 아쉬웠다고 한다. (왜냐면 여기서도 집 오면 절대 집중할 수 없는 병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슬슬 이곳에서의 진전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내용을 담아 지도교수님과 미팅을 진행하려고 한다. 그때까지 더 알차게! 야무지게 지낼 수 있길. 무엇보다 그 원동력을 발판 삼아 졸업에도 한 발짝 더 가까워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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