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아쉬워도 남는 건 주변 사람들의 친절한 마음뿐
7분의 2, 그리고 28.6%
사람들은 일주일을 7일이라고 약속했고 그중 이틀이라는 시간을 '주말'로 정의했다. 아무리 열의에 차오르는 사람인들 닷새 넘게 불태우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선천적인 자질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우리의 조상님들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단위 속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을 '주말'이라는 선물로 내어주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짧지만 소중한 28.6%의 시간을 말이다.
사실 '주말'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주말은 '한 주일의 끝 무렵'이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땅히 해내야 하는 '의무'적인 일상의 과제들이 사라지는 날이기도 하다. '출근'처럼 정해진 시간에 특정 장소로 향하여 내 얼굴을 남들에게 비춰야 한다는 임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내는 우리들은 다들 몇 번쯤 (또는 수백 번쯤) 주말에도 출근을 감행한 적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중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자유도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임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주말에 고속도로도 막히고, '핫플'에는 유독 더 사람들이 붐비고, 경우에 따라 '주말 프리미엄'이 붙어 티켓값도 더 비싼 거겠지.)
나에게도 주말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다행히 주말만 손꼽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주중을 보내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의 자유도를 사랑한다. 나에게 주어진 48시간을 온전히 내 맘대로 채워갈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를 마주 한듯한 여유 시간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매주 주말을 온전하게 즐기기엔 난 아직 대학원생이다. 대부분의 경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개인의 욕심은 높은 편이며, 특히나 생명과학분야에서는 내가 쉬고 싶어도 세포나 초파리, 생쥐들은 쉴 수 없는 상황이 훨씬 더 잦기 때문에 주말 출근은 꽤나 통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애써 힘들게 준비한 검체를 가벼운 마음으로 방치했다가는 실험 스케줄이 밀리고, 분석 결과 확인이 늦어지고 궁극적으로 늦어지게 되는 것은 바로 '졸업'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더욱 묵직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그러나 아무리 주말에 실험실에 들려 일을 해야 하는 대학원생이라고 해도 나는 주말을 좋아한다. 타의적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연구실에 가는 것은 꽤나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말에 연구실에 간다고 해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세포나 초파리, 생쥐 등 시간에 예민한 살아있는 검체들을 돌봐주고 주중에 나를 힘들게 할 과제에 대하여 잠깐의 시간을 투자하면 다가오는 일주일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낼 수 있게 된다. 주말의 부지런함을 지불하고 주중의 여유를 얻는 것과 같다. 게다가 나는 생산성 있는 일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주말에 연구실 일을 보고 나면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까지 느끼곤 한다. 이렇게 일 중독이 되는 건가 싶으면서도 내 주변 너무 많은 대학원생 친구들이 이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 누구 하나 지독하다는 판단 없이 각자의 연구에 몰두하여 의미 있는 학위과정을 통해 훌륭한 박사님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성장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각자의 타당한 이유로 선택한 박사과정의 길일테니까 말이다!
대전에서 학위 과정을 하는 동안엔 주말에 밀린 약속을 잡기 정신없었다. 주중에는 실험이나 운동 등 내가 정해놓은 루틴에 맞추어 하루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특히 여유 있게 만나고 싶은 친구들의 경우 주말에 만나는 편을 선호했다. 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금요일 저녁 기차에 몸을 싣고 상경했다. 감사히도 본가가 서울이라 가족과의 시간이나 먼저 서울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서울행 기차를 애용했다. 서울에서 보내는 48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 소중했기 때문에 매번 무리해서 약속을 잡고 과하게 많은 도심 탐방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실컷 놀다가 대전행 기차에 올라타고 나면 기분이 꽤나 우울해지는 일도 십상이었다... 10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복귀를 의미하는 대전행 기차의 암울함은 아주 씩씩하게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어떻게 주말을 보내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우선 미국에 와있는 동안 큼직하게 다녀온 여행들을 제외하고는 대전에서의 주말과 비슷한 일상을 보낸 것 같다. 잠깐씩 연구실에 들려해야 할 실험들을 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내 카페에 들르거나 좋아하는 미국 마트에 들러 일주일 치 장을 봤다. 최근에는 미국 영화관에 가서 아직 한국에서 개봉 전인 '웡카 (Wonka)'를 보고 왔는데 연말 연초 분위기와 어울리는 따뜻한 영화라 재밌게 관람했다. 미국 영화관은 좌석이 굉장히 큰 편인 데다가 등받이가 뒤로 아주 넘어가는 리클라이너 형태의 의자였는데 솔직히 영화가 별로 재미없으면 잠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 게인즈빌 음식점을 탐방하거나, 또는 룸메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좋아하는 시트콤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과 영상 통화도 많이 했다. 11월 이후 미국 서머타임이 (daylight saving) 종료되면서 시차가 13시간이 아닌 14시간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주중엔 시간 맞추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주말에 밀린 연락들을 많이 하면서 지낸 것 같다. (특히 연말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더 자주 더 많은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했고 말이다.)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 지내는 동안 차가 있었다면 주말 상황이 훨씬 달라졌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연구실에 들르거나 몇 군데 발견한 카페도 가고 장도 봤지만 이동하는 게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지역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는 있지만 주말엔 운영 간격이 더욱 길었고 (오늘도 카페에 가서 보고서 작업을 하다가 돌아왔는데 한 시간에 한 대 다니는 버스를 타고 귀가하기 위해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눈치싸움을 했다.) 무거운 물건들을 구매하는 경우엔 반드시 차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바닷가와 지구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한 놀이공원들로 유명한 플로리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편하게 구경할 엄두를 못 냈다. 보험 때문에 차를 빌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주내 버스 스케줄도 편리하지 않아 당일 여행을 계획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바닷가 근처에는 대부분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 스타일의 숙소가 많았는데 혼자 큰돈을 써서 사치를 부리기에는 해야 할 실험도 많고 졸업 후 진로 고민에 대해 더욱 진지해지는 시기라 플로리다 여행은 일찍이 포기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애정 어린 관심 덕분에 조금은 플로리다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먼저 연말엔 미국 연구실 교수님과 박사님께서 친히 피크닉을 준비해 주신 덕분에 Ocala라는 도시의 Silver Spring에 다녀왔다. 한 시간에 이천백만 갤론의 물이 샘솟는다는 Silver Spring에서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는 보트를 타고 바다소를 (Manatee) 구경했다. 근처에서 중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 연말을 기념해서 깊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졸업 후 다시 미국에 오게 된다면 어느 곳으로 누구와 함께 오게 될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갔는데 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대화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까운 주에서 박사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동기 친구 덕분에 플로리다 생어거스틴 (St Augustine)이라는 바닷가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초등학교 동창이 애틀란타로 놀러 온 덕분에 플로리다 로드 트립을 계획하게 되었는데 하루 시간을 내어 나도 친구들과 함께 여행했다. 드라이브 내내 구경한 플로리다의 자연경관도 훌륭했고 처음으로 눈에 담아보는 플로리다 해변 그리고 (미국에 온 뒤로 흠뻑 빠져버린) 멕시칸 타코까지! 주변 사람들의 소중한 친절함이 시골 동네에서 심심한 주말을 보내고 있는 대학원행을 구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주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달리 별게 없다. 자유로우니깐. 일 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고 놀고 싶으면 놀 수 있다는 주말의 자율성이 마감 기한이 촉박한 과제들로 가득한 매일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가장 달콤한 선물처럼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자율성 덕분에 내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많은 일들 대부분은 주말에 해낼 수 있었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안부 연락 대신 다음날 걱정 없이 여유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소중한 수다 타임. 졸린 정신을 깨우기 위해 내복약처럼 섭취하는 카페인 가득 아이스아메리카노 대신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따뜻한 라테 한 잔을 주문해서 좋아하는 책이든 아끼는 일기장이든 내면의 힘을 강화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들까지. 관심 있던 작가의 전시든 보고 싶던 영화든 유명세가 궁금했던 어느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까지도 우리 모두가 쉬어가기로 약속한 주말이라는 시간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국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나의 게인즈빌 주말 일상을 돌아보니 불편함도 많았지만 주변 사람들 덕분에 다채로운 추억도 많이 쌓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귀국 전까지 더 부지런히 계획해서 후회 없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