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받고 싶지 않지만 축하 인사는 받고 싶은 나의 모순적 마음
지난 화요일, 만 나이로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작년 연말에 분명 "이십 대를 보내주는 마음"으로서 한 해를 정리했던 것 같은데 막상 새해가 밝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서른"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에 심술이 났다. 당장 불투명한 미래와 준비하고자 하는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예측불가함과 근심걱정 때문일까, 괜히 어리광 피우고 싶은 마음에 윤 대통령이 정해준 만 나이의 합법성을 운운하며 선물 받은 생일 케이크에 기다란 초 세 가닥 대신 총 열 한 가닥의 초를 뒤죽박죽 꽂아버렸다.
원래는 큰 기대하지 않은 날이었다. 물론 주변 친구들과 매년 생일 밥, 생일 선물, 생일 축하 카드를 주고받으며 생일 "주간"을 챙기긴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11월생, 전갈자리인 나는 가을이 참 좋았고 11월은 더 좋았다. 늦여름의 후끈함은 이미 지나가신 지 오래고 슬슬 포근한 니트 또는 아우터 없이는 외출이 불가한 날씨. 내키는 날엔 아끼는 캐시미어 목도리로 멋을 내도 충분히 기분 좋은 가을의 나날들이 참 좋았다. 하지만 작년에는 혼자 덥고 습한 날씨를 자랑하는 미국 플로리다에 나가있어서인지 가을의 정서를 만끽하지도 못했고,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올해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생일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내심 더 기대에 찼던 것 같다. 놓쳐버린 작년 가을과 더불어 특히 올해는 좁아질수록 깊어지는 감정과 순간들을 만끽하는 감사한 시기인 만큼, 내가 사랑하는 계절 속 나의 소중한 생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찬란한 봄과 무더운 여름,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면서 졸업을 향해 정신없이 발걸음을 내딛던 중 문득 '카카오톡' 메신저 생일 알림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대략적으로 일주일 전부터 누구누구 생일이라고 첫 번째 탭 "친구 목록" 상단에 뜨는 그 알림 말이다. 심지어 언제부터인가 누구와 생일 당일에 선물을 주고받았는지까지 표시되었는데 이것은 마치 생일 축하 연락을 위한 친절한 리마인더 기능이 아닌 청산해야 하는 빛에 대한 독촉장과도 비슷한 뉘앙스를 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생일이 다가오는 몇몇 친구들 상태메시지에는 "선물은 사양합니다. 따뜻한 인사말만 전해주세요!"와도 같은 공지글스러운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충분히 안부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 친구들에게 그저 생일을 핑계 삼아 몇 마디 정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괜히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되려 내가 부담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조바심만 커져갔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졸이다 보니 실제로 생일 알림 기능을 꺼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생일 알림 기능에 대한 회의감 때문은 아니었고, 굳이 계기를 꼽자면 연구실에서의 생일 축하 문화를 탓하고 싶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생일날 당사자를 위한 케이크를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 이게 말로만 들으면 참 예쁘고 따뜻한 문화인데 지난 6년 동안 어떤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는지 누누이 관찰해 왔기 때문에 특히 올해는 실험실에서 나를 위한 케이크 파티를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 누가 케이크를 사 올지, 어디서 사 올지, 모두가 자리할 수 있는 시간에 케이크를 전달해야 할지, 그렇다면 당시 실험 중인 친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등... 시간 조율도 어렵고 랩비 운영이 허락되지 않아 자발적으로 케이크를 선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디저트를 한 입도 못 먹은 친구가 생기면 억울해했고 공동 케이크 선물 대신 따로 생일을 챙겨주고 싶어 하는 경우도 생겼다. 졸업이 다가온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나 역시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충분히 따뜻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던 것 같다. 따라서 가장 순탄하게 케이크 선물의 부담을 넘어갈 방법을 강구하다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생일 알림 비공개"였다.
처음에는 어차피 내가 함께 생일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알람 역할을 하면 되니까!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가족 문화로 인해 90년대생답지 않게 음력 생일을 고수하는 중이라 주변 친구들한테 적지 않은 불편함을 초래하곤 했다. 매년 초 친구들은 나에게 음력 생일 계산법에 대해 물어봤고 몇 번을 알려줘도 그냥 내가 직접 올해 생일은 몇 월 며칠이라고 알려주는 편이 더 용이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감사히도 '카카오톡'에 음력 생일 표시 기능이 생겼다. 아마 어르신 사용자들로부터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기능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이 덕분에 주변 친구들이 헷갈려하지 않고 내 음력생일에 맞추어 반가운 안부 연락을 보내줬다. 그리고 그 생일만의 따스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아서 그런지... 막상 생일 알림 기능을 끄고 나니 굉장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부끄럽고 클리셰스러워도 오랜만의 생일 축하 연락들은 언제나 반가웠고, 이전만큼 붐비지는 않아도 축하 인사를 받다 보면 기분이 참 좋아졌다. 나의 졸렬한 부담감과 죄책함 때문에 축하 인사를 마다하기엔 그동안 내가 어떤 우정을 쌓아왔고, 대화를 나눠왔으며, 지난 세월 나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에 참 좋은 기회를 놓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 멋없지만 다시 생일 알림 기능을 켰다. 이 때문에 분명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순간들을 마주해야 했지만 잠깐이면 되었다. 용기를 낸(?) 덕분에 나 역시 친구들의 반가운 안부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분명한 기약은 마련하지 못했지만 반드시 꼭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포부와 약속 체크리스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 다짐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무슨 선물을 보내줘야 감동받을지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꼭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겠다고. 다들 커가면서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고, 더 이상 핑계가 아닌 실제로 시간내기가 여의치 않아 작고 디테일한 업데이트가 아닌 굵직한 일들이 다 지나고 난 후에야 공유하는 근황 토크만이 우리들에게 허락된 현실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참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도 내가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결정과 선택에 있어 항상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멀리서 소중한 마음을 선물하는 사람이든, 나와 피부를 맞대고 가까이서 생일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든, 덕분에 막학기 졸업반으로서의 수많은 고민거리는 잠시 옆으로 미뤄둔 채 행복한 순간들만 가득한 주말을 보냈다. 해가 지나갈수록 "생일이 별거 없다"는 불효적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까지 통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매년 다가오는 가을과 생일에 마음 설렐 수 있는 여유과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오래 머물 면 좋겠다는 소원을 바라본다. 올해의 깨달음 덕분에 당분간, 아니 쭉, 생일 알림 기능을 켜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