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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Oct 29. 2023

'굳이'의 미학

결과가 어떠하든 그대의 모험을 응원합니다.

효율성이 참 중요한 요즘이다. 소중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신 바쁘디 바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독 많이 들리기 때문일까. 모두가 바쁜 만큼 우리들의 일분일초는 값이 비싸진다.


효율을 따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에 급해진 것 같다.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최근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요약본"이 넘쳐나고 당장 내 주변만 해도 1.0 배속이 아닌 1.5배속으로 (또는 2배속까지) 영상을 시청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특정 장면이 전체 흐름에 "쓸모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사람들은 앞으로 감기 또는 뒤로 감기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15초를 네 번 아끼고 나면 일 분을 아낄 수 있고, 이렇게 몇 번을 더 반복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영상을 시청한 "똑똑한 소비자"로 거듭날 수 있다. 남들보다 더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얼마나 효율적인가?

1.5배속 또는 빨리 감기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대해 혼자 고민하고 있던 찰나 존경하는 이동진 작가님이 관련 영상을 업로드해 주셨다.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소식좌"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현저하게 먹는 양이 적어 작은 몸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소식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김밥 한 "줄"이 아닌 "알"이 더 보편적인 단위이고 아이스 바닐라 라테 두 잔이면 하루 종일 든든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그들의 위장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 자랑스럽게 그 사실을 공유한다. 또는 선천적으로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경우의 "소식좌"들도 있는데 그들은 과학기술이 이토록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약 한 알로 인간이 필요한 영양소를 채울 수 없음에 무고한 과학자들을 탓하기도 한다. (생물공학 전공자로서 괜히 찔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소위 말해 입이 짧거나 밥 먹는 것에 대한 귀찮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삶의 ("유일한"이라고 표현하기엔 그 외에도 수많은 기쁨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커다란 기쁨 중 하나가 먹거리 장보기임과 동시에 오늘은 내일은 그리고 모레는 어떤 음식을 누구와 함께 먹을지 계획하는 것에 있는 나에겐 정말 놀라운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중들의 반응은 "신기함"보다는 "부러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멈출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지친 탓일까? 많은 사람들은 "소식좌"인 사람들의 "미친 가성비"가 부럽다는 반응이었다. 작은 양의 음식만 먹어도 만족한다는 것은 그만큼 식비가 적게 든다는 의미이고, 만성적 배고픔을 느끼는 대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훌륭한 가성비를 뜻하는 바였다. 나 역시 타당한 이유 없이 값이 비싸게 매겨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인간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음식은 영양분 자체보다는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다소 안타깝게 느껴졌다.

소식좌 자체가 새로운 콘텐츠가 되었다. 무시무시한 양으로 승부하는 먹방이 아닌 적게 먹어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관찰 대상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성비가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한 번에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멀티태스킹" 능력 역시 중요시된 것 같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이 또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건 나 역시 강박이 생긴 부분 중 하나인데 실험랩에서 대학원 생활을 이어오다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나의 심심한 변명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단 하나의 결과라도 더 얻기 위해서 조금씩 욕심을 내는 것이다. 물론 동시다발적으로 실험을 수행하다 보면 잦은 실수로 인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조금이라도 시간과 비용 그리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즉 충분치 않은 자원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우리 모두 "굳이"의 미학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가장 짧은 시간의 경로를 안내해 주는 지도 어플에 열광하고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동네 맛집을 모색하는 대신 평점과 리뷰 개수가 가장 많고 믿음직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졸업했으면 곧바로 취직 또는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이 "국룰"이며 이력서 상 공백이 눈에 띄는 경우엔 누가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추가 설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초래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그 누구도 "굳이" 시간을 갖고 고민하려 하지 않는다. 효율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회는 너무 많은 것들을 "낭비"라고 정의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실수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감히 내 생각을 조금 더 보태보자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가 된 것 같다. 더 이상 "굳이" 모험하지 않는 것이 "국룰"이 된 것 같다. 서로를 알아보고 마음이 동한다는 고귀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잃을 것이 많아진 우리들은 직접 행동에 옮기는 대신 TV에서 방영되는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타인의 썸으로 대리만족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화엔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사랑 (love)"이라는 가치 하나만으로 관계가 이뤄지는 경우는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 감정만큼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두 사람 간의 "호환성 (compatibility)"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러한 현상을 각자의 커리어를 중요시하고 인생 파트너에 대해 신중하게 선택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지혜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실수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이러한 실수로 인해 가성비를 깎아 먹는 일을 피하고 싶은 우리들의 욕심이 담겨있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 굳건히 자리 잡은 가치관에 대해 그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싶다. 실수에 너그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모든 공백은 한심하게 여겨졌고 열매를 맺지 못한 경험들은 낭비로 정의되어 버렸다. 약간의 여유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들이 자유롭게 모험하기엔 더욱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 역시 당장 "열매" 없는 시기를 보낸다는 불안함 때문에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을까 싶기도 하다. 한창 졸업 연구를 위해 왕성하게 달려야 할 지금 나는 플로리다 게인즈빌이라는 지방도시로 교환을 오게 되었다. 평소만큼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새로운 곳에 도착한 것은 아니라 겁도 났지만 처음으로 나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마주한다는 일상 자체로도 이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을 아주 떨쳐버리기는 어려웠다. 나는 대학원생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봤을 땐 많은 것이 약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렇게 막연한 미래를 갖고 있는 청년들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막연함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만드는 것도 개인의 몫이겠지만 그 시간을 겪으면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굳이" 40분 간격의 지역버스를 기다려서 "굳이" 시내로 나왔다. 지난주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발견한 동네에 와서 고유한 테이스팅 노트가 돋보이는 카페로 "굳이" 발걸음을 옮겼다. 부족한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방에 있는 티백 대신 7,000원이 넘는 라테를 "굳이" 주문했고 킨들과 맥북, 시력 교정 안경과 선글라스까지 "굳이" 챙겨 나와서 이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성비만 고려한다면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는 행위 자체도 시간 낭비로 정의될 수 있다. 대학원생으로서 다음 주 실험 계획과 논문 스터디와 정보학 분석을 위한 코딩 공부 등 건설적으로 미리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일은 모두 다 "굳이" 해내는 일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굳이 여행하고 굳이 시간을 찾아서 사랑하는 이들을 마주한다. 굳이 글을 써서 나의 생각을 남기고 이를 나누면서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찾아 굵고 진한 연대감을 키워가기도 한다. 나 홀로 마음에 드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며 똑딱 해치우는 한 끼 식사도 필요하지만, 가끔씩 굳이 값 비싼 세금과 팁까지 지불하며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식사 시간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모든 일을 "가성비"라는 기준으로 그 값어치를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굳이" 40분 기다리고 15분 지역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와서 7,000원짜리 라테를 시키고 카페에 앉아서 논문 스터디 대신 브런치에 글을 두 편이나(!) 업로드하고 있는 나.
밥보다 비싼 2만원 짜리 아사이 볼과 룸메 친구와의 커피 데이트. 누군가 가성비가 아쉽다고 판단하더라도 우리가 나눈 대화는 값을 매길 수 없이 소중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당장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시시하기 그지없지만 각자의 "열매"는 스스로 정의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시선과 이를 바탕으로 한 기준으로 누군가의 자원이 향하는 지향점을 평가한다면 과연 누가 행복할까 하고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각자의 열매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왜냐면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집을 부리는 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란 "고집을 부려 구태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 소음에 흔들리지 않을 강인함 역시 우리가 키워내야 할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응원하고 싶다. 그대의 선택이 어떠하든, 사회가 정의하는 "열매"와 거리가 멀든 가깝든,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심이 닿은 그대의 행보를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나 스스로에게도 닿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누군가 다소 비효율적인 길로 돌아가려 하더라도 그가 앞을 바라보고 있다면 조금 더 너그럽게 응원하자. 친절한 마음들이 충분히 쌓인다면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유 있는 저녁 식사 시간을 즐기며 길고 긴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진득하게 감상할 수 있는 날이 도래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마트 입구마다 정말 싱싱하고 예쁜 꽃다발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는데 오늘은 아깝다는 생각 대신 한 다발 구매해서 귀가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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