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맞이하는 Year 2
벌써 뉴욕에 도착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작년 2월 졸업식을 마치고 십 년이 조금 넘었던 대전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본가로 올라와 주변 사람들과 슬픈 작별 인사를 나누며 출국 준비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라고 말하기엔 체감상 꽤나 먼 과거의 일 같기도 하군. 당시 출국 길에는 감사히도 아빠가 동행해 주신 덕분에 훨씬 덜 외롭고 어색했는데 그만큼 낯선 환경과 어수선한 분위기를 함께 나누다 보니 결국에는 아빠 고생만 시킨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컸었다.
아무리 여러 차례 여행했던, 방문했던, 또 직접 살았던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이 도시의 한 대학에 소속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그만큼 신경 쓸게 많았다. 외국인으로서, 연구원으로서, 그리고 뉴욕 커뮤니티의 한인으로서 새롭게 익히고 적응할 것들이 많았다.
끊임없는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국 적응의 동물이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고, 앞서 언급한 대로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실 "뉴욕"은 워낙 흥미진진한, 말 그래도 "익사이팅 (exciting)"한 곳이기 때문에 가난한 포닥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외롭고 심심할 틈이 잘 생기지 않았다. 그저 이 도시의 화려함을 즐기며 주중에는 열심히 연구하고, 주말에는 열심히 뉴욕 생활을 즐기면 되었다.
그렇게 따스운 봄, 찬란한 여름,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을 뉴욕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실제로 이 도시와 더욱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원래도 워낙 좋아했지만 이곳에서 사계절을 경험함으로써 그 진가를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지만 여기서 평생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될 건 또 없지 않은가?라고 수사적 의문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12월까지는 황홀했던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 잠깐의 한국 일정을 뒤로하고 뉴욕에 복귀하고 나니 화려함 뒤에 숨어있던 뉴욕의 진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어찌 보면 일 년 정도는 지나야 제대로 판단하고 관찰할 수 있는 도심 속 모습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주 새로운 형태의, 또는 성격의 도시를 마주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춥고, 어둡고, 배고픈 겨울을 지새면서 뉴욕에서 평생을 약속하기엔 많은 한계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특히 현지 기준 최저임금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불안한 신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외국인 포닥으로서의 삶에 대한 애로사항을 느끼게 되었는데 앞으로 소개할 글에서 하나둘씩 풀어보겠으나 나를 가장 힘들게 한건 내 통장이 아닌, 나의 마음이 가난해진다는 변화였다.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지리적 국가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나에게 소중한 수많은 것들은 여전히 한국에 있고, 한국에서 계속된다는 깨달음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저울질을 시작했고 두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고민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당장 원하는 삶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한국에서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재 글의 주제이자 제목은 "뉴욕에서 살아남기"로 정했다. "남기"라고 하면 결국 "남고 싶다" 즉, 잔류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어느 정도 내포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불과 얼마 전에 내린 결정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이 도시를 사랑하고,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 충분히 누리고 살 수 있는 방도를 찾는다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은 마음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한계점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결정, 더 나은 현실이자 미래를 위한 도약을 그저 뉴욕에서 살아남지 못한 비겁한 도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포장된 나의 결정을 바라보기엔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라고 요구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저 내가 경험한 뉴욕의 사랑스러움과 더불어 이 도시의 못생김 역시 수용하고 받아들여 이곳에서 평생을 기약할 수는 없더라도 계속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정체성의 일부로서 뉴욕을 품고 싶은 마음이다.
여전히 뉴욕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도시의 쉽지 않은 점들, 어려운 점들, 그리고 장애물들까지도 다뤄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홀로 외로운 해외 살이를 이어가는 재외국민 독자 여러분들을 위로하거나, 해외 포닥으로서 연구실 생활을 이어가는데 대학원생 여러분들께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또는 끝없는 동영상 스크롤을 대신해서 재미있는 글 한 편을 읽었음에 뿌듯함을 느낄 독자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번 다시 뉴욕에 도착해서 느낀 벅참에 대한 글들과 비교했을 때 다소 글의 톤이나 주제, 그리고 성격 자체가 많이 다르겠지만 이번에도 부족하지만 진솔된 글로 나의 뉴욕 생활기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두 번째 뉴욕 생활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