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너무 춥고, 어두워도 너무 어두워
11월 초 부모님이 뉴욕에 방문하셨을 때 다 같이 5번가에 위치한 노스페이스 (North Face) 매장을 방문했다. 미국 동부에서 홀로 추운 겨울을 맞이해야 할 작은 딸이 안쓰러우셨는지 그해 생일 선물은 기능성 좋은 두꺼운 겨울 패딩잠바를 구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침 11월 중순에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평소에도 핀터레스트 (Pinterest) 감성의 노스페이스 눕시 파카를 한 벌 갖고 싶었던 나는 신나게 이 옷 저 옷 착용해 보았고 결국 Mushroom Grey 색상의 남성용 패딩을 S 사이즈로 구매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춥고 서러운 겨울이 내 운명 앞에 놓일지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게 부모님과 공항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11월 말 추수감사절을 맞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크게 절망적이진 않았다. 도심 속을 빨갛게 또는 노랗게 물들었던 단풍 그리고 은행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슬슬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때부터 부모님께서 사주신 패딩 잠바를 열심히 입고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12월이 되자 기온이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패딩 없이는 외출하기 어려운 날씨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모든 것들이 견딜만했다. 우선 "뉴욕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라는 황홀함과 낭만에 취해 추위를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외출과 동시에 얼굴을 강타하는 바람에 콧물이 흘러내렸지만 Macy's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장식, 락커펠러 광장 앞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브라이언트 공원 (Bryant Park) 크리스마스 마켓이과 아이스링크장 모습을 보면서 덮혀진 마음이 내 몸도 녹여주었다. 물론 특히 주말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거동이 불편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기뻐 보여서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평소에는 마냥 바쁘고 치열하고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난듯한 뉴요커들의 짜증스러운 표정이 아닌 다가오는 성탄절을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들과 보내기 앞서 설레하는 기쁜 얼굴들이 가득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뉴욕에서 보내는 첫 번째 겨울이자 성탄절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 낭만을 십분 만끽하고자 도심 곳곳으로 크리스마스트리 사냥을 다녔는데 그 기쁨이 매서운 추위를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 같다.
그리고 새하얀 모습의 뉴욕을 처음 겪는 황홀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운동화가 눈에 젖어 동상에 걸릴뻔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신나게 맨해튼을 누볐던 것 같다. 마치 맨해튼을 무대로 삼은 크리스마스 스노볼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새하얗게 변한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며 이곳이야 말로 진정한 Winter Wonderland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누군가 흔들었을 때 반짝이는 별가루와 눈이 내리며 구체 안 풍경이 더 빛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뉴욕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제대로 즐기고 연말과 연초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짧게나마 한국에 다녀왔는데... 1월의 뉴욕은 내가 귀국 전 짧게나마 경험했던 겨울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세상이었다. 우선 도시를 빛냈던 수많은 성탄절 장신구들은 이미 치워진 지 오래였고, 어디서도 빨간색과 초록색이 아름답게 섞인 조명이나 설치물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기후적으로도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계속됐는데 가뜩이나 일조량이 최단으로 줄어진 마당에 낮에도 흐리고 축축한 날씨가 계속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월 마지막 주에 몰아친 눈 폭풍은 뉴욕 시내에 상당한 혼란을 주었는데 몇 시간 만에 눈이 약 20~35cm 정도 쌓이더니 곧바로 눈이 얼어 도로가 빙판길이 되었다. 당시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모든 수업과 일정을 비대면으로 전환했는데 하지만 실험실 인큐베이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어렵게 유전자 편집을 통해 얻어낸 세포를 못 본 체할 수 없는 포닥들은 어떻게든 출근할 방법을 모색했고 그렇게 연구실에서 서로를 마주했을 때 그저 어색한 미소를 나누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돌아오자마자 1월 내내 영하의 기온이 10일 넘게 지속되는 극심한 한파가 찾아왔는데 2월이 되면 그래도 상황이 좀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희망이 무색하게도 2026년 2월은 뉴욕 역사상 기록적인 눈 폭탄의 달로 거듭났다. 한국에서는 각종 설날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과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쯤, 뉴욕에는 블리자드 (Blizzard), 이른바 '폭탄 사이클론(Bomb Cyclone)'이 같아했다. 비로 시작했던 날씨가 순식간에 폭설로 변하며 도시 전체를 마비시켰고, 센트럴 파크 기준 50cm 이상의 엄청난 양의 눈이 쌓였다. 이날도 뉴욕 시장은 긴급 사태를 선포하고 비필수 차량의 도로 주행을 전면 금지했며 휴교령을 내렸지만... 그렇다. 여전히 포닥들은 연구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강추위가 계속되며 시속 75~100km/h에 달하는 강풍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 모든 바람이 허드슨강을 바라보고 있는 아파트 창문을 때리는 바람에 숙면을 취하기 어려웠고, 하필 중앙관리 대상인 라디에이터 역시 극심한 노후화 탓에 과부하가 왔는지 매일밤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십상이었다.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고, 한국에 있는 가족이 유독 보고 싶은 밤이 많았던 겨울이었다. 어디서든 적응을 잘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특히 언어적 그리고 문화적 장벽이 낮아 해외 생활에 큰 자신감이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내가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순간이었다. 이런 나의 심적 변화 때문에 괜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이보다 더 안전하고 따뜻하고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없는 해외 포닥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뉴욕에 역사적인 블리자드가 강타한 일요일 당일에도 예정된 연구실 회식을 취소하지 않은 지도교수님의 이야기는 굳이 자세히 하지 않겠지만... 아무쪼록 황홀함은 걷어내고 제대로 된 북미 동부의 강추위를 나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 맨해튼의 모습을 마주하며 유독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워낙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연구실에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들썩거려서 커피 한 잔이라도 꼭 밖에서 마셔야 하는 증상을(?) 보였지만 심신의 안정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에도 날씨가 이토록 중요한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본 글을 작성하고 있는 3월 첫째 주가 지나면 데이라이트 세이빙(일광 절약 시간제)이 시작되며 (아직도 솔직히 진정으로 이해 가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일조량이 한 시간 정도 더 길어지게 된다! 워낙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이어가는 나에게 일요일 아침잠을 한 시간 덜 자게 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그저 좀 더 환한 퇴근길을 만끽하고 따뜻한 봄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뉴욕의 겨울...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봄의 기운을 실컷 느껴야겠다고 다짐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역시 인생은 마냥 상향곡선을 그릴 수는 없는 법. 되려 구불구불한 사인곡선을 그리는 날씨와 기분이 결과적으로는 더 안정적일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린 뉴욕에서의 첫 번째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