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반짝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차갑고 냉정한 뉴욕의 계산법
이미 서른을 맞이한 완연한 어른이지만 얼마 전까지 학생이었던 탓에 (또는 덕분에?) "자본"과는 비교적 먼 거리에 있는 어른의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원생 월급은 석사 때는 100만 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박사과정에 입학해도 평균 150만 원 정도를 받아 생활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동산" "투자" "주식"은 나에게 익숙한 대화 주제가 아니었다. 물론 전산학 또는 전기 및 전자 공학과 같은 "부자 학문"을 전공하면 대학원생들에게 주어지는 봉급도 (stipend) 훨씬 높겠지만 내가 속한 생명화학공학과라든지 일반적인 자연대에서는 200만 원이 넘는 월급을 받는 대학원생은 아무도 없을 것으로 (감히) 예상된다. 여기에 국가 장학금을 받더라도 매 학기 지불해야 하는 학비도 있고, 다들 이십 대 후반을 맞이하며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며 스트레스 풀한 대학원 생활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주변친구들 모두 하나둘씩 자취를 시작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도 목돈을 불릴 겨를이 잘 안 생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가난하다"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정말 감사히도 우리 부모님께서는 노후에 보탬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요구 대신 하고 싶은 공부를 실컷 해서 자랑스러운 박사가 되라는 큰 응원을 매번 보내주셨다. 대학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본가에 놀러 가면 온갖 맛있는 음식으로 기운을 불어넣어 주셨고, 입고 있는 외투의 보온성이 떨어진다며 시즌마다 예쁜 꼬까옷을 선물해주시기도 했다. 같은 연구실에서도 박사 공부를 꿈꾸지만 당장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취업을 선택하는 동료들을 보며 그저 공부에 집중하라는 부모님의 응원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더 크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부유해서인지 "가난할"수밖에 없는 대학원 생활을 오래 했지만 스스로가 실제로 가난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응원을 받으며, 존경하는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내가 할 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씀씀이도 줄어들었는데 (그렇게 큰돈을 함부로 써본 적도 없지만) 어차피 내가 입을 옷은 실험복 안에 입기 편한 옷이 좋았고, 굳이 값 비싼 옷을 입고 실험하다가 시약이 묻는 일은 내가 더 싫었다. 실험을 제외하고는 앉아있을 시간이 많다 보니 굳이 더부룩하게 외식을 자주 하고 싶지도 않아 졌고 박사 입학 후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 본격적으로 집에서 손수 밥을 차려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연히 그 나이 때 한창 즐기게 되는 예쁜 옷, 느낌 좋은 카페, 신상 디저트 메뉴를 좋아했지만 딱 그 정도면 충분했고 그러다 보니 또래보다 검소하게 지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공부에는 굳이 화려한 사치가 필요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대학원생임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뉴욕은 역시 달랐다. 더 이상 모아둔 돈을 "여행 중이라는" 이유로 "플렉스 (Flex)"할 수 없었고, 이전보다 더 타이트하게 예산을 세우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렇게 유독 더 예산에 신경 써야 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바로 나의 직업이자 신분 탓이었다. 내가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는 포닥 (podstodc)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포닥 연구실을 알아볼 때는 무조건 "미국 북동부에 있는 도시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사실 내 마음속후보군은 그저 보스턴 또는 뉴욕이었다.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 따뜻하지만 재미없는 삶을 반년 간 영위하다 보니 큰 깨달음을 얻었고 다시 미국 생활을 하게 된다면 무조건 젊은 사람도 많고, 문화생활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차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걷기 좋은 (walkable) 도시로 이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컬럼비아 대학에 도착했을 때는 지하철 한 번이면 뉴욕의 황홀한 모습이 펼쳐지는 현실에 취해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갈수록 금전적인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 서른이 넘어서도 하고 싶은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박사 후 진로로서 포닥을 결정한 데는 그 외 이유들도 있지만 이건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국내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취업 준비를 하는 대신 미국으로 나왔다는 것부터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께 손을 벌려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마이너스 통장"만 면하자는 목표가 절실해졌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청자가 의문점을 품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비리그 대학 포닥인데 벌이가 그렇게 부족해?"
매번 나의 대답은 슬프고 간결하다. "네."
우리 학교만 특이적으로 포닥 연봉이 적은 것은 아니고 매년 미국 국립 보건원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서 정해주는 포닥 최저 연봉이 있는데 생활비가 비싼 주 그리고 도시에 대한 고려를 약간은 해주지만 절대 충분한 정도는 아니다. 요즘 달러가 워낙 올라서 굳이 계산해 보면 연봉이 1억이네!라는 자부심을 잠깐이라도 품을 수 있겠으나... 안타깝게 첫 2년 동안에도 지불해야 하는 주세, 연방 세와 더불어 한 달에 50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하는 단칸방 월세를 고려하면 수중에 남는 돈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한 달에 500만 원이나 하는 원룸 아파트 (studio apartment) 마저 상태는 처참하다. 동네도 웨스트 할렘 (West Harlem)이라 치안도 안 좋고, 당장 옆집 사는 이웃들도 매너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이기적인 생활 습관을 자랑하는데 동네가 후지다 보니 주변에 이렇다 할 카페나 맛집, 운동 시설도 없고, 가장 가까운 홀푸즈마켓 (Whole Foods Market)이나 트레이더조 (Trader Joe's)도 40번가나 떨어져 있다. 최근에는 비매너 이웃들 때문에 집에서 속상할 일이 좀 많았는데 이게 다 더 좋은 동네로 이사 갈 수 없는 나의 신분과 형편 탓인 것 같아서 굉장히 우울했었다. 무언가 문제를 직면했을 때 스스로가 무력하고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참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많이 속상했던 것 같다.
거주하는 아파트 퀄리티는 둘째치고 그 동네, 즉 어떤 사람들이 내 이웃이 될 것인지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뉴욕에는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서로를 판단하고 (노골적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계급화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최근에 Chris Zou라는 중국계 캐나다인 인플루언서의 뉴욕 방문기 영상을 접하며 이런 현상을 잘 정리할 수 있었는데 뉴욕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만나 교류할 때 크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첫 번째는 "어떤 일 하세요?" 말 그대로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 묻기 위한 질문이고, 두 번째는 "어느 동네에 사세요?"인데 이는 다른 지역 사람들처럼 서로의 귀갓길을 계획하거나, 다음에는 어떤 동네에서 보는 게 더 편리할지를 헤아리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방을 평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웨스트 빌리지나 어퍼 웨스트사이드 같은 부자동네에서 산다고 하면 선망과 존경이 담긴 표정을 내비치고, Hell's Kitchen에 산다고 하면 의미심장한 놀라움을 비친다 (고정관념적 그리고 통계적으로 이쪽 동네에는 성소수자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LIC (Long Island City)"에 산다고 하면 맨해튼이 아닌 저렴한 월세를 찾아 거리감을 선택한 뉴요커에 대한 판단과 마지막으로 Flushing에 산다고 하면 "Ew"라는 무례한 판단까지 이어진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쪽 동네가 퀸즈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밀집되어 있고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를 위해 과장이 보태졌겠지만 크게 공감이 갔고, 또 한참을 웃다가 어딘가 슬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뉴욕이 세계 자본의 중심인 만큼 화려한 모습도 많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어려움의 농도도 참 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빈부격차 (Wealth disparity)마저 극심한 것이 Chris가 영상에서 말한 것처럼 뉴욕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 그가 최저임금자일 수도 있고, 억만장자 갑부일 수도 있다는 말에 제대로 공감이 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웃픈 (웃기고 슬픈)" 공감 포인트는 뉴욕에서는 "항상 가난하게 느껴진다 (Always feel poor)"라는 점이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화려하지만 막상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더 가까이서 직접 관찰하게 되는 씁쓸한 마음이랄까. 이전에는 뉴욕에 오면 따로 숙소비 걱정을 안 해도 되거나, 여행이라는 이유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먹고 싶은 것들을 다 먹었지만 로컬로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매일같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서러운 건 "포닥은 가난한 존재"라는 이 바닥의 이치이다. NIH에서 정해준 최저 연봉도 어쩔 수 없고, 막상 현지 지도 교수님들도 아주 넉넉한 형편은 아니신 것 같아 달리 불평하기는 어렵지만 항상 의문이다. 왜 본인만의 열정으로 열심히 탐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늘 배고프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넋두리로 마무리하는 글이지만 뉴욕에서 느낀 계급 사회가 내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 때 가장 속상한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 예산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 대신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더 열심히 치열하게 경험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품게 된다. 마음은 가난해도 누구보다 사랑받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열정만은 억만장자라는 기세로 또 계속해서 잘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