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포닥랩 고르기 (1)

포닥랩 선택 시 고려하면 좋을 연구실 내부 요인들

by 성급한뭉클쟁이

벌써 미국 포닥으로 근무한 지 만 일 년이 넘었다. 내 링크드인 프로필에는 "1년 2개월"이라고 근무 기간이 표시되는데 이제 만 14번째 달을 맞이했기 때문인가 보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포닥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뉴욕에 도착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다니!" 싶으면서도 또 사진첩의 힘을 빌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농도 높은 시기를 보낸 것 같아 "일 년 밖에 안 됐나?" 싶기도 하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가 일 년 거치는 성장했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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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168번가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의 메디컬 센터. 출퇴근길에서 매일 "STAY AMAZING"이라는 문구를 읽게되는데 억지로라도 힘을 내보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일 년 간 포닥 생활에 대한 후기와 더불어 그 간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포닥 연구실을 선택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내가 지금 속해있는 연구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보도록 하자. 나는 현재 포닥으로서 두 분의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있다. 현지 표현을 빌리자면 "joint postdoc"인데 공동지도를 받고 있는 "공동 박사 후 연구원"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고용형태를 모색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먼저 연락드린 교수님께서 교내 공동연구를 수행 중인 연구실이 있는데 두 번째 랩을 대상으로 "Job Talk (포닥 세미나)"을 한 번 더 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하셨다. 당시 이미 수차례 포닥 면접을 치르던 중이라 발표를 한 번 더 하는 것이 크게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흔쾌히 수락했고 결과적으로 두 교수님이 나를 고용하고 지도하는 형태로 오퍼를 받게 되었다.


간혹 대학원에서도 공동 지도를 받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인생의 무엇이든 그러하듯 장단점이 뚜렷한 것 같다. 장점이라고 하면 자원도 두 배, 기회도 두 배, 무엇보다 교수님의 관심도 두 배라는 점인데 단점은 바로 교수님의 관심이 두 배라는 점이다(?). 애매하더라도 두 랩에 속해있는 경우에는 실험실 업무 및 책임 역시 두 배가 된다. 랩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랩 세미나 역시 두 개인 데다 실험실 장비 청소 및 시약 재고 관리와 같은 연구실 관리 의무 역시 두 배가 된다. 여기에 지도교수님과의 개인 미팅 또는 소규모 프로젝트 미팅까지 더해지면... 사실 미팅만 참석하다가 일주일이 다 지나가버리는 일도 흔히 일어나는 바람에 최근에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며 내가 필수로 참석해야 하는 미팅 목록을 살짝 조정하기도 했다. (포닥 본인에게는 박봉이지만 교수님 입장에서는 가장 원대한 비용이 포닥 인건비일 테니... 아마 무한한 미팅보다는 논문 용 데이터를 만드는 일에 인력을 투입하는 게 더 유용하다는 데는 공감하신 것 같았다.)


무튼 지난 일 년 간 두 분의 지도교수님을 모시다 보니 앞서 설명한 대로 참석해야 하는 세미나 및 미팅이 너무 많다는 점이 버겁게 느껴진 것 같다. 물론 양쪽 연구실을 오가며 실험하는 덕분에 내가 실험실에 부재한 순간에 대한 알리바이 형성이 가능하다는(?) 점도 있지만 솔직히 평소 연구실 생활을 하다 보면 딴짓할 새도 없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실험하다가 퇴근할 뿐. 그래도 확실히 학생을 탈출했다고 느끼는 게 (단순히 지도교수님의 스타일 차이일 수도 있지만) 갑자기 부르시는 일은 잘 없다. 교수님들도 포닥과 소통할 때 꼭 메일이나 슬랙 (Slack) 플랫폼을 활용해서 서로의 일정을 먼저 확인하고 미팅을 잡는데 직업적 예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좋다.


포닥 지도 교수님이 두 분인 덕분에(?) 내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가 두 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박사 지도교수님을 선택할 때만큼 중요한 게 포닥 지도교수님인 것 같다. "교수님-by-교수님"이라는 말이 흔히 사용될 정도로 교수님마다 지도 스타일이 다를 텐데 포닥 역시 "포닥-by-포닥"으로서 각자의 포닥 과정을 통해 얻으려는 목표나 지향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잘 맞는 "짝"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 게다가 포닥의 경우 이미 박사 학위를 받은, 말 그대로 박사 "후 (post)" 연구원이기 때문에 "학위 수여"를 빌미로 한 권력 불균형은 비교적 덜 해서 포닥 역시 잘 맞지 않은 지도교수님을 끝까지 참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론 학위 수여가 아닌 "계약직 고용 조건"과 "비자"를 빌미로 한 권력 불균형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재미없는 결론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잘 맞는 포닥 지도교수님을 찾으려면 내가 원하는 포닥 생활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의 "백전백승"처럼, 물론 교수님이 나의 "적"은 아니지만(?) 내가 어떤 리그 또는 싸움을 하려는지 잘 파악하고 있어야 나와 잘 맞는 연구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학계"라는 바닥에서 좋은 논문이 정의되는 방법은 결국 인용지수 (Impact Factor)가 높은 논문일 텐데 이런 높은 IF 논문을 많이 써서 학계에서 자리를 잡고 싶다면 논문을 많이 잘 쓰는 교수님을 찾으면 되는데... 사실 이렇게 적으면서도 이런 발언에는 너무 많은 오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조금 찔리는 마음이 든다. 결국 "논문을 많이 잘 쓰는 교수님"이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답해야 하는데 이건 절대적인 능력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포닥과 지도교수님의 궁합 (chemistry)과 시너지 (synergy)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정교하게 미리 예측하고자 해도 예상과 빗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아무리 Cell, Nature, Science와 같은 최대 인용 횟수를 자랑하는 논문을 매년 열 편씩 교신저자로 게재하는 교수님일지라도 나와의 케미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너무 많은 포닥들이 소속된 경우 내부 경쟁이 심할 수도 있고, 교수님이 너무 유명해서 외부활동으로 바쁜 경우 연구 지도를 충분히 그리고 자세히 해줄 수 있는 시간이 한참 부족할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 교수님" 연구실에서 생활하다 보면 특히 포닥 커리어 초반에는 프로젝트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될 확률도 같이 높아진다. 연구실에서 누구든 가장 유의미하고 임팩트 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이 결국 교수님의 관심을 차지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논문을 게재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가장 활발하게 연구를 이어나가는 조교수 또는 부교수님을 찾아 포닥 연구실을 선택한다면 낭비되는 시간 없이 굉장히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과도한 밀착 지도 (hands-on)를 받다 보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해 보자면 연구실을 새로 시작하는 교수님과 모든 시작 과정을 함께 겪으며 돈독한 파트너십이자 우정을 쌓을 수도 있지만 결국 독립적인 PI (Principal Investigator)로 자리를 잡으려면 나만의 연구 주제가 필요한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궁극적으로는 박사 그리고 포닥 지도교수님의 연구 주제를 "짬뽕"하든, 두 가지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며 나만의 연구 질문 (research question)을 발견하든 해야 경쟁력 있는 임용 세미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무한한 관심을 받으며 시작부터 생산적인 프로젝트 진전과 더불어 일 년 만에 발표도 하고, 논문도 투고하고, 리비전을 준비하게 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운이 좋은 경우에도 결국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구는 과연 내 것인가, 우리 지도교수님의 것인가?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는 사람인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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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닥 1지망은 MIT와 Broad Institute 소속 연구실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업무 강도가 너무 세서 힘들었을 것 같지만 커리어적으로 제일 멋진 교수님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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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말년차 쯤 면역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Ragon Institute의 연구실들도 알아보았는데 저년차 조교수님 연구실로 갈지 고민하다가 현재 연구실을 선택했다.

어차피 상세한 지도 스타일은 미리 알기도 어렵고 컨트롤하기도 어렵다면 건강한 연구실을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지표가 있기는 하다. 바로 연구실의 다양성 (diversity)이다. 연구실 규모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은 얼마나 국제적인지,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는지, 이와 더불어 성비도 연구실 분위기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연구실 구성원들의 평균 연차이다. 석사 또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제외하고 연구실 소속 포닥들이 과연 몇 연차인지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는 DEI, 즉 "다양성 Diversity, 형평성 Equity, 포용성 Inclusion"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거론되곤 하는데 이는 정치, 문화, 인종, 성별, 장애 등의 차별이 없는 평등한 것을 가리킨다. 연구실 역시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어떤 구성원이 각자 일 인분을 하고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앞서 논의한 대로 규모가 너무 크면 아무래도 지도교수님과의 상호작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평하게 나누더라도 결국 지도 시간을 실험실 구성원 수 (n)으로 나누다 보면 그만큼 작은 파이 조각을 (1/n) 맛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국제적 인지도 굉장히 중요한데 나의 경우 중국계 지도교수님 연구실에서 연구하다 보니 아무래도(?) 중국계 포닥이 가장 많은 연구실 환경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두 연구실 간에도 차이는 존재하지만 한 곳의 경우 몇 년 전부터 지도교수님이 중국인 포닥만 선호하다 보니 랩 세미나가 아닌 시간에는 연구실에서 대부분 중국어가 들리기도 한다. 그나마 나의 경우 어렸을 때 중국 상하이에서 살았던 경험 덕분에 언어가 낯설지 않고 이해할 수 있지만 홀로 실험실 벤치를 지키고 있는 프랑스인 포닥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면 내가 괜히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국에는 자국인들보다 외국인 연구원이 더 많은 것이 일반적인 만큼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국적 역시 다양한 연구실이 더 좋은 것 같다.


다양한 배경에 대해서는 각자 어떤 전공을 갖고 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를 가리킬 수 있는데 "생물학" 연구실임에도 불구하고 수학, 전산, 화학, 생물 등 다양한 전공을 갖고 있다. 나의 경우 전공 학과는 생명화학공학인데 현재 시스템 생물학과에서 RNA 분자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다양한 학제 간 교류를 통해 같은 세미나 발표를 들어도 토론할 수 있는 내용이 더 풍부해짐을 느끼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날 확률도 같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목적을 갖고 포닥 생활을 하는지도 중요한데 모두가 다 "교수 임용만이 성공"이라는 이념을 갖고 있다면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나의 목표나 희망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같은 연구실에서 같은 박사 후 연구원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IMG_0528.JPG 최신 실험 장비를 갖춘 곳이 좋은 연구 결과를 내기에 최고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저 새로운 원심분리기 하나에도 설레는 포닥이다. 열심히 RNA 뽑아야지.

마지막으로 다양성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연구실 구성원들의 연차라고 생각한다. 포닥 인터뷰에 임하다 보면 우선 내 연구 발표 이후 구성원들과의 1:1 미팅이 진행되는데 이때부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평균적으로 연구실에 머무는 햇수인 것 같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대부분 포닥들이 7-8년 차라면... 개인적으로 이건 좀 위험을 암시하는 붉은 깃발 (red flag)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분야에 따라 그리고 개인 목표에 따라 논문을 한 두 편 게재하다 보면 포닥으로서의 커리어가 길어지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결국 불안정한 계약직 고용 형태를 십 년 가까이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여러모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바이오 분야에서 주변 포닥들과 교류하다 보면 뇌과학 분야 포닥 기간이 가장 길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는데 내가 속한 연구실의 경우에는 분자생물학 또는 암생물학 분야에서도 8년 차 포닥을 마주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학위를 한 번 더 받을 수 시간보다 더 긴 나날들을 불안하게 살아낼 자신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외롭고 고달픈 해외생활 중 빈곤함을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포닥으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동료의 연차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조를 지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국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기 쉬운 연구실 구조이기 때문에 아무쪼록 포닥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가난함에 익숙해져서 너무 오랜 시간 이 기간을 이끌면 나에게도 (특히 나의 정신적 건강에도)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연구실 내부적으로 고려하면 좋을 부분들에 대해 논의했는데 역시나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연구실이라는 건물 안 공간과 그 안을 차지하고 있는 구성원들 (지도교수님, 학과 행정원, 동료 포닥 및 대학원생) 외에도 어떤 외부적 요인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어떻게 고려하면 좋을지 정리해 봐야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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