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할 때부터 공부해 놓아야 하는 퇴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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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만화 미생을 처음 만났다.
나는 '김태호'라는 마성의 이름에 이끌려 1권을 굳이 사서 읽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나름의 응원을 보내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촤락. 첫 페이지를 호기롭게 넘겼지만 이내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나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밥 생각도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별 거 아닌 것 같은 만화 속에 내가 그토록 찾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미생의 마지막권을 손에 쥐었을 때가 생각난다. 손에 쥔 마지막 권을 다 읽어 버리면 마치 인생을 다 알아버릴 것만 같은 허무한 공포가 엄습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페이지는 스스로 넘어가도록 중력에 맡겼다. 그리고는 덮여져 버린 마지막 권의 뒤통수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런 삶이 정말 내가 그토록 원하던 회사생활이란 말인가...'
미생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아들의 회사명함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부모님의 말에 온전히 순종하는 순한 양 같이 살았다. 그래서 생각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회사생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을 보고 나니 원인 모를 회의감이 밀려왔다. '겨우 이런 삶을 위해서 내가 그렇게 죽도록 공부한것인가...'라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분유값이 없어 저금통을 깼다는 아내의 청천벽력 같은 말 한마디가 나를 차렷 자세로 회사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하회탈 같이 웃으며 기계처럼 일에 몰두했다.
그렇게 나는 장그래가 되었다가 안영이가 되었다가 오차장이 되기를 반복하는 삶을 몇 년간 살았다. 하지만 본질적인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은 약한 불로 시간을 끄는 달걀후라이처럼 잠시 미뤄놓았을 뿐이었다. 역시나 아이가 웃으며 걸어다닐 때 쯤 다시 그 고민은 시작되었고 판을 뒤집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보였다. 기본적인 노동법을 당연하다는 듯 어기는 회사, 불필요한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하는 상사, 여직원들을 술집 여자 대하듯 하는 동료 등. 관례라는 말 뒤에 숨기고 모른 척 살기에 나는 회사에서 보기에 부적응자였다. 아니 그들의 언어를 빌리면 나는 '융통성이 없는 모난 사람'이었다.
지방대를 나온 내게 '이래서 못 배운 것들은 쓰면 안돼~'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서슴치 않는 상사에게 나는 더이상 굴복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에는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굳이 그에게 아팠던 가정사를 읊어가며 지방대를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를 자신의 놀이터 쯤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장문의 편지로 사직서를 대신하고 회사를 나왔다. 대충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주제였던 것 같다.
나는 '다들 그렇게 산다'라는 말 속에 있는 '다'라는 그룹에 포함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대로 살고 싶었다. 물론 슈렉 고양이 같은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책임감 때문에 나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나는 뭐 해 먹고 살지?'
그제야 제대로 된 인생에 대한 성찰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주변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해보면 서른 이전에 이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10년 전에 고민했던 사내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갈등, 생업을 위해 참아야 하는 부당함들을 그들을 현재 진행형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물론 나 또한 완생(完生)이라 할 만한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미생일 때 회사를 나와도 삶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안다. 가족, 책임감, 대출금, 교육비, 집 등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 미생임을 자처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퇴사하는 것이 다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퇴사나 창업이라는 두 가지 명제만이 인생의 정답이라면 얼마나 삶이 간결할까. 관점을 달리 해야 한다. 회사에 있다고 반드시 불행하다 할 수 없으며, 회사를 나와서 나만의 가게를 차렸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정답은 '나'에게 있다. 회사일이든 창업이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또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나아가 그 일을 잘할 수 있으려면 그 일에 맞는 전략적인 공부도 필요하다. 그렇게 한 분야에서 잘하는 영역이 생기면 그 때서야 자립형 인간을 꿈꿔볼만 하다.
문장은 짧지만 과정은 길어도 너무 긴 일이다. 혼자서 이 긴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이런 마음에서 취업과 퇴사 그리고 창업과 페업을 모두 경험해 본 짧은 식견을 담았다.
책에서는 신입기 - 열정기 - 정체기 - 성찰기 - 퇴사기 - 선택기에 이르는 6가지 단계로 나뉘어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삶의 패턴들을 정형화했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표준화해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최소한 일보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은 되어주리라 믿는다. 또한 내가 미생을 만났듯 본격적으로 회사를 들어가기 전에 이 '퇴사공부'를 미리 해놓는 것을 추천한다. 당신이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이니 시나리오를 잘 짜놓고 지혜로운 카운터을 날리자.
죽을 때까지 스스로 미생일 필요는 없다.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 공부하자.
진로&창업컨설턴트 윤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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