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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Oct 06. 2017

문소리·김혜수·전도연... '여배우'들은 오늘도

<여배우는 오늘도> GV에 참석한 문소리와 전도연.ⓒ 메타플레이


  

영화 <미옥> 포스터.ⓒ 씨네그루


'여배우'가 감독한 영화가 1만을 돌파했다. 다른 대표 여성배우는 신작 개봉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여성배우의 오늘을 만들어준 작품이 개봉 20주년을 맞았다. 그 여성 배우는 차례대로 문소리, 김혜수, 전도연이고, 그 작품들은 <여배우는 오늘도>, <미옥>, <접속>이다. 

2017년 영화계는 '남자영화', 남성 배우 위주의 '기획영화'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부쩍 커진 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여성 배우들은 오늘도 시나리오를 고르고, 연출을 하고, 다른 기회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여배우는 오늘도>의 문소리 
  

<여배우는 오늘도>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한 배우 문소리와 전도연.ⓒ 메타플레이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는 지난 25일 1만 관객을 동원했다. "평점은 많고, 상영관은 적다"는 문소리의 '웃픈' 전언처럼, 40여 개 미만 스크린에서 거둬들인 알찬 수확이라 할 만하다. 26일까지, 35개 스크린을 유지한 <여배우는 오늘도>는 누적 관객수를 1만1194명으로 늘렸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데뷔 18년차 배우 문소리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만든 단편 세 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문소리가 배우 문소리라는 실명 캐릭터를 연기하는 이 작품은 현실을 환기시키는 설정과 극적 상황을 오가는 절묘한 구성, 문소리를 비롯해 여성 배우들이 겪었음직한 에피소드 및 대사들이 더해져 영화적 흥미와 긴장을 자아낸다. 

"적절한 유머 감각과 정확한 화술을 갖춘 이 신인 감독의 두 번째 영화를 기다린다." (이동진)
"이 영화는 문소리가 뛰어난 관찰자라는 걸 알게 해 준다." (김영진)


<여배우는 오늘도>의 1만 돌파는 위와 같은 평단의 격찬과 함께 문소리를 지지하는 동료 배우들과 여성 관객들의 지지 속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도연을 필두로 라미란, 김선영, 김옥빈, 김태리, 공효진, 류현경, 조은지 등 동료와 선후 여성 배우들이 <여배우의 오늘도>를 위해 특별한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만들었다. 정치인 심상정 역시 GV에 나섰고, 또 최민식, 설경구, 박해일, 송강호, 강동원은 최근 <여배우는 오늘도>의 무료 관람 이벤트를 마련, '감독' 문소리를 응원하고 나섰다. 

"특히 최근엔 한국영화가 다양성을 찾기 힘들 뿐 아니라, 남성 캐릭터 중심의 큰 기획영화로 흘러가면서 더더욱 생각이 많다. 데뷔 초반인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여러 영화가 기획됐고, 덕분에 지금 생각하면 요행처럼 이런저런 기회가 찾아왔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하는 <한국영화>와의 인터뷰에서 문소리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가족의 탄생>과 같은 작품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같이 '남성편향'의 작품으로 점철된 '더 나쁜' 분위기 속에서 '연출작'으로 작지만 큰 반향을 일으킨 '감독' 문소리. 

그는 프랑스에서 무대에 올리는 연극 공연 이후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와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장률 감독의 <좋은 날>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나를 특별하게, '특별출연'에 쓰지 말고 옛날에 쓰던 것처럼 평범하게, '주연'으로 써줬으면 한다"는 배우 문소리의 '주연영화'를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미옥>의 김혜수 
  

영화 <미옥>의 예고편 중에서.ⓒ 씨네그루


"사실 스릴러 시나리오가 정말 많이 들어온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선택을 안 했던 건 스릴러 장르 속 여성 캐릭터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단순히 희생자 혹은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또 남성 뺨치는 가해자가 될 생각도 없었다." (<한국영화> 9월호)

최근 박훈정 감독의 <브아이아피>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문소리의 이런 언급은 작금의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처지를 엿보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혜수의 신작 <미옥>은 압도적이다. 

그에 앞서 2016년, 드라마 <시그널>은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그 중심에 김혜수가 있었다. 뒤이어 그해 6월 김혜수는 철없는 인기 여성 배우를 연기했다. 전혀 상반된 성격의 캐릭터였다. 온전히 김혜수의 이름값으로 200만을 동원한 코미디드라마 <굿바이 싱글>은 영화와 캐릭터가 마음에  든 김혜수가 제작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공을 들인 끝에 완성한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장고 끝에 결정한 신작 <미옥>이 11월 9일 개봉을 확정했다. 외견은 김고은과 함께 했던 <차이나타운>을 연상시키는 느와르 장르다. 애초 <소중한 여인>으로 알려졌던 <미옥>에서 김혜수는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현정'을 연기한다. 더불어 이선균이 그녀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상훈을, 이희준이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최 검사를 맡았다. 

최근 공개한 예고편 속 김혜수는 그야말로 '한국의 샤를리즈 테론'이란 수식이 절로 연상되는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짧은 금발머리에 수트 차림의 김혜수는 압도적인 눈빛과 액션 연기로 <차이나타운>과는 또 다른 인상 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영화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문소리의 인터뷰에서처럼, 한국영화 속 여성은 스릴러나 느와르 장르에서 납작하게 왜곡돼 있거나 피해자의 위치에 자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남자영화', '알탕영화'의 홍수 속에서 김혜수는 <차이나타운>에 이어 느와르/스릴러의 존재감 있는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그 자체로 "역시 김혜수"라는 찬사를 이끌어낼 만한 행보다. 

데뷔 20년 전도연과 여성 배우들
  

지난 7월 열린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진행된 '전도연 특별전' 포스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엔딩에서 울림이 있었어요. 3막에서 '연기 때려치우고 감독이나 해볼까?'라는 대사에 극 중 문소리가 '감독은 아무나 하니? 연기나 열심히 하자'라고 말하는 대사가 저한테도 와 닿았어요.  문소리도 영화 찍는데, 내가 못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주변에서 도와주면 영화 제작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최근 문소리와 <여배우는 오늘도> 상영회에 참석했던 '선배 여배우' 전도연은 이렇게 말했다. 전도연은 오늘도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연기 말이다. 시작은 지난 24일 EBS에서 방영하기도 했던 <접속>이었다. 앞선 9월 13일 영화 데뷔작 <접속>의 개봉 20주년 기념 상영회에 참석하는 영광을 맡기도 했던 전도연.  

<접속> <약속> <내 마음의 풍금> <해피엔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피도 눈물도 없이> <스캔들> <인어공주> <너는 내 운명> <밀양> <멋진 하루> <하녀>, <카운트다운> <집으로 가는 길> <무뢰한> <협녀, 칼의 기억> <남과 여> 까지. 20년간 17편의 영화에 출연한 전도연의 출연작들은 그 시기 시기 한국영화계의 경향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작품들이라 할 만하다.

이를 기념해 포털 다음에서 진행 중인 '전도연 사진전'은 27만의 온라인 관람객이 이미 다녀갔다. 이 사진전은 <접속>부터 <무뢰한>까지 전도연이 출연한 작품들의 스틸과 미공개 스틸을 공개하며 팬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전도연도 2010년대 들어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로 오랜만에 <굿 와이프>로 브라운관에 복귀하기도 했다. 차기작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밀양>으로 '칸의 여왕'이란 수식을 얻은 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 전도연의 절치부심이야말로 한국의 연기 잘 하고, 경력 출중한 '여배우는 오늘도'의 현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늘을 기대케 하는 배우들도 적지 않다. 문근영은 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으로 돌아온다. 드라마 <비밀의 숲>의 배두나는 송강호와 함께 <마약왕>을 촬영 중이고, 영화 <아가씨>의 김태리는 문소리와 함께 <리틀 포레스트>를 촬영했다. 손예진과 한효주는 각각 화제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협상>, <골든 슬럼버>와 <인랑>에 출연 중이다.

여성 배우들은 오늘도 브라운관보다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관객들의 바람도 마찬가지다. 남성영화의 틀이 아닌 주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2010년대 이후 스크린을 지배한 '남자영화'들의 득세에 지친 관객들도 마찬 가지다. 2017년의 '다른' 목소리가 어떤 반향으로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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