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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Dec 31. 2017

MBC <방송연예대상>, 최승호 사장의 이례적 행보

MBC <방송연예대상>의 몇 가지 예상 못한 풍경들

▲2017 MBC <방송연예대상>에 출연한 유재석.ⓒ MBC


"우리 MBC 스타들이 다 모였다. 정준호 씨, 김남주 씨, 채정안 씨, 하유미 씨 연기 탁월하고, 다 나오셨네. 박상원 씨도 계시고, 지진희 씨고 계시고, 한효주 씨도 계시고, '파스타' 이선균 씨, 공효진 씨도 아까 봤고, 이병훈 대 선배도 오셨다."

한 마디로, 주책바가지 아저씨가 방송국에 연예인 구경 온 광경이었다. 지난 2010년 연말, 사장 자격으로 <MBC 연기대상> 시상자로 나선 김재철 전 사장의 '진행 논란'은 그만큼 두고두고 언급될 장면이었다. 연예인들을 일일이 호명하는 한편 객석에 앉은 일본, 중국 팬들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까지 일삼았다. 

'공영방송의 사유화'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여느 수상자 못지않은 긴 '애드립'으로 빈축과 논란을 샀다. 시상자로 함께 무대에 섰던 배우 고현정이 민망해하던 모습까지 고스란히 생방송 전파를 탔다. 

2011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도 시상자로 나선 김재철 전 사장은 앞서 <나는 가수다>의 수상이 예고됐던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 "수상자는 예상을 깨고 <나는 가수다>"라고 소개해 2년 연속 비난을 자초했다. 결국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김재철 전 사장은 MBC 노조의 총파업이 170일간 이어졌던 2012년 시상식은 모두 불참했다. 이어 사장이 된 안광한 전 사장 역시 김재철 사장 못지않은 말실수로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MBC의 정상화'가 이뤄진 2017년 MBC <방송연예대상>은 대상 시상을 위해 현 최승호 사장이 무대에 오르는 대신 전년도 수상자인 유재석이 홀로 무대에 섰다. 유재석은 "원래 대상 수상자를 발표할 땐 사장님께서 발표하셨는데,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하게 됐다)"며 전임 사장들과 비교할 수 없는 깔끔한 발언으로 2017년의 MBC와 MBC 예능의 한 해살이를 정리했다. 

"올 한 해는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특히 MBC 예능은 총파업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습니다. 우리 MBC, MBC 예능이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로 많은 시청자 여러분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또, 예년보다 올해 예능 가족이 적은 것 같아 아쉬웠는데, 내년에는 더욱더 많은 예능인이 연말 시상식 이 축제를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MBC <방송연예대상> 찾은 MBC 최승호 사장의 이례적인 행보
  

▲2017 MBC <방송연예대상>을 찾은 최승호 사장과 MBC 임원진.ⓒ 페이스북 갈무리


  

▲2017 MBC <방송연예대상>을 찾은 MBC 최승호 사장이 방송인 전현무와 인사를 하고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아마도 향후 자사 연말 시상식 생방송 무대에 올라 "내가 사장이다"를 만천하에 알리기를 원하는 방송사 사장들이라면, 최소한 유재석의 소감 정도는 소화해내야 하지 않을까. 그간 권위주의에 찌든 대다수 방송사 사장들의 얼굴과 일장 연설에 가까운 멘트를 감내하느라 지친 대한민국의 시청자들을 배려한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시상식에 참석했음에도 무대에 오르지 않은 최승호 사장의 행보는 신선하다 못해 칭찬할 만했다. 

"MBC 방송연예대상에 왔습니다. 부족한 준비 기간이었지만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예능본부 PD들이 밤낮으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예능인들이 신나서 일할 수 있도록,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신나게 웃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8년 MBC 예능 더 기대해도 좋습니다!"

MBC <방송연예대상>이 방송 중이던 29일 오후, 최승호 사장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최 사장은 이 글과 함께 대상 후보였던 전현무, 유재석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날 시상식 장을 찾은 슬리피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최승호 사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최 사장은 이날 변창립 부사장 등과 함께 객석에서 시상식을 지켜봤다. 

이를 비롯해 MBC <방송연예대상> 속 몇몇 장면은 달라진 MBC의 풍경을 체감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고착화된 '나눠먹기식', '백화점식' 후보/후보자와 수상 패턴은 그대로였지만, 최소한 김재철 사장 하의 2012년 <방송연예대상>처럼 최장 기간 총파업과 일관성 없는 프로그램 폐지, 시청률 하락 등 악재가 이어졌던 MBC와 MBC 예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우울한 풍경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신 '꽃길'과 같이 정상화된 MBC의 밝은 분위기와 2018년을 기약하는 표현들이 더 많았다. 30일 열리는 <MBC 연기대상>의 진행을 맡은 오상진도 그랬다. '올해의 프로그램상'을 시상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MBC 출신 방송인 오상진은 MBC 상암 공개홀을 처음 찾는다고 밝혔고, 함께 시상자로 나선 김성령의 다소 곤란한 질문에도 기분 좋게 답했다.  

"저는 여의도 공개홀만 있어 봐서, 상암 이 곳(공개홀)은 처음이고. 굉장히 낯설긴 한데, 기분은 좋습니다." (오상진) 

"울지 마세요. 전에 <라디오스타>에서 우셨는데, 오늘은 우시는 거 아니죠?" (김성령)

"요즘 MBC 구성원 모든 분들이 웃고 지내니까 저도 기분 좋게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상진)

  

▲2017 MBC <방송연예대상>에 출연한 오상진과 김성령.ⓒ MBC


대상 전현무와 오상진의 다른 듯 같은 소감

김성령의 질문은 과거 2012년 파업 이후 퇴사했던 오상진이 처음으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 눈물을 흘렸던 장면을 일컫는다. 그 오상진이 2017 MBC <연기대상>의 사회를 맡고, <방송연예대상>의 시상자로 출연한 것이다. MBC 내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MBC를 퇴사했던 박혜진 역시 최근 <MBC 스페셜>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대상에 홀로 오른 유재석이나 객석에서 시상식을 지켜 본 최승호 사장과 함께 오상진의 등장은 달라진 MBC의 풍경을 상징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달라진 풍경은 시상식 끝까지 이어졌다. KBS 아나운서 출신이면서 프리랜서 선언 이후 노홍철에 이어 <나혼자 산다>를 이끈 전현무가 그 주인공이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전현무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끝맺었다. 
  

▲2017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전현문.ⓒ MBC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2018년, MBC 다시 한 번 '꽃길' 걷는 원년이 되기를 MBC 출연자가 아닌 MBC 애청자로서 기원하겠습니다. 아울러 제가 있었던 고향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개최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뤄졌던 올해 MBC <방송연예대상>은 대상의 전현무를 비롯해 전 영역에 걸쳐 수상한 <나 혼자 산다>의 잔치였다. <무한도전>이나 <복명가왕>을 제외하고 인기가 시청률 면에서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던 측면이 크다. 총파업의 여파라기 보다 그간 누적된 MBC 예능의 침체와 하락한 채널 이미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대상을 수상한 전현무의 바람처럼, MBC 예능이 '꽃길'을 걸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다. KBS는 아직 아직 봄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것, 연말 시상식 자리에서 논란과 비난을 자초하는 경거망동으로 채널 이미지를 깎아 먹는 사장과 경영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날 KBS 출신 전현무에게 대상을 안긴 MBC <방송연예대상>이 보여준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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