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프리랜서 기자의 '채널A' 인터뷰, 그리고 손석희의 '반박'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JTBC
"안나경 앵커와 저는 설 연휴 기간 동안에 휴가를 다녀오겠습니다. 물론 옆에 있는 박성태 기자도 휴가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여러분 설 연휴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1월 31일 손석희 사장은 JTBC <뉴스룸>의 끝인사를 이렇게 전했다. 어찌 보면 설 연휴를 앞두고 전할 수 있는 흔한 문안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박성태 기자도 휴가를 다녀올 예정"이라는 대목은 자신을 향한 루머에 대한 손 사장의 정면 반박이라 봐도 무방해 보인다. 일각에서 손 사장과 안 앵커의 과거 휴가일이 겹친 것을 두고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방송이나 '지라시'성 보도에 대한 반박이랄까.
"여러 가지 어원이 있으나 설날은 처음 맞이하는 '낯선 날'이라는 의미….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서러운 날'이라는 의미… 풀이대로라면, 설날이란 모두가 조금은 낯설고도 사뭇 서럽게 맞이하는 첫 번째 새날일 터인데 그 조심스러운 정초부터 부디 말로 서로 상처 주지 마시길..."
▲JTBC <뉴스룸>의 한 장면.ⓒ JTBC
이날 앵커 브리핑에서 손 사장은 "낯선 날", "서러운 날"이란 설날의 어원을 전하며 "정초부터 부디 말로 서로 상처 주지 마시길"이란 말을 남겼다. 몇몇 매체는 이 멘트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 제기가 남긴 '말'들의 향연을 염두에 둔 것이란 뉘앙스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손 사장이 이 멘트를 전하기 불과 1~2시간 전,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인 김웅 기자가 '채널A'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했다. 스튜디오에 출연한 그는 '채널A' 앵커로부터 "진정하시고요. 물 한 잔 드시고요"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김웅 기자가 벌인 '말의 향연'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채널A' 앵커의 송곳 질문, 김웅 기자의 횡설수설
▲채널A와 단독 인터뷰한 프리랜서 기사 김웅씨의 모습.ⓒ 채널A
채널A 황순욱 앵커는 "저도 기자고, 김웅씨도 기자이고. 기자가 기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사 써야 마땅합니다"라며 "기사를 쓰지 않은 이유가 뭐죠?"라고 정면으로 물었다. 김웅 기자는 지난해 2017년 4월 손 사장이 낸 접촉사고에 대한 제보를 받았지만, 바로 기사를 쓰지 않았다. 황 앵커의 질문은 이에 대한 물음이었다.
"당시 제가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기사를 쓰는 것도 공익, 손 사장을 보호하는 것도 공익에 부합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고. 저도 그 전부터 손 사장과 SNS상으로 교류했고 이분 성취한 부분을 이해해요. 그 기사 가져올 여파도 감안했어요.
손 사장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명예 떨어지고, 진보 진영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금도 손 사장이 범행 자백하는 녹취를 제공하고, 진단서 제공해도, '설마 손석희가 그랬겠어' 하는데 그때 기사를 작성해서 언론사에 접촉하고 그 기사를 보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결국 좌절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답은 이랬다. 김 기자는 공익을 들먹이지만 그 공익에 대한 판단이 불분명해 보인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더욱이 진보 진영에 피해 운운하는 동시에 "기사 보도가 좌절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보를 접한) 당시 김웅 기자가 공익은 물론 기사 가치에 대해서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든다.
황 앵커는 또 이렇게 물었다. "팩트체크 안 되어서 기사를 못 쓴 거 아닌가?"라고. 연이은 송곳 질문이라 할 만했다. 또 황 앵커는 "동승자 논란이 중요하다"며 거듭 접촉사고 당시 당사자인 레커차(견인차) 기사를 만났느냐고 물었다. 김 기자의 답은 "아니오"였다.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실들이 10가지라고 한다면 명징하게 확인된 사실들만 있으면 기사를 쓸 수 있죠. 하지만 거한 밥상을 차려서 밥을 먹을 필요 없다, 있는 것만 가지고 밥 먹을 수 있고 기사도 마찬가지예요.
(레커차 기사를 직접 만나거나 취재를 하신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게 불가능했죠. 저도 견인차량 기사들, 1차 뺑소니 사고 피해자들을 직접 접촉할 기회 없었어요. 제보를 직접 받은 게 아니고 2명 거쳐서 받은 거기 때문에 피해자 직접 만날 수 없었고. 가해자에게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손 사장이 전화 통화에 응해줬고 그 다음날 직접 인터뷰 응해줘서 가해자(손 사장을) 통해서 정보 수집했습니다."
▲채널A와 단독 인터뷰한 프리랜서 기사 김웅씨의 모습.ⓒ 채널A
황 앵커는 다시 "어쨌든 가장 중요한 부분을 팩트체크 못한 거네요?"라고 되짚었고, 김 기자는 "네"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서 기사를 못 쓴 거 아닌가요?"에 이어 " 누가 먼저 채용을 제안했습니까?"라는 핵심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이에 김 기자로부터 "채용을 빌미로 협박하면 폭행해도 됩니까?"라는 황당한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대개가 이런 식이었다. 김 기자에 따르면, 김 기자는 손 사장에게 2015년 9월 무렵부터 보도자료, 기사, 뉴스에 대한 의도 같은 걸 SNS로 전달했다고 한다. 접촉사고가 있기 훨씬 전이다. 채용 제안을 김 기자가 먼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엔 이런 답이 나왔다.
"손석희 사장이 제게 14년 선배거든요. 제가 선배랑 같은 배를 타고 싶습니다 얘기는 할 수 있어요. (무슨 얘기?) 제가 금전적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하는 거라던가. 이후에 얘기했던 용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당연히 같이 얘기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였어요.
손석희가 '너랑 해보겠다'고 하는데 누가 '싫습니다. 저는 뭐 오해 받을 일 안 하겠습니다'고 말하는 이런 기자가 대한민국에 있어요? 당연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손석희인데? 저도 당연히 영광이었죠. 이런 인물인지 몰랐으니까. 같이 일하고 보좌하겠다는 건 충분히…."
"채용 해준다고 했는데 안 해줘서 언짢았나요?"
▲채널A와 단독 인터뷰한 프리랜서 기사 김웅씨의 모습.ⓒ 채널A
"(보도자료가) 내가 이런 능력이 있고 이런 기사를 생산하는 사람이니 관심 있으면 나랑 같이 일할 사람 연락주시오. 이런 식으로 이력서를 대용하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채용 해준다고 했는데 안 해줘서 언짢았나요? 손석희 사장이 계약서 작성을 안 하겠다고 했던 게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던 원인인가요?
"왜 핸드폰 녹화를 하셨나요?"
"김 기자 스스로 과거 비난의 대상이 된 실수는 사과하고 죄과를 치렀다고 생각합니까?"
인터뷰 후반에도 황 앵커의 송곳 질문은 계속됐다. 앞서 황 앵커는 "저도 진행자로서 누구의 편을 들거나 누구를 옹호하고 싶은 뜻은 없습니다"며 "단 방송의 특성상 김웅 기자가 불쾌해 할 수 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 번 더 양해를 구하겠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검증이 힘겨웠을까. 김 기자는 인터뷰 후반부 몹시 흥분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김 기자는 채용 이야기가 오가는 과정 자체가 "(손 사장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계기"였다며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황 앵커가 녹취와 폭행 신고의 의도를 묻자 "여러분 빵 훔친 사람은 도둑을 신고하면 안 됩니까? 빵 훔친 사람은 뺑소니 신고하면 안 됩니까? 강도를 보고 눈 감아야 합니까?"라는 비유를 들며 흥분을 이어갔다. 황 앵커의 "물 한 잔 드시고요"라는 멘트는 이때 나왔다.
이어 녹취 속 손 사장이 "사과했다"는 대목을 강조한 김 기자에게 황 앵커는 "그 '미안하다'는 핵심은 폭행 한정이죠?"라고 되물었다. 거듭해서 사과 운운하는 김 기자에게 황 앵커는 녹취 속 손 사장의 의중을 물었고, 김 기자는 "미안하다"는 손 사장의 말을 꽤나 넓게 해석했다. 그러자 송곳 질문이 또 나왔다.
"폭행뿐만 아니고 1차 뺑소니 사건, 2차 뺑소니 사건에서 드러난 과거 행적에 대한 거짓말,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됩니다." (김웅 기자)
"그런데 뺑소니 사고는 본인이 당사자가 아니니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은 없잖아요?"(황순욱 앵커)
그리고 손석희의 반박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
김 기자는 이어 "자 그 부분 버리겠습니다. 1월 10일 밤에 (폭행 논란 관련) 실수한 부분 인정하십시오"라고 또 한 번 동문서답을 했다. 그러자 황 앵커는 "시간 관계상"이란 이유를 들어 인터뷰를 중단했다. 꽤나 허망한 종결이었다고 할까.
인터뷰 전체를 보면, 폭행과 채용 논란은 물론 접촉 사고 관련해서도 일방적인 주장과 동문서답, 흥분과 억측이 난무한 인터뷰가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날카로운 질문이 나오면 나올수록 폭행은 물론이요, 채용 논란 역시 김 기자에게 불리한 정황만 나오는 꼴이었다.
"채용 해준다고 했는데 안 해줘서 언짢았나요?"라거나 "(뺑소니 당사자가 아니니) 사과를 요구할 자격은 없잖아요?"라는 앵커의 질문에 나온 답이 대표적이었다. 심지어 그간 과거 접촉사고를 비롯해 김 기자의 주장을 인용해 손 사장 관련 기사를 쏟아낸 '채널A'가 머쓱할 만한 수준의 인터뷰이기도 했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
1일 손 사장이 JTBC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쓴 미셸 오바마의 말이다. 이날 손 사장은 이 이메일에서 그간 법적 대응을 시사하며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손 사장은 "먼저 사장이 사원들을 걱정시켜 미안하다는 말씀부터 드린다. 저도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것이 맞고, 주변에서도 그게 좋겠다 하여 극구 자제해왔다"고 밝혔다. 또 손 사장은 "지금 나오고 있는 대부분의 얘기는 기사라기보다는 흠집내기용 억측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전체적으로 전날 <뉴스룸>에서 밝힌 반박의 확장이자 '채널A'와 인터뷰한 김웅 기자의 논리를 반박하는 내용이라 할 만하다. 미셸 오바마의 말을 인용한 손 사장은 이어 "어려운 시기이지만 저는 흔들림 없이 헤쳐 나가겠다"고 전했다.
손석희 사장은 김웅 기자 폭행 혐의로 설 연휴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김웅 기자는 인터뷰에 앞서 낸 입장문에서 "<뉴스룸>에서 사과하면 용서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손 사장은 휴가임을 밝히는 동시에 사내 이메일을 통해 정면돌파를 예고했다. 손 사장이 계속해서 '품위'를 지킬 수 있을지, 또 접촉사고와 폭행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 진위는 설 연휴 이후에나 밝혀질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