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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Feb 14. 2019

자숙은 끝났다? 돌아온 이름 '김기덕'이 위태롭다

김기덕 작품 '개막작'으로 선택한 '유바리영화제'에 쏟아진 질타

▲ 베를린 영화제서 '여배우 폭행' 질문받는 김기덕 감독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이 지난해 2월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배우 폭행' 사건과 관련해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덕 감독을 향한 세계인의 주목은 끝나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말이다. 그 주목이 과거엔 작품의 조명과 찬사 혹은 평가로 이어졌다면, '미투 운동' 이후엔 전적으로 '성폭력 의혹'과 관련된 개인적 행보에 관심과 초점이 맞춰진다는 사실이 달라졌을 뿐. 그는 확실히 국내보다 세계에서 이목을 끌어야만 연명할 운명인 걸까.
 
오는 3월 7일 개막하는 제29회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유바리영화제)가 김기덕 감독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을 개막작으로 선정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빚고 있다. 이미 이 작품은 작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한차례 논란을 빚었다.
 
작년 2월 김 감독이 참석한 상영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의혹 관련 질문이 쏟아졌고, 김 감독은 성폭력 의혹을 포함한 각종 송사에 대해 "억울함"과 더불어 "책임"을 운운하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 PD수첩 >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의 후폭풍은 거셌고, 김 감독의 신작은 이후 국내 개봉 취소는 물론 여타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한데 최근 유바리영화제가 이 작품을 무려 개막작으로 선정하면서 여성계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유바리영화제와 김기덕 감독의 의지

   

▲6일 오후 방송된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 : 거장의 민낯>편은 여배우들의 증언을 통해 김기덕 감독의 일그러진 행각을 고발했다.ⓒ MBC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사건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봉이 취소된 것이겠지요. 귀 영화제는 2017년 한국에서는 '남배우A 성폭력사건'으로 알려진 가해자가 주연인 영화를 초청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가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중략).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를 보니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영화제(世界で一番、楽しい映画祭)'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네요.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재미있지 않습니다. 김기덕 감독 영화 개막작 초청을 취소해주십시오. 영화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부당한 현실을 묵과하지 말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해주십시오."
 
지난 8일 한국여성민우회(이하 여성민우회)가 "김기덕 감독 영화 개막작 초청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논평 중 일부다. 여성민우회는 "본 내용은 번역 후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측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국제영화제가 개막작 선정 취소로 '응답'할 여지는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여성민우회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여성단체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액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한 영화감독은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국제적 감독 중 한 사람이고 그 영화적 재능 등이 안타깝다는 것은 인정을 하는 부분"이라면서도 "그러나 '미투' 건으로 드러나 있는 사실만을 봤을 때는 자숙을 하는 게 맞다. 만약 대중에게도 충분히 소명이 돼서 활동한다면 모를까 그냥 넘기기에는 사회적으로 힘든 부분"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납득할 만한 지적이다. 자숙과 관련된 부분이 특히나 그렇다. 이건 김 감독의 의지와 관련된 문제다. 국제영화제가 '개막작 초청'으로 손을 내밀었다고 해도, 연출자 본인이 거절하면 그만이다. 유바리영화제가 영화제의 중추인 개막작 선정 과정에서 김 감독의 의사를 타진하지 않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국제영화제의 일반적인 프로그래밍 과정에 비춰봤을 때, 연출자의 '오케이'가 있었기에 개막작 선정과 발표가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성민우회의 지적처럼, 유바리영화제가 "가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인지는 영화제 측의 해명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개막작 선정에 있어 영화감독 김기덕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김기덕 감독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 김기덕필름


더군다나 유바리영화제는 지난 2017년 당시엔 '남배우 A 성폭력사건'의 주인공인 배우 조덕제의 출연작인 <아웃도어비긴즈>를 공식 초청한 바 있다. 영화제 측이 이 사건을 인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분명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여성민우회가 영화제 측의 의지를 의심할 만한 '우연의 일치'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구설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김 감독의 작품을 구태여 개막작으로 선정한 그 의지 말이다.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영화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성폭력, 인권침해의 문제에 침묵하고 가해자들을 계속 지원하거나 초청하고, 캐스팅하기 때문입니다."
 
여성민우회는 유바리영화제의 의지를 위와 같이 빗댔다. 납득할 만한 문제 제기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이 확산되자 제작사로부터 연출직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미투 운동'이후 이렇게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보인 사례도 적지 않다.
 
넷플릭스가 세계적인 화제작인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인 케빈 스페이스를 시즌6에서 전격 하차시킨 예가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유바리영화제의 '의지'는 물론 개막작 초청을 수락한 김 감독의 의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나 김 감독은 자숙보다는 그간 국내보다 더 인정받았던 해외에서의 활동을 도모하는 모양새라 더 주목된다.
 
당당했던 김기덕
 

"한국에서는 행방이 묘연했던 김 감독, 그런 그가 지난 11월 중순까지 이곳 카자흐스탄 유명 휴양지에서 영화 촬영을 진행 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신문에는 김 감독의 촬영 소식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작년 12월 11일 방송된 < PD 수첩 > '2018 대한민국과 < PD 수첩 >'편은 김 감독의 근황을 전한 바 있다. < PD 수첩 > 제작진의 취재결과, 김 감독은 지난해 11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주최한 영화제에서 게스트로 초청됐고, 이후 카자흐스탄 제작사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고 영화 촬영을 진행했다.
 
< PD 수첩 >은 카자흐스탄 영화제작 관계자의 입을 빌려 김 감독의 컨디션이나 상태도 양호했다고 전했다. 작년 6월 고소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두 한 이후 국내에서 활동을 중단하고 언론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김 감독은 자신이 여배우 A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사건의 수사결과가 나오기 전 이미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가 영화를 찍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 최근 검찰은 이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김 감독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 PD 수첩 > 제작진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같은 결과는 김 감독의 일종의 '백래시'가 결국 법원에까지도 닿지 못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제 입장에서는 그 22년 동안 23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어떤 나름 작은 성과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감독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가 없는 아주 무자비한 방송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작년 6월 12일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고소인 자격으로 출두한 김기덕 감독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당당했다. 유바리영화제의 개막작 초청은 결국 그렇게 당당했던 '거장의 자숙'이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증명하는 셈이 됐다. 개막작 초청을 수락한 것만 놓고 보면, 어쩌면 김 감독 역시 카자흐스탄에서 현지 스태프와 찍었다는 신작과 더불어 유바리영화제를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출 수 있는 발판으로 여길지 모를 일이다.
 
앞서 여성민우회는 "영화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성폭력, 인권침해의 문제에 침묵하고 가해자들을 계속 지원하거나 초청하고, 캐스팅"하는 일련의 분위기가 김 감독과 같은 인사의 활동을 보장한다고 지적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행보를 먼저 시작한 김기덕 감독. 그가 바라는 것 역시 이러한 침묵과 동조는 아닐지 우려된다. 

한국영화성평등 센터 '든든'도 "유감" 
   

▲ "인권침해로 만든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2017년 8월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대위 주최로 ‘#STOP 영화계 내 성폭력 - 그것은 연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권우성


그리고 14일 오전, 한국영화성평등 센터 '든든'은 유바리영화제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막작 선정에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냈다. (사)여성영화인모임이 운영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은 영화산업 내 성평등 환경조성을 목적으로 지난해 3월 설립됐다. <리틀 포레스트>의 임순례 감독과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공동 센터장을 맡고 있다.
 
성명서에서 과거 김기덕 관련 사건을 열거한 '든든'은 "김기덕 사건은 이처럼 아직 진행 중에 있으며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 초청하는 것은 가해 행위자에게 창작 및 공적 활동에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동이라고 판단됩니다"라고 밝혔다.
 
또 든든은 "이에 한국 영화계 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도외시하고 성평등한 영화환경 마련에 무관심한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선전 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든든의 성명은 여성계에 이어 영화계에서도 유바리영화제의 개막작 선정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과연 유바리영화제와 김 감독이 '의지'를 굳히지 않고 개막작 상영을 강행하고, 영화제 참석이란 해외 행보를 이어갈지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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