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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아저씨> 감독의 '나쁜 어른' 때려잡기

영화 <악질경찰> 프리뷰

by 하성태의 시네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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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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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범 감독의 영화는, 그러니까 세상의 나쁜 남자들이 더 나쁜 남자들(의 세상)과 쟁투를 벌여 나가는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그 나쁜 놈이 때로는 자기연민에 빠지고, 회개를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싸우며, 또 때로는 사랑이란 감정 때문에 고뇌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남자들을 '열혈남아'로, '아저씨'로, '우는 남자'로 호명해 왔다.


"데뷔작인 <열혈남아>부터 <아저씨>, <우는 남자>까지 모두 엔딩이 같다. 주인공이 무언가를 깨닫고 우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가 시작할 때와 끝났을 때 인물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조금이라도 내적 성장을 이루고 끝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20일 개봉하는 <악질경찰>로 귀환하는 이정범 감독의 설명이다. 복기해 보니, 정말 그러하다. 그 남자들은 단순히 '성장'이란 쉬운 말로 설명하기 복잡다단한 감정을 끌어 안은 채, 영화의 (비극적) 결말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고는 관객들에게 기어코 어떤 연민어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 감정의 승화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언제나 여성들이었다. <열혈남아>는 '모정'을, <아저씨>는 '아동 인권'을, <우는 남자>는 '이성애'를 경유해 그 연민 혹은 측은지심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이정범 감독의 남자들이 '내적 성장'을 이뤄내는 궤적은 나쁜 세상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현실의 좌절을 수반하는 사투와도 같다.


독특한 것은 장르 드라마나 액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정범'식' 비감이 장르성과 리얼함의 '황금율'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예컨대, <열혈남아>의 '지방' 조폭 서사와 모정의 결합이, <아저씨>의 거친 액션과 아동 학대의 생생한 현실이 그러했다.


<악질경찰>은 같으면서도 좀 다르다. <악질경찰>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나쁜 놈이 그 위 더 나쁜 놈을 때려잡는 이야기를 훨씬 더 부각시킨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관건은 그 나쁜 놈이 발 디딘 세상이 어디인가, 와 그 나쁜 놈이 누구를 만나서 연민을 폭발시킬 것이냐, 로 귀결된다. 영화를 보고나면, 이정범 감독의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이번 선택에 확실히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악질경찰' 조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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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조필호(이선균)은 문자 그대로 비리경찰이다. 전작들이 '조폭', '(전직 국정원 요원인) 전당포 주인', '킬러'라는 부유하는 인물들이었다면, 이번엔 녹봉에다 불법적인 보너스까지 왕창 챙기는, 건물주가 되려는 꿈을 키우는 사회인이자 직업인이다. 후술하겠지만, 이것은 엄청난 변화이자 <악질경찰>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자기가 잘 먹고 잘 사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는 이 남자의 '비정'이 어느 정도냐고? 자신이 부리던, 그러니까 자신과 범죄를 같이 저지르던 하수인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슬퍼하기는커녕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에만 관심을 둘 정도다.


애초부터 그랬다. 앞에서 뒷돈 챙기기가 일쑤라 내사과의 공공연한 표적인데다, 그가 벌이는 여러 범죄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면 중형을 살 그런 '비리경찰'이란 얘기 되겠다. 하지만 이런 악질경찰이 미나(전소니)를 만나면서, 그 미나의 세계에 진입하면서 바뀌어간다.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미나와 함께 엮이게 만든 조필호의 악행들은 검찰로부터, 재벌총수로부터, 내사과로부터 쫓기는 조필호를 쫓기는 신세로 전락시킨다. 그렇다. <악질경찰>은 잘 짜인 한 편의 범죄드라마다. 이 조필호가 얽힌 사건만 쫓아가도, <악질경찰>은 평균 이상의 '품질'을 뽐낸다. 조필호라는 캐릭터가 가히 새롭진 않지만, 그의 행동과 변화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부할 정도의 동력과 개연성은 충분하다.


나쁜 어른이 전하는 나쁜 세상을 향한 통렬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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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경찰'이 중요 포인트라고 한 이유는, 조필호는 부유하는 인물이 아닌 건물주의 꿈을 키우는 동시에 내사과의 수사를 피해야 하는, 그러니까 철저한 생활인이라는데 있다. 그러니까 뉴스도 보고, 은행도 가고, 가끔 경찰 업무를 보기도 하는. 돌려 말해, 현실에 발을 디딘 조필호는 한국사회 '공권력'의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공권력은 부패했고, 또 부패해서 현실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인간으로 상정됐다.


그리고 그가 발 디딘 현실은 '안산'이고, 더 나아가 안산 단원경찰서요, 시간적 배경은 2015년이다. <악질경찰>과 이정범 감독은 이러한 명시적 지시를 애초부터 피할 생각이 없다. 아니, 이정범 감독이 언론시사회 직후 "이 영화의 진정성을 해치는 것이 아닌지 회차를 거듭할수록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세월호'는 <악질경찰>의 주요 모티브가 틀림없다.


안산에 사는 미나의 세계는 지금 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망가져 있고, 그 세계로 걸어들어간 조필호는 그 미나와 미나의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된다. 물론 자신이 저지른 악행과도 결부돼 있는 사건과 그 결과가 다시 미나와 미나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조필호를 추동하게 만드는 동인은 결국 '분노'요, 그 비감을 가지고 조필호는 거대한 '액션'으로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악질경찰>이 가장 닮아 있는 이정범 감독의 영화는 바로 <아저씨>일 것이다.


"그런데 <악질경찰> 속 조필호는 변화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조필호는 울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게 아니라 본인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긴다. 머물러 있지 않고 한 발 더 나간 것 같다."


이정범 감독은 <악질경찰>과 전작과의 차별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악질경찰>은 전작들 중에서도 가장 현실과 밀착해 있다. 이정범 감독의 영화 중에서 정확한 시공간을 명시한 최초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악질경찰>은 '경찰' 조필호를 통해 끊임없이 '어른이란 무엇인가'를 상기시키려고 필사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이정범 감독. 이것이야말로 <악질경찰>이 가리키는 '어른 되기', 그리고 어른은커녕 아이들을 죽어나가게 만드는 나쁜 어른, 나쁜 세상에 대한 응징과 분노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악질경찰>은 이정범 감독의 남자들이 그 현실 세상으로 걸어 들어간 영화인 셈이다.


이 모든 것을 접어두더라도, <악질경찰>은 이정범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쉽다'. 캐릭터도, 악당도, 사건 전개 역시 선이 굵고 복잡하지 않다. 범죄드라마로서도 나무랄 데 없는 장르물이다. 이선균의 연기 역시 같은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는 <끝까지 간다>보다 월등한 여운을 전한다. 이정범 감독의 '비감'이, 그 분노가 과연 관객들과 '통'할 것인지는 오는 20일 판가름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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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 위 포스팅은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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