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의 절망적인, 가장 비극적인 <미안해요, 리키>

by 하성태의 시네마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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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영화사 진진

최근 디지털 플랫폼, 이른바 배달 앱을 통해 음식배달서비스, 대리운전, 퀵서비스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을 플랫폼 노동자라 부른다. 이들의 월 평균 수입은 313만 원. 하지만 수수료 등 제반 비용을 제외하면 순 수입은 165만 원에 불과했다. 지난 5월과 6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이 플랫폼 노동자 6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들은 대기시간을 포함해 하루 평균 13.7시간, 한 달 평균 24.5일을 일했다(대기, 준비, 이동시간 등을 뺀 순수 일일 근무시간은 평균 9.7시간). 이들은 주 6일을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10명 중 4명(35.3%) 정도는 주말 이틀을 꼬박 일했다. 배달서비스, 퀵서비스, 대리운전 등 육체노동 종사자들인 이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평균 15.2%였다.


이들 플랫폼 노동자들은 그간 사실상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해왔다. 지난 11월 서울행정법원이 택배기사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노동자라고 처음 인정하기까지. 그 전까지 택배업체와 대리점들의 경우, 택배 기사들을 프리랜서와 같은 개별 사업자, 즉 사용자라고 주장해왔다.


얼마나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자성'을 무시당한 채, '보호 법령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지는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게 어디 한국만의 상황일까.

여기 지금 막 '택배 노동자'로 진입한 남자가 있다. 네 가족의 가장인 이 남자는 자영업자(개인 사업자)에 가까운 택배 노동이 얼마나 열악하고, 불안정하며, 삶의 조건을 압박하고 위태롭게 하는지 그땐 미처 몰랐다.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 속 택배 노동자 리키(와 요양보호사인 돌봄 노동자인 아내 에비)의 이야기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들여다 본 건 그래서다. <미안해요, 리키>는 지구 반대편 영국의 택배 노동자와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노동 조건이 다를 바 없다는 현실을 일깨우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생생한 기록이다.


택배 노동자 리키,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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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영화사 진진

(복지 센터를 찾았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택배 일을 막 시작하려는 리키, 그는 누구인가. 업계 경기 악화로 건설 노동자를 그만 둔 그는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평범한 가장이다. 본인만 열심히 일하면 몇 년 안에 집을 살 대출금을 모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지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삶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한다. 택배 일은 나름 건실해 보였다. 적어도 리키의 눈엔 그랬다. 건축 일을 못하게 된 뒤 이 일 저 일 전전하던, 모든 일에 열심인 리키에 눈엔. 매니저의 말도 달콤했다. 아니, 구조 자체가 그랬다. 계약과 수익 구조는 자영업자와 다름없었지만, 노동 환경은 시간과 PDA 기계의 노예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사용자와 관계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얻는 것도 아니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일단 차량 구입비도 자가 부담이다.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야 했다. 부부싸움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동료가 빈 페트병을 건넬 때만 해도 몰랐다. 그것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야 하는 택배 노동자의 필수품인 줄을.


손님과의 말다툼은 기본.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해 손해를 봐도 자가 부담이었고, 회사로부터 치료비 한 푼 받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리키는 개인 사업자다. 교대나 휴가는 꿈도 못 꿨다. 매니저의 채근과 반협박이 일상이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일하다 보니, 학교를 쉰 어린 딸 제인과 밥 한 끼 먹을 시간도 없었다. 딸과 함께 배달 일에 나서며 트럭 안에서 웃는 것이, 잠시나마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자그마한 안식이었다.


그럴수록, 삶은 점점 피폐해져갔다. 돈을 벌기는커녕 경제적 부담만 늘었다. 반항기인 16살 아들 세브와 다투는 일이 늘었다. 정학을 맞은 아들을 위해 학교를 갈 시간도 없었다. 그 바람에 제인이 눈물을 훔치는 일도 늘었다. 그럴수록 택배 일에 매달려야 했다. 그 수밖엔 없었다.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선.


그의 곁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아내 애비가 자리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들을 아끼는 애비는 자신들이 돌보는 노인과 장애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매달려야 했다. 다시 말해, 두 부부에게 탈출구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개인이 노력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피폐한 삶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리키의 삶은 급기야 방향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일관적인, 너무나 일관적인


잠시 켄 로치의 세계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36년생 이 노장 감독의 영화들이 그랬다. 단 한 편도 허술한 구석이 없었다. 역사와 체제, 당대의 현실과 인간(조건)을 영화적으로 부지런히 쫓아온 켄 로치 감독은 그만의 '휴머니티'를 탑재한 채로 다양한 인간군상(인 동시에 주로 하층민들)이 겪는 노동과 계급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해 왔다.


그의 동반자인 레베카 오브라이언 프로듀서는 1967년 <불쌍한 암소>로 데뷔한 이래 50년 넘게 영화 작업에 매진해온 켄 로치 감독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평했다. 확실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통찰이다.


"200년 후에 누군가 우리 시대의 사회상을 보고 싶어 한다면 켄 로치 감독과 각본가들이 50년간 만든 영화들을 보고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결국 우리 삶을 다룬, 하나의 긴 이야기이기 때문이죠."(레베카 오브라이언)


노동 계급의 일자리(실직) 문제와 노동조건, 그에 반하는 자본주의 체계의 냉정함과 공공 복지제도의 허점은 켄 로치의 주요 작품 소재였다. 딸의 첫 번째 성찬식을 앞두고 실직한 <레이닝 스톤>(1993)의 밥이 그랬고, <내 이름은 조>(1998)의 알콜 중독자 조도, <앤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2012)의 청년 백수 로비도 마찬가지였다.


또 <네비게이터>(2001)는 철도 민영화 이후 철도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들여다봤고, <빵과 장미>(2000)는 멕시코에서 LA로 이주한 청소노동자 여성들의 환경을 소재로 삼았다. 또 <자유로운 세계>(2008)은 '브렉시트'가 도래하기 전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정한 입맞춤>(2004) 켄 로치식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부를 만한 형식으로 인종차별과 문화충돌을 다뤘다.


물론 과거로, 역사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첫 번째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을,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을, 다큐멘터리 <1945년의 시대정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당의 약사와 영국 정치노동의 현대사를, <칼라 송>은 1980년대 니카라과 내전을 조명했다.


이밖에도 마약 중독자 엄마를 돌봐야 하는 스코틀랜드 빈민 소년의 생존 조건(<달콤한 열여섯>, 2002)이나 국가에 아이를 빼앗기는 '비혼모'의 비참한 처지를 통해 본 복지제도의 허점(<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1994), 사랑에 빠진 일용직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하층민들>, 1990) 등 레베카 오브라이언의 말 대로 그야말로 '종횡무진 현대사, 복잡다단한 인간투쟁사'였다 할 만 하다.


영화 속 이들 노동계급은 크나 큰 운명에 휘둘리기는커녕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시스템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마모되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켄 로치는 묻는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착취당하고 마모당하는 '사람들', 또 그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그의 영화가 '사람' 중심인 이유다.


우리네 삶이, 인생이 그러하듯, 켄 로치는 때로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희망도 준다. 분명 그랬다. 그만의 영국식 유머와 다소 간의 낭만은 그러나 어설픈 영화적인 봉합이나 거짓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시민 선언', '본명 선언'의 감동 이후 찾아오는 비감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렇다.


영화적인 치장이나 형식에 매달리지 않는 우직한 리얼리즘이야말로 켄 로치 영화의 실천적인 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헌데, 켄 로치 감독이 "Sorry We Missed You"라며 사과를 건네는 <미안해요, 리키>는 훨씬 더 절망적이다. 개인이 영유할 낭만은 없다. 가족 외에 그 어떤 '연대'도 기대할 여유가 없다.


노장이 던지는 같지만 또 다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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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영화사 진진

과거 노동계급과 그들의 삶을 바라보던 관점이나 영화적 온도와는 미묘하게, 아니 확실히 달라졌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도 또 다르다. 이는 미시적으론 '개인 사업자 또는 파견 근로자, 임시 고용된 노동자'들의 환경을 마주한 켄 로치와 동반자인 각본가 폴 래버티의 관점의 변화이자, 크게는 작금의 영국 사회와 더 나아가 전 세계 노동 계급이 처한 현실에 대한 노장의 진단이리라.


켄 로치 감독은 리키가 처한 상황을 두고 "현대적 기술을 이용하면서부터 나타난 문제라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며 "기술은 새로운 것이지만, 착취는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이 노장이 택배 노동자라는 새로운 노동 환경을 소재로 복귀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미안해요, 리키>는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택배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물론 노동자성을 인정하기는커녕 개인 사업자란 허울 아래 물리적, 경제적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하는 신종 착취의 공포를 생생히 묘파한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 불안정성과 개인의 무한 책임을 동반한. 돌봄 노동자 애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은퇴하고 홀로 삶을 영위하는 다니엘 블레이크의 삶을 들여다봤던 전작과 달리 <미안해요, 리키>는 그렇게 리키와 그의 가족이 어떻게 이전의 삶에서 멀어지면서 피폐해져 가는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노동'이다. 전작에서 실직자와 비혼모 가정을 다룬 전작과 또 다르게 '직업이 있고 가족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한가, 미래를 그릴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셈이다.


켄 로치는 일찌감치 작금의 브렉시트나 난민의 시대를 경고해 왔다. 그건 민족주의가 알게 모르게 흥하는 유럽의 이면을 파악한 노장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에서 인간의 얼굴을 지우고 이윤만으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에 오래도록 반기를 들어왔던 그의 좌파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 안에, 과거 켄 로치가 견지했던 일말의 여유나 낭만은 확 줄었다. 영국의 택배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의 특수한 현실에서 지금, 여기와 거기의 플랫폼 노동자는 물론 인간의 본질은, 삶의 질을 배제해 버리는 신자유주의의 착취 구조 속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환경을 총체적으로 직시하는 <미안해요, 리키>의 전망은 그래서 훨씬 절망적이다.


병원 신세를 진 리키가 기어코 트럭 운전대를 잡을 때, 이대론 안 된다며 울며 말리는 애비와 자녀들을 뒤로 하고 트럭을 출발시킬 때, 관객들의 느끼는 불안감은 리키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된다. 여느 전작들과 다르게 급격히 흔들리는 카메라는 리키의 불안정한 지금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과연 리키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자문하는 동시에 꼭 살아남아 달라고 간절히 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켄 로치 감독은 택배 일을 시작하는 리키의 모습에서 영화를 시작해 흔들리는 리키의 불안함의 한 복판에 관객을 밀어 넣으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외쳐야 한다"고 말하는 켄 로치 감독. 그는 <미안해요, 리키>에서 예전과 같지만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느냐고, 우리와 세상의 '다니엘 블레이크들'은, '리키들'은 다 같이 살아 갈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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