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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05. 2017

배우 박명훈의, 관객의 인생작이 될 <재꽃>

[인터뷰] 영화 <재꽃>의 '명호' 박명훈


어느 날 갑자기, 한 소녀가 남자의 품으로 찾아 들었다. 그러자 이 남자의 무미건조한 일상에 균열이 나기 시작한다. 그 균열을 통해 남자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된다. 명호는 그렇게 <재꽃>의 여섯 인물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인물이다. <재꽃>은 질문한다. 자신의 딸이라며 집 앞에 서 있는 소녀를 마주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복잡할 수도, 단순할 수도 있는 명호를 진중하게, 때로는 귀엽게 연기한 배우 박명훈은 이미 박정범 감독의 <산다>로 독립영화계에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일찌감치 박석영 감독에게 명호 역으로 낙점된 박명훈 배우는 <재꽃>의 현장이, 독립영화의 분위기가 즐겁기 그지 없는 배움의 현장이라고 말한다. "명호야!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라고 명호에게 말해주고 싶다는 배우 박명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 본인을 스스로 소개한다면요.

"배우 박명훈 입니다. 나이는 43세. <스틸 플라워>로 박석영 감독님을 만나 뵙게 되고,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면서 작년에 <재꽃>을 같이 찍게 됐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에 이 영화가 선정돼서 훌륭하게 봤고, 개봉하게 돼서 기쁘다. 또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연극 <놈,놈,놈> 공연을 하기도 했다."

      

- 그간 연기생활은 어떻게 해 왔나.   

"20년 전 군 제대한 이후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연극, 뮤지컬을 주로 하다 영화, 드라마란  매체를 시작한 건 3, 4년이 조금 넘었다. 첫 영화는 박정범 감독의 <산다>. 거기도 시골이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3달간 합숙하면서 찍었다. 강원도의 겨울은, 추웠다. <산다>가 2시간 47분 영화인데 굳게 먹고 봐야한다(웃음). 여하튼 <산다>라는 영화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고, 장편으로 따지면 <재꽃>은 3번째 작품이다. <산다>는 스위스 로카르노 비평가상을 받았다. 스위스에서 박석영 감독님이 영화를 보시고, 자신의 작품에 출연을 제안해주셨다."      


- <재꽃>의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작품 전체를 보기보다 처음엔 자기 역할을 보게 된다. 제 역할이 굉장히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면서 우울한 역할이었다. 처음엔 이 역할을 준비할 때도 고독하고 우울하게 준비했는데 너무 다운이 되고, 연극 <햄릿>마냥 비극의 주인공 같은 마음가짐이 들어서, 좀 더 밝은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미지는, 슬펐다.     

 

슬펐던 이유는 각자 서로의 관계들을 다 이해는 하는데, 자기들의 현실에 마주쳤을 때 그 각자들의 삶을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당연한)그런 것들 때문에 그 사람이 순수하면서도 못되게 굴고, 또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표현되는 것들이 느껴져서 많이 슬펐다."      


- 명호라는 캐릭터를 직접 소개한다면.

"명호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외롭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음료수 공장에서 철기라는 친동생 같은 동생과 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물론 술도 마시고 술로 돈을 쓰긴 하지만, 그렇다고 유흥가 같은데 서 쓰는 게 아니라 혼자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소시민의 삶. 한 번 상처는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전혀 상상도 못했던 아이가 딸이라고 했을 때, 그 운명을 어찌할지 몰라 방황하다 어떤 결정을 하게 되는 소시민이다.

     

하루하루 일하고 술도 마시며 특별한 희망 따윈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나름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소녀가 찾아와서 내가 박명호 딸이다 라고 얘기했을 때, 처음에는 뭔가 큰 사건이 하나 터지면 이제 진짜 현실인가 아닌가 장난이겠지 이런 것들. 그렇게 생각해 봤었다. 어안이 벙벙한데,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그런데 또 그럴 수 있겠네 믿을 수 있는... '어느 날 갑자기' 온다는 것에 포인트를 주었다.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는 입장인데, 어느 날 운명처럼 자기 핏줄이라는 게 찾아오면 그건 거부할 수 없는 것 같다. 감정의 포인트를 그런 식으로 잡았다."      



- 술 취한 모습도 그렇고, 명호라는 인물의 디테일을 잘 연기한 것 같다.

"일상의 표현은, 명호는 술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진짜로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일상에서의 명호라는 인물이 술을 마셨을 때 어떻게 될까. 혼자 술 마실 때의 행동과 감정을 많이 생각했다. 인물에 대한 약간의 사랑스러움이 점차 생기는 것 같았다."     


- 몸을 쓰는 연기도 상당한데.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빠루'를 들고 동네를 뛰어가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실제로 거의 기절하실 뻔 했다. 배우는 컷을 안 하면 혼자 컷을 할 수 없잖나. 아주머니가 너무 놀라셔서 고개숙여 사죄를 드렸다. 나도 무척 놀랐고.      


오히려 폭발하는 장면은 어려운 연기가 아니다. 연기가 쎄니까, 집중만 잘 되면 된다. 또 감독님이 어느 정도 배우들을 배려해주셔서 점차 감정이 쌓아져 가는 순서로 촬영한 터라, 마지막에 명훈이 폭발하고 뛰어다니는 건 실제로 후반부여서 집중만 잘 하면 됐었던 것 같다."     


- 아역인 장해금 배우와 함께 하는 장면이 적지 않다.

"<산다>를 찍을 때, 함께 한 친구가 해금이 나이와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어렵진 않았다. 해별이란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면 '낯설기' 효과를 주려고 했다. 어찌됐든 제 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딸이라고 하고 왔기 때문에 친근한 부녀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처음 내 딸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십 몇 년 만에 처음 보는 것이기에 낯선 느낌이 맞다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일부러 해별이와 얘기를 많이 안했다. 친해지면 그게 다정한 아빠 식으로만 표현될까봐. 그래야지 해별이도 나를 아빠라고 해서 찾아왔지만 낯선 아빠가 되면서 묘한 분위기가 흐를 것 같았다."       


- 박석영 감독에 대한 느낌도 묻고 싶다.  

"<들꽃>을 봤을 때, 굉장히 신선했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해주신다고 해서 너무 좋았다. <스틸 플라워>는, 현장에서 이틀 밖에 없어서 잘 알 수는 없지만 영화를 대하는 깊은 에너지를 봤다. 그리고 부산영화제를 갔을 때 GV 상영 때 처음 봤는데, 너무 충격이었다. 영화가 훌륭하게 나왔고, 출연한 것에 감사할 정도였다. 에너지가 이렇게 표현되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재꽃>은 3부작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현장에서의 감독님은 고독하다. 또 집중력이 뛰어나시다. 서로 존중하면서 작업해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숙소 앞 호프집이 있어서 그날 촬영이 끝나면 항상 감독, 배우들과 야외에서 맥주 한잔씩 하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했던 추억도 떠오른다."      



- 독립영화를 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독립영화는 특히, 연극 같다. 연극무대에서 20년 가까이 있다 보니, 이제는 편하고 같이 연구에서 만들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이 됐다. 독립영화도 굉장히 비슷하다. 물론 배우가 가장 많이 고민하지만, 다 함께 고민하고 여러 조언들을 얻으면서 그 인물을 탄생시키고 작품을 만드는 게 하나의 창작극을 만드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연극 같았다.      


또 배우들에게는 독립영화가 정말 좋은 것 같다. 인물에 대한 해석들이나 집중도도 높고 인물에 대해 여러 토의도 거칠 수 있다. 물론 결론은 본인 자신이 역할을 만드는 것이지만 특히 창작의 재미가 많다. 그래서 더 독립영화가 매우 훌륭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까지도 열심히 고민하고 토의하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 작품이 잘 나왔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명호가 해별이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해별이도 명호에게 약간의 마음의 문을 열고 나서 잠자리를 잡아주는 동화 같은 장면이 있다. 그 그림과 잠자리를 잡아주는 명호의 마음과 해별이의 마음의 문을 약간씩 열리는, 그 마음이 부녀 사이에 약간 미묘하지만 서로를 약간씩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런. 아름다운 장면 같다."      


- 명호라는 캐릭터에게 한 마디 해 달라.   

"명호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재꽃>을 관람할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감독님, 배우, 스태프들 열심히 그리고 잘 훌륭하게 찍어냈다고 생각한다. 기적 같은 장면들이 영상에 담겨있다. 또 <재꽃>은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 희망, 꿈, 증오심, 이기심, 배반, 배신이 다 들어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도 끔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고.      


그리고 명호라는 인물로 이번 여행을 했는데, 배우는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여행을 한다고 생각한다. 명호라는 역할로 힘들고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행복했고 제가 한 여행을 여러분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다. 독립영화, 많이 힘들지만 이 영화는 꼭 보셔서 여러분들이 눈으로 확인해 달라. 여러분들 인생에 '인생작'이 될 수 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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