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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Feb 05. 2020

'신종 코로나' <컨테이젼>의 네 가지 경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컨테이젼>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평소 겁이 많거나 소심하다 자평하는 분들, 관람을 자제 부탁드린다. 공포영화가 아니라서 더 그렇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버스 손잡이를 만지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맨손으로 잡은 신용카드를 점원에게 건널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더욱이 영화 초반 등장했던 중후반부 이후 서사 안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 '대중'들이 갈수록 날카롭고 폭력적으로 변해갈 때, 숨이 턱턱 막혀오는 순간과 맞닥뜨릴 것이다.


그렇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복판에서 다시 보는 <컨테이젼>(Contasion)은 좀비 없는 좀비 영화이자 '쇼크' 효과 없는 공포영화였다. 벌써 9년 전 영화다. 우리가 메르스 사태를 겪기 전, 전 세계는 2002년 사스, 2003년 조류인플루엔자, 2009년 신종플루 사태를 경험했다.


그쪽 동네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때도,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던 걸 테다. 정체모를, 외부로부터 온 바이러스와의 (컨테이젼이란 직설적 제목이 내포한) '접촉'과 '감염', '전파'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 일말이다. 2020년 2월 현재 늘어나는 미국의 독감 환자 사망자 수와 중국의 '신종 코로나' 감염 사망자 숫자를 보라.


게다가 연출은 스티븐 소더버그다. <오션스> 시리즈는 애교가 맞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깜짝 데뷔, 할리우드에서 지적이고 '쿨'한, 냉정하고 냉철한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컨테이젼>은 시종일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감염병의 계보학 혹은 감염병 지도를 대수롭지 않게 완성해낸다.


그러니까, '이 구역 1인자는 바로 나'를 선언이라도 하듯, 전염병 소재 영화는 <컨테이젼>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인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이어가고, <뉴욕타임스>가 "신종 코로나가 세계적인 유행병이 될 거"라고 경고했으며, 홍콩 시민들이 중국과의 국경 폐쇄를 요구하고 나선 2020년 2월. 다시 확인하는 영화의 이 총체적인 시선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정체불명 감염병 자체가 주인공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 감독이 얼마나 '쿨'하냐면, '아이언맨의 그녀' 기네스 팰트로를 영화 시작 단 8분 만에 '사망'시켜버리는 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전염병과의 135일 간의 사투다. 헌데, '무미건조'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다.


<아웃 브레이크>, <감기>, <28일 후> 등 이 구역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냉철하다. 주인공의 사투를 볼거리로 전시할 생각, 전혀 없다. 사랑하는 동반자와의 이별, 슬퍼할 겨를도 없다. 진상을 조사하고 백신을 개발하려는 과학자와 의사들의 사투, 그게 그들의 일일 뿐이다.


그래서 'Day-2'란 자막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최초 감염자의 증상이 발생한 곳이 홍콩이고, 출장을 마치고 돌아간 집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다. 직후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홍콩 구룡반도, 영국, 런던, 미국 미니애폴리스, 일본 도쿄로 옮겨가고, 빠른 속도로 사망자를 발생시킨다.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촉발된 대재앙의 시작이다.


영화가 따라잡는 것은 희생자와 그 주변인뿐만이 아니다. 미 애틀란타에 위치한 CDC(질병본부센터)는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전직 기자이자 음모론자는 일찌감치 이 21세기 역병의 존재를 눈치 채고 경고장을 날린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연구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국 제목 그대로 '감염병'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다. 시간과 공간을 따라 이동하고 확장되는 감염병의 여파를 건조하게 따라잡을 뿐이다. 그 동안 누구는 병에 걸리고, 누구는 병을 없애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또 누구는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 뿐이다. 멧 데이먼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는 유명 배우들이 캐릭터들을 소개하면 더 명확해 진다.


다양한 캐릭터가 함의하는 인간의 조건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맷 데이먼이 연기한 미치 엠호프. 재혼 가정의 평범한 가장인 그는 짧은 시간 아내와 의붓아들을 잃고 '면역자' 판정을 받은 이후, 유일한 혈육인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다. 아내가 왜 바이러스에 노출돼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는지를 애타게 알고 싶어 하던 이 남자가 135일 후 흘리는 눈물은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감정을 내포한다. 어쩔 수 없이 집 안에서 딸의 졸업 파티를 열어주는 마지막 장면을, 소더버그 감독이 건조하게 찍은 것은 물론이고.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한 CDC의 치버 박사는, 평점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정부 쪽 사람'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백신 개발이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는 과학자들과 연구진들의 활동을 조율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허나 그런 그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아들의 생명을 걱정하며 자의 반 타의 반 내부 정보를 흘리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미어스 박사는 사태 초반 구조원들을 진두지휘하고, 확진자들을 접촉해 격리시키거나 감염원인 등을 조사하는 인물이다. 결국 그 헌신과 책임감의 끝은 안타깝게도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지만. 제니퍼 엘이 연기한 앨리 핵스톨 박사는 전형적인 '이과'형 인간이자 끈기의 소유자다. 끝끝내 백신을 개발해낸 그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낼 위기에 직면하게 되지만.


세계보건기구 소속으로 홍콩에서 최초 감염경로를 밝혀내는 레오노라 오란테스 박사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했는데, 급박한 사태 속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집단과 구조 속 이기적 역학 관계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오란테스 박사는 본의 아니게 휘말린 위기를 인도주의 정신으로 극복하지만, 그 끝엔 사회에 대한 실망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 세 박사를 모두 여성 연기자가 연기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주드 로가 연기한 프리랜서 기자이자 음모론자 앨런 크럼위드. 전 세계 의학계와 미 정부, 제약 회사들이 백신 치료에 골몰하는 동안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개나리꽃이 치료제라는 민간요법을 '뉴스'로 퍼트린 그는 당연히 유명 인사로 등극한다. 역시나 당연히, 그의 신념의 바탕엔 의료 기관과 제약회사, 각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대사 역시 이 음모론자의 몫이다. 왠지 씁쓸한데, 틀린 말은 분명 아니다.


"1918년 (전 세계 5천 만명이 죽은)스페인 독감 후에 부자 된 사람들 많아요. 감기약이랑 살균제를 만든 사람들. 누군 죽고 누군 돈을 버는 거죠. 닭이 몰살 당하면 다른 육류 수요가 폭증 하듯이. 완벽하지 못한 면역 체계 덕에 돈을 버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니까요. 제약사들도 떼돈을 벌잖아요."


이밖에도 앨런을 불신하다 병에 걸리는 '레거시 미디어' 편집장, 정부 측을 대변하는 미 국토안보부 요원과 CDC 간부, 고향 마을 아이들을 살리려는 홍콩 정부 관계자 등 다채로운 인물들이 이 '감염병 계보학'이자 인간 군상극의 풍부함을 더한다.


이 무미건조한 간접체험의 교훈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리하여, 공포영화이기 앞서 생생한 간접체험을 수반하는 <컨테이젼>의 교훈을 찾자면 이런 식.


첫째, 가짜뉴스나 음모론에 빠지지 말라. 섣부른 불신과 그로부터 자가 발전하는 공포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그 공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이들에 대한 혐오로 번지기 마련이다.


둘째, 우선 전문가들을 신뢰하라. 그들도 비록 본의 아니게 대응이 늦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그 누구도 대면하지 못했던 '신상'이지 않은가. 제약회사나 정부 기관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는 <컨테이젼>은 그럼에도 정식 '프로세스'를 축소하더라도 끝끝내 백신 개발에 성공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거기서 강조되는 것이 시스템의 중요성인데, 소더버그 감독은 그 중간중간 '그들도 우리처럼' 사람이라는 사실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셋째, 사랑하는 동반자들을 돌아보라. 딸을 목숨을 지키려는 미치와 함께 <컨테이젼>이 건조하나마 긍정적으로 그리는 주인공들은 대다수 바로 지금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다. 동반자들을 걱정하고 보호하며, 그를 위해 자신들의 할 일에 매진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영화 속 세 여성 박사들처럼 '인류애'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고. 영화 말미, 음모론자의 현재가 초라해져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넷째, 손 잘 씻고, 불안감과 공포로 떨지 마라. 그 공포를 조장하지도 말고. 멧 데이먼이 소더버그 감독에게 건네 받은 시나리오에서 "읽고 나서 꼭 손 씻어"란 메모를 발견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이렇게 전염병 사태의 A부터 Z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영화이니만큼, 손 씻기를 비롯해 일반인들이 알아야 할 상식은 물론 전염병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와 의료기관의 매뉴얼까지도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간접체험의 영화.


CDC와 전염병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은 소더버그 감독은 개봉 당시 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문가들이 좀 더 손을 씻고, 손 세정제를 사용하라고 하더라"며 "자기 얼굴을 손으로 만지는 게 진짜 최악이고"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일 뿐,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만큼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공포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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