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개천용', 기자 소재 드리마의 기자윤리

by 하성태의 시네마틱

기자 소재 드라마는 주인공이 신문 기자든, 방송 기자든 한결같이 불의와의 대결 혹은 거악과의 대결, 즉 정의감으로 주제가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본격 기자 드라마는 아니지만, 저 멀리 <인간시장>(1988)의 '현대판 히어로' 장총찬을 돕는 여성 주인공도 사회부 기자였다.


일종의 성장 드라마, 직업 드라마 형식을 취했어도 크게 변함은 없었다. 대체로 (정치부도, 문화부도 아닌) 사회부 기자를 내세운 이런 드라마들은 소위 '그림'이 될 만한 사건의 묘사에 매달리는 동시에 부장급 선배 기자와의 갈등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일말의 정의감과 언론 윤리를 고민하는 주인공과 현실과 경제논리를 앞세운 고위층(이나 외부세력과)의 갈등과 대립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측면도 다분하다. 직장인, 생활인으로서 일반 언론사 기자들의 일상을 통해 드라마나 영화의 극적인 갈등과 전개를 충분히 담보해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이런 드라마들에 꾸준히 현실감의 부족이나 일종의 미화, 과한 로맨스 요소가 문제시됐던 것도 그래서다.


심지어 연예부 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결국 결말은 이 정의감의 증명을 향해 달려가곤 했다. 그건 일반 시청자들이 기자라는 직종에 기대하는 일종의 직업윤리의 반영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만큼 일반인들은 기자라는 직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여기며, 또 그들 중 일부는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진보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아직 품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정의감이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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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날아라 개천용>의 한 장면 ⓒ SBS

이에 반해, 대부분의 기자 소재 작품들은 이들 기자 집단이 기득권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과연 누구를, 어떤 계층을 대변해야 할지에 대한 정의가 대부분 모호한 편이었다. 실제로 기자 개개인이 매일의 일상에서 그런 고민을 거듭할 순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을 여러 회차가 거듭되며 갈등을 이어가고 증폭시켜야 하는 드라마로 시각화하고 설득력 있게 서사화 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문제다.


시즌제도 아닌 16부작이란 형식을 담보해내야 하는 우리 드라마 업계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미국 드라마 팬들이 열광한 동일한 범주의 장르인 HBO <뉴스룸> 조차 3시즌 9개 에피소드로 막을 내렸던 것이나, 또 '미드' 중 유독 기자 소재 드라마가 희귀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라 풀이된다.


'황우석 사태' 당시 MBC < PD 수첩 > 팀의 활약을 그린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나 과거 군 공익제보자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을 소재로 한 <모비딕>, 탐사보도의 전형과 언론의 독립성을 현실감 있게 그린 할리우드 영화로 각광받는 <스포트라이트>나 <더 포스트>가 그만큼의 완성도를 담보해낸 것은 2시간 안팎의 상영시간으로 완결되는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이 일조했을지 모를 일이다.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작품 속 실명 비판을 유독 꺼려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가상의, 가명의 방송사와 언론사를 배경으로 삼더라도 자연스레 연상되는 사건이나 그 사건을 보도한 매체가 연상될 수밖에 없다. 언론계가 그리 넓지 않지만, 유독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기 꺼리는 풍토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에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국 특유의 문화는 현실감을 반감시키는 한 요소다.


시청자들의 그런 연상 작용과 '리얼 월드'와의 괴리감 사이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과도하게 강조됐던 것이 바로 정의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통쾌한 활약과 비교해 현실에선 그런 탐사보도, 직론직설을 쉬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괴리감과 이를 상쇄하기 위한 주제적 강조로서의 정의감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 담론이 확산된 현실에서 '국정농단' 사태 직후 유독 정의감을 강조한 기자 소재 드라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방영됐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언론계 묘사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민중을 '개돼지'라 일컫는, 그러면서 정재계 고위 인사들과 강하게 결탁하는 동시에 제 이익만을 쫓는 유력 일간지 수도일보의 이강희 논설위원. 그리고 그런 괴물을 탄생시킨 수도일보의 보도 매카니즘을 극화한 영화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원작 만화야말로 대한민국 기자 소재 콘텐츠의 최전선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총 20부작 중 중반을 넘긴 SBS <날아라 개천용>의 장점이자 차별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굳이 요약하자면, 기자 소재 드라마로서 정의감을 거부감 없이 담아내 돼 현실과의 괴리를 최소화할 것, 그러면서도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볼 것, 직업 드라마나 흔한 정의감을 뛰어 넘는 직업 윤리를 현실적으로 그려낼 것 등등.


처음 만나는 기자 캐릭터


자신만만하게 "실화 바탕에 허구를 가미했다"는 자막을 드라마 시작에 박아 넣은 <날아라 개천용>은 중심 소재를 "억울한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대변하는" 재심 사건으로 최대한 좁히되 그간 접하지 못했던 독특한 기자상을 제시하는데 주력한다. 그게 다 실화의 힘이다.


<날아라 개천용>의 박상규 작가는 독립언론 '셜록'의 대표기자다. 과거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재심 3부작을 연재해 독자들의 응원을 이끌어낸 현직 기자다. 드라마는 박 기자가 박 변호사와 함께 쓴 <지연된 정의>와 재심 3부작을 모티브 삼아 극화한 드라마다. 방영 초반, 언론이 박 기자의 작가 데뷔에 주목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날아라 개천용>은 우리사회에 나쁜 언론보도가 많은 것은 "좋은 언론, 좋은 기자가 적어서"라고 말한다. 지방 대학을 졸업한 대기업 노동자 출신이자 언론사 '특채' 출신이면서 유력 서울시장 후보의 자서전 대필을 걷어찬 주인공 박삼수(배성우)를 활약을 통해서다. 박 기자가 일정정도 자신의 이력과 경험, 그리고 바라는 기자상을 적절히 조합해 낸 박삼수는 한국 드라마 사상 꽤나 희귀한 기자 캐릭터라 할 만 하다.


일종의 민중적 세계관이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 장의사 집 아들이자 '때밀이' 엄마의 자식이었던 박삼수는 후배들에게 특종의 비결을 묻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글발'은 타고난 거라고 으스댄다. 바꿔 말하면, 그 '글발'은 발로 뛰는 취재의 바탕을 누구의 시각에서 출발할지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요, 특유의 밑바닥 감수성이 제공했을 다른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날아라 개천용>이 제시하는 새로운 종류의 기자는 이렇게 특유의 시각과 '글발', 생존력을 무기로 '다른' 기사쓰기에 매진한다. 딱히 정의감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정장 차림의 말끔한 방송기자들과 달리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촌지는 거절하지만, 먹고 살만큼 적당히 돈도 밝힌다.


다만, 몸이,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박삼수는 어린 시절, 본인이 가난했고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다. 살기 위해 사람을 죽였던 '때밀이' 어머니의 고통을 기억하는 아들이기도 하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들과 엇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박삼수의 기막힌 '글발'은 바로 그러한 공감에 기인한다.


작가의 경험과 극적 장치가 어우러진 캐릭터일지 모르지만, 세상이 바라는 기자상의 덕목 중 하나가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시선이라는 드라마의 주제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다시 말해, 특종에 목을 매거나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서 더 부담스러운 '클리셰' 같은 기자가 주인공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 박삼수 조차도 성장하는 캐릭터다. 재심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사법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대면하면서다. 생활고를 걱정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글발로 이름을 떨치고 사대문에 재입성할 지를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동거인의 아버지에게 잘 보일지 노심초사하던 박삼수.


그는 얼떨결에 파트너가 된 '국선 재벌' 박태용(권상우) 변호사와 함께 사회적 약자와 사법 피해자들을 대변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발'이 세상의 슬픔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주머니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조차 스스로가 사익추구보다 취재원들의 억울함과 딱한 처지, 고통스러운 과거에 공감한 결과다.


<날아라 개천용>은 종종 농약을 먹고 죽은 어머니의 냄새를 잊지 못하는 사법 피해자나 살인자의 아들이라 놀림 받는 피해자의 아들의 처지에 함께 아파하는 박삼수의 눈물과 공감을 비추는 걸 잊지 않는다. 이렇게 엘리트나 기득권 언론인과는 거리가 먼 박삼수의 완벽하지 않은 모자람 또한 일종의 기자정신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사람냄새 혹은 인간미라 부를 만한 개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출발했지만 기어코 진실 추구와 권력 견제로 나아가는 캐릭터의 성장을 이끌어내면서. 그리하여 <날아라 개천용>은 일종의 시대정신 혹은 동시대성을 성취해나가는 중이다. 수사기관과 사법부 개혁을 경유해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란 화두를 직설적으로 건드리면서.


동시대성과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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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날아라 개천용>의 한 장면 ⓒ SBS

취재 행위라면 몰라도, 기사를 쓰는 행위 자체는 전혀 극적이지 않다. 반면 법정에서의 재판 과정은 다르다. <날아라 개천용>의 극적인 순간이 박삼수보단 박태용의 활약에서 비롯되는 이유다. 재심 과정에서 회개한 증인이 눈물 흘릴 때, 검사와 판사들이 곤란해 할 때, 그런 법비들에게 박태용이 호통을 칠 때, 드라마의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날아라 개천용> 속 '빌런'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들을 양산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하지 않는 경찰과 검찰, 판사들이다. 박태용과 박삼수의 대사를 통해서도 그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작게는 공보검사 정웅인을 비롯한 과거 사건을 조작한 당사자들이다. 하지만 최종 빌런은 재심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대법관이나 그 윗선인 법조 설계자 등 거악에 해당하는 법비들이다.


이들은 MB를 연상시키는 대권 후보 정치인이나 사옥 건립에 목숨을 거는 박삼수의 친정 언론사를 움직이는 드라마 속 거악들로 설정됐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언론개혁이 화두로 떠오른 지금, 사익 추구로 뭉친 이들의 끈끈한 커넥션과 실제 커넥션의 작동 매커니즘을 떠올린다면 꽤나 시의적절한 설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편에 선 박삼수와 박태용의 또 다른 파트너로 과거 윗선의 압박에 굴복해 진범들을 풀어줬던 검사 출신 황민경 변호사 캐릭터와 또 하나의 성장하는 기자 캐릭터로 박삼수의 후배 이유경을 배치한 것 또한 현실의 반영과 극적 재미를 조화시킨 영리한 선택이고.


<날아라 개천용>은 사실 정교한 극적 장치나 드라마틱한 전개에 승부를 건 드라마는 아닐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두 주인공 캐릭터의 힘에 기댄 측면이 다분하다. 주인공이나 악당 모두 복합적이라기보단 단선적이고, 때때로 설명조 대사나 회상 장면의 반복은 과하다 싶을 정도다.


대신, 이 드라마는 매번 돌직구를 날린다. 그 통쾌함의 힘, 박삼수와 박태용이 끝내 이겨줬으면 하는 그 단순하지만 솔직한 감정이, 권선징악의 단순한 힘이 극을 지탱해 나간다. 그런데, 드라마 속 사건도, 두 주인공의 활약도 실화에 기반했다고 한다. 호기롭다.


특히나 '기레기' 담론을 넘어 언론개혁의 국면으로 나아간 작금의 현실을 비춰보면, 검찰개혁이, 사법개혁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현실을 떠올리면, 어쩌면 앞서 간 정의를 설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히, 단순한 기자 소재 드라마를 뛰어 넘는 독특한 드라마가 출현했다.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기자 캐릭터 박삼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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