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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09. 2017

"뻔뻔하고, 또 말랑하게", <재꽃> 박현영의 연기론

<재꽃>의 '진경', 배우 박현영 인터뷰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으로 데뷔했고, <살인의 추억>, <그 놈 목소리> 등에 출연했고,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로 장편 주연을 맡기도 했었어요."       


그렇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배우 박현영을 알아 왔다. 홍상수·봉준호·박진표 감독의 초기작은 물론 신수원 감독의 역작에서 관객들에게 깊은 인장을 남긴 박현영은 독립영화의 보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재꽃>의 진경은 그런 박현영의 연기 인상에 또 다른 깊은 인장을 남길 영화다. 예의 그 '연기톤'을 유지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진경이란 캐릭터 속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 넣으며 <재꽃>의 갈등을 더 짙고 선명하게 만들어줬다.      


박현영 배우는 "뻔뻔해야 하지만 또 뻔뻔하지 않고 가장 말랑말랑한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배우로서의 숙명을 드려주는 동시에 자신이 해석하는 진경이란 캐릭터의 복잡한 심경을 가감없이 들려줬다. 그의 말마따나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가리지 않고, 이 박현영이란 배우를 아주 오래오래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어 졌다.

     


- <재꽃>과 진경을 소개한다면.

"전 <재꽃>을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봤다. 진경도 그 중에 하나다. 열한 살짜리 소녀가 시골마을에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웨스턴 무비 같았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 예컨대 채플린의 <키드>처럼 똘똘한 어린 소녀가 아무도 없는 시골 터미널에 도착해서 캐리어를 끌고 화면으로 들어오는데, 마치 <황야의 무법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중 제가 맡은 역은 그 지역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고, 그 곳에 새로 터를 잡고 일원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다. 중요한 파국의 원인을 제공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박석영 감독은 진경 역에 박현영 배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고 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고, 또 박석영 감독과 작업해 본 느낌도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감독님 마다 언어가 다르니까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완전히 새롭게 감독님들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작업 초기뿐만 아니라 작업 전 과정에 걸쳐서. 결국은 감독님이 구현하고 싶은 게 있고, 제가 가진 여러 가지 모습 중 어떤 면을 보고 절 캐스팅 한 건지, 그 이상을 원하는 건지 알아내려 노력을 많이 한다. 감독님들도 이미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지만, 대부분 본인들도 뭔지 잘 모르는 다른 걸 원한다. 감독님들도 결국은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배우들도 그럴 거다. 감독을 관찰한다. 결국은 대본 쓴 사람의 의도가 (시나리오에)투영돼 있기 때문에. 결국은 그걸 관찰해가는 과정이 연기 아닐까. 배역을 맡았을 때, 이것저것 타협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       
"<재꽃>은 매우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이상향이랄까.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은, 제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이야기. 마치 할머니나 엄마가 어린 시절을 밤에 얘기를 들려주면 혼자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하지 않나, 그림들을. 그 그림이라는 것이 나의 기억이나 나의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여러 가지, 그러니까 영화, 사진 등 매체가 무의식중에 올라와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어릴 때 읽은 <삼포 가는 길>을 <TV 문학관>에서 보는 그런 정서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거는 약간 우리 영화의 인물들 자체가 단순하게, 리얼하게, 연기하는 게 아니라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우화 속에 나오는 인물인거지. 물론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 수도 있지만, 해별 같은 캐릭터는 현실에서 보기 굉장히 어렵고, 그런 시골마을도 존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건 기억 속의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하거다. 따라서 제 연기 또한 거기에 따라서 달라져야 하고."      
"(박석영) 감독님도 어떤 원형적 인물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저한테 왜 어려웠느냐면, 그리스 비극의 원형적 인물이랄까. 물론 사람을 유형화하고 타협화 된 인물로 그릴 수 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잘못하면 굉장히 타자화 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거다.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그거다. 또 어느 순간, 감독님이 원하시는 어떤 굉장히 구체적인 디렉팅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럼 그때 갑자기,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순간들이 가끔씩 있었다. 최대한 그래서, 그때 내가 잘못 이해한 건가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다. 테스트 촬영이 없었다면 오판할 수 있었을 거 같고,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 진경은 후반부 파국의 단초가 되는 캐릭터다. 인물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진경이 느끼는 이 마음을 알겠는가? 사실, 이런 부분이 문제였던 것 같다. 항상 그런 것 같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영화에 골몰하지 않나. 영화와 비슷한 사건이 진짜 많이 일어났는데, 예컨대 제가 실제 우리 집을 옮겨야 했다. 근데 내가 실질(현실)적인 걸 잘 모르고 살았다. 독립했다가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이 있었는데,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7000만원으로 집을 어떻게 사지? 7000만원을 사기친다? 약간 넌센스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건, 제가 전세금을 빼야하는데 지금까지 현금으로 만질 수 있는 가장 큰 돈이었는다는 거다. 그러지 않나? 현금인데. 근데 집 주인이 갑자기, 굉장히 희한하게, 저한테 돈을 늦게 준다는데도 나는 바보 같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알았다고 해 버린 거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기를 당했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정말 이게 장난이 아니었구나, 한잠을 못 잤다. 누구한테 얘기도 못하고, 당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7000만원에 대한 금액 자체가 완전히 다르게 생각되는 거다. 부모님께 나중에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너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랬다는 거다. 진경 같이 부모님 도움 없이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온 친구들은,  매우 지혜롭고 현실적이고 강단이 있고 허투루 넘어가는 게 없다. 진경을 보면 그렇다. 굉장히 팍팍한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믿는 구석이 없지 않나. 자기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으니,  그런 심경이 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소설이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과  실제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 <재꽃>과 진경이란 캐릭터가 박현영씨에게 운명이었을까(웃음). 그래도 진경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걸 연기로 표현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진경은, 너무 외로우니까 누구든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진경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 돈을 훔치는 게. 훨씬 더 견고하고 치밀하게 하던가. 너무 즉흥적이고 너무 장난치는 것 같지 않은가 라고 이야기 했는데, 나중에 보고 제가 너무 놀란 건 '아 맞어. 사람이 어딘가에 눈이 멀어있으면 시야가 너무 너무 좁아지면서 너무 멍청해진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건을 경험해보니, 사람들이 '바보 아니야?' 라고 하는 말들이 너무 이해가 간다."    

"특히나 이건 어떤 지배에 관한 건데, 우리 영화가 사실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철기에 대해서 나(진경은)는 굉장히 '1순위'가 되고 싶은 거다. 근데 명호가 자꾸 방해하고 명호 말을 더 듣는 게 화가 나고. 나를 뭐라 생각하는 거지? 명호와 둘의 관계가 훨씬 오래됐고 둘의 관계가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남자들 사이의 세계라는 게 있지 않나. 진경은 그게 굉장히 못마땅했고, 경쟁심도 생기고하면서 거기까지 간 것 같다. 그때는 돈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가치를 쫓았던 것 같다."      


- 박석영 감독과는 함께 처음 작업했다.      

"박석영 감독은 배우를 믿어주고 사랑하고, 그런 전폭적인 느낌이 강력하게 느껴진다. 연극은 사실 한번 흐름을 타면 굉장히 내 상태만 괜찮으면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다. 반면 영화는 희한하다. 카메라 앞에서, 예를 들면, 굉장히 많은 스태프들이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배우는 뻔뻔하게 해야 하는데 또 어쩌면 뻔뻔하면 안 되는 거다. 가장 말랑말랑한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 가장 오픈 된 상태, 그게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에게는 그런 시도가 매번 도전이고."
"근데 그게 강렬한 기쁨을 주니까 하는 건데, 굉장히 어렵다(웃음). 특히 그런 면을 이해하는 스태프나 감독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현장이냐에 따라 (연기가)달라진다. 컨트롤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컨트롤을 하고 있는 거다. 그게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인지, 박 감독님이랑 작업 할 때는 그런 부분을 이해해 줘서 굉장히 좋았다."     




- <재꽃> 속 진경에게 전하고 픈 말이 있다면.      

"제가 진경보다 나이도 많고, 각자 굉장히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보면... 관객으로 얘기하자면, 사람이라면 다른 거에 끌릴 때가 있다는 거다. 너무 힘들면. 그래서 철기한테 끌렸을 거다. 진경이 그래서 도시에서 상처받고 시골에 왔는데 인간이 사는 데가 다 똑같다 보니 변하지 않은 거다."     
"나는 다시, 진경이가 대도시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왜냐면 거기엔 진경과 같은 사람이 대다수니까. 절대다수의 고독한 사람들이 있고, 또 고독의 즐거움이 있지 않나. 아직 젊으니까,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혈혈단신 혼자니까 안달복달 하면서 사는 건데, 또 그런 상황이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런 생각도 한다. 근데 또 사람이 성격마다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진경이가 친구들이나 사람들도 만나면서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일상의 소소함도 느끼고, 자기도 좀 가꾸면서. 자기가 너무 힘드니까 진경의 시선이 자꾸 외부로 향하는 건데, 이제는 자기를 좀 더 아꼈으면 좋겠다."     


- 배우 박현영은 독립영화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연기자이기도 하다.        

"영화가 (관객이)얼마가 들고,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내게 영화는 영화다. 독립영화가 좋은 점은, 영화가 제일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 한 아티스트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시킬 수 있지 않나. 자본의 힘이나 힘의 논리가 아니라. 그래서 제게 많이 소중하고, 그런 작업들이 훨씬 의미가 있다."      
"규모가 큰 것, 신기한 것을 해보고도 싶긴 하지만 말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부러운 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 볼 수 있다는 거다. 저 다른 세상에 가보는 것, 우주선을 타보는 것.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인디아나 존스>다.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두 개의 축이랄까. 그런 것에 대한 열망이 있는 거지. 둘 다 굉장히 본능 적인 것 같다."      
"또 하나는, 온전히 구현된 어떤 예술작품을 봤을 때 내가 고양되는 걸 느낀다. 아주 말초적인 즐거움이 아닌. 어린 나이였지만, 처음 예술영화를 봤을 때 '저게 뭐지?' 그랬다. 근데 뭔가 계속 보게 돼(웃음). 그러다가 굉장히 쑥 들어오는 게 있다. 그걸 처음 느낀 사람은 계속해서 잊을 수가 없는 거지. 그래서 더욱 작가주의 영화들을 찾아보고 그렇게 된다. 독립영화 특히 지금 현재 시스템에서는 독립영화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박석영 감독도 그렇게 조명될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재꽃>을 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픈 이야기가 있다면.      

"영화를 보는 건 각자의 자유다. 하지만 저는 처음에 <재꽃>을 봤을 때 그랬다. 한편의 전원소설 같은 느낌, 낭만주의적인 소설? 그런 작품을 한 편 읽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단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울 근교나 도시를 떠나 '리프레쉬' 하러 나들이 가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실 수 있겠구나. 영화 속 화면도 아름답고. 자연 풍광이나 이런 것들이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잊어버렸던 모습이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구현돼 이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들이나 내 어릴 적 순수했을 때 생각했던 가족의 형태나 이상들? 그런 모습을 오글거리거나 '올드'하다고 생각하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사실 굉장히 무섭다. 사람들 마음 깊숙한 곳엔 누구나 그런 이상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가치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꺼내놓기 힘든데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들. 결국은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면서 찾게 되는 일종의 휴머니티 같은 것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노스탤지어가 비단 과거만을 향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는 이상향에 대한 생각들을 <재꽃>을 보면서 떠올렸으면 한다. <재꽃>이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런 이상향을 잠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INFORMATION

제     목 : 재꽃

장     르 : 드라마

감     독 : 박석영 (<들꽃>, <스틸 플라워>)

출     연 : 정하담, 장해금, 정은경, 박명훈, 박현영, 김태희

제작/배급 : 딥 포커스

개 봉 일 : 2017년 7월 6일

등     급 : 12세 이상 관람가

공식 페이스북 : www.facebook.com/ashflowermovie

공식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ashflowerfilm


SYNOPSIS

아스팔트 깨어진 틈새마다 자라나는 들풀처럼

그렇게 한 아이가 온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삶을 보내고 있는 하담(정하담)에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아빠를 찾겠다며 자신과 꼭 닮은 열한 살 소녀, 해별(장해금)이 찾아온다.

고요했던 마을은 해별의 등장과 함께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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