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엄하게 꾸짖는 언론들, 1면에 ‘박제’한 조선일보…부화뇌동하는 정당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지난 4월 3일 오전 서대문형무서 역사관 앞에서 열린 제73주년 제주4.3 서울추념식 대본을 쓰고 행사 전체를 기획했다. 전날 일기 예보가 있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쏟아진 빗줄기는 우비로 다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tbs tv 및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현장 중계 영상 카메라였다. 추념사가 예정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등 내빈들이 원고를 읽고 발언을 할 동안 진행요원이 옆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으면 이른바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행사 시작 20분 전까지도 묘수가 없나 전전긍긍하던 상황. 그러자 현장 경험이 많은 행사 연출자가 친히 나섰다. 그는 주변 대형 우산을 하나 잡아들고선 마련된 연설 테이블 옆에 그 장우산을 적절한 길이로 맞춰 본 뒤 테이블 옆쪽으로 단단히 테이핑을 했다.
다행히 나름 단단히 고정됐다. 사람이 옆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을 필요 없이가 없어 보였다. 짝짝짝! 연출자에게 ‘엄지척’을 해줄 수밖에 없었고, 추념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27일 오후 충북혁신도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초기 정착 지원을 발표하는 브리핑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 동안 한 뒤쪽에 있던 직원이 도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이날 강 차관이 발표한 브리핑 자료는 비에 흠뻑 젖었다. <사진제공=뉴시스>
몇 달 전 기억을 길어 올린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어제(27일) 하루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강성국 법무부차관의 ‘황제 의전’ 사진 말이다. 이날 강 차관은 충북 진천 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와 가족 377명의 정착 지원 방안 등을 브리핑하기 위해 취재진 카메라 앞에 섰다.
한데 사진의 힘이 무섭긴 무서웠다. 강 차관 뒤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 든 한 법무부 직원의 사진이 ‘황제의전’ 논란을 일으킨 것. 사진 한 장만 놓고 보면 충분히 비난 받아 마땅한 상황으로 보였다. 강 차관과 법무부도 공식 사과에 나섰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와 JTBC <뉴스룸>도 이 논란을 다뤘다. 온도차는 살짝 달랐지만. 차이는 언론의 존재를 설명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방송사들이 ‘황제의전’ 꼬집을 자격 있나
“실제로 현장 영상을 보면, 우산을 든 직원은 당초 강 차관의 옆에 쪼그려 앉아 우산을 들고 있었습니다. 브리핑 시작 직전 ‘촬영에 방해가 된다’는 현장 기자들의 요청이 있어, 이 직원이 강 차관 뒤로 최대한 몸을 숨겼다는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강 차관은 결국 공식 사과문까지 냈습니다. ‘저희 직원이 몸을 사리지 않고 진력을 다하는 숨은 노력을 미쳐 살피지 못했다’, ‘한 사람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도록 거듭나겠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27일 MBC <뉴스데스크>, <무릎 꿇고 우산 씌워준 ‘황제 의전’?…법무차관 사과> 중)
▲ <이미지 출처=MBC 화면 캡처>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보인다. 다른 현장 기자의 증언이나 현장 사진을 보면, “브리핑 시작 직전 ‘촬영에 방해가 된다’는 현장 기자들의 요청이 있어”서 법무부 직원이 뒤로 숨었다는 사실은 어폐가 있어 보인다. 발표 중인 강 차관 옆에서 우산을 받쳐 든 직원의 모습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JTBC는 이를 달리 봤다. 페이퍼를 읽어 내려가던 강 차관이 직접 우산을 쓰지 않은 것이나 질의응답 때까지 직원들이 우산을 받쳐 준 건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때도 법무부 부대변인이 차관 옆에 서서 우산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카메라에 잡히고 안 잡히고를 떠나서 애초에 본인이 들었어야 할 우산을 다른 사람이 들었고,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과도한 의전 아닐까요?
논란이 커지자 강 차관은 직원의 숨은 노력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주위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거듭나겠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나저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무릎 꿇고 우산을 들었냐고 괜히 직원을 나무라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JTBC <뉴스룸>, <[백브리핑] 법무부 차관 뒤에는…‘무릎 꿇은’ 직원>
▲ <이미지 출처=JTBC 화면 캡처>
이렇게 현장 영상만 보고선 준엄하게 법무부를 꾸짖은 방송사와 달리 현장을 직접 취재한 기자의 시선은 완전히 달랐다. 28일 충북inNEWS는 <[기자수첩]법무부 차관의 ‘황제 의전’ 논란…직접 본 기자가 말한다>에서 “현장에서 이를 직접 본 기자로써 ‘뭔가 이상하고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진 자체가 민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황제 의전까지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유는 속사정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강 차관이 브리핑을 하는 동안은 꽤 많은 양의 비가 계속 쏟아졌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강 차관이 혼자 우산을 들고 브리핑을 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대여섯 장의 종이를 넘겨가며 브리핑을 해야 하는데 한손으로 우산을 들고 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우산을 씌워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브리핑이 시작될 즈음, 강 차관 옆으로 우산을 든 법무부 직원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옆에 있었는데 모 방송국 기자가 직원에게 자세를 더 낮추라고 요구했다. 직원은 곧바로 자세를 낮췄고 엉거주춤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뒤로 가라고 요구했다. 강 차관 뒤로 가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강 차관 엉덩이 근처에 얼굴을 대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 <이미지 출처=SBS 비디오머그 영상 캡처>
지난 4월 제주4.3 추념식 당시 상황을 설명한 건 그래서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산을 들고 페이퍼를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우산을 받쳐주는 건 필수다. 하지만 상술한 것처럼 우산을 테이블에 고정하는 경험에서 우러난 기지를 발휘할 이가 어제(26일) 현장에 있었을까. 그것도 공무원들 중에?
황제의전? 현장 지역 기자도 ‘이건 좀 잘못 됐다’
국민적 관심이 쏟아진 현장이었고, 취재진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만드려는 사진/카메라 기자들의 요구는 더 셌을 것이다. 사실 언론사 및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그림제일주의’를 위해 무리한 요구까지 남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충북inNEWS는 “아무리 생각해도 27일 강성국 차관의 ‘황제 의전’ 논란은 잘못됐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제공한 이들은 법무부가 아니라 기자들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문제는 이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다. 속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당연히 황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연출한 것이 법무부 차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 차관 뒤로 가라고 지시한 것은 차관이 아니라 다름 아닌 기자들이다. 직원은 자신의 몸과 손이 카메라에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을 점점 낮추며 이런 자세, 저런 자세를 취하다 결국 가장 편한 무릎을 꿇는 자세(사진)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속된 말로 법무부 ‘쉴드’ 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 부연설명을 좀 더 하자면 기자는 충북의 작은 인터넷 신문사 기자다. 강성국 차관의 성향과 성품은 물론 법무부 분위기가 어떤지도 잘 모른다. 법무부를 변호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수십 개 중앙언론사가 모여든 취재현장을 다녀본 경험도 별로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대다수 중앙언론사가 보도하는 내용이 ‘이건 좀 잘못됐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역시나 강 차관을 ‘쉴드’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차관은 과연 직원이 오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는 걸 인식이나 했을까. 발언 중간 잠시 끊고 직원에게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양해해줬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자기 연설에 취한 고위층 인사가 그런 아량과 재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 ‘황제 의전’이라면 적어도 상관의 지시가 있었거나 그 상관이 상황을 인식했어야 맞지 않겠나.
▲ 조선일보 8월 28일자 1면 <이미지 출처=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중앙일보가 27일 오후 3시 36분 송고한 <무릎 꿇고 받들어 '우산'…법무차관 브리핑, 민망한 이 장면> 기사 <이미지 출처=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 연합뉴스가 27일 오후 4시 35분 송고한 <“부모님 보면 마음 아플 듯”…강성국 법무차관 과잉의전 논란> 기사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홈페이지 캡처>
법무부 차관이 평소 ‘의전 중독자’인지 알 길은 없다. 한국 관료주의 특유의 의전문화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이날 현장에서 기자들의 요구를 아무런 불만 없이 수용, 결과적으로 직원을 무릎 꿇린 법무부 고위 직원들의 무의식이 바로 그런 경우다. 하지만 사진 한 장만 보고 ‘황제의전’이라며 준엄하게 꾸짖는 건, 특히 언론사나 방송사들이라면 누워서 침 뱉는 행위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에 부화뇌동한 정당들도 어이 없인 마찬가지고.
적어도 충북inNEWS 취재기자 정도의 상식을 발휘하는 언론인들이 많았다면 작금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처럼 1면에 관련 사진을 ‘박제’하는 일은 더더욱. 이를 두고 노종면 YTN 기조실장은 27일 페이스북에 이런 일침을 남겼다. “언론 황제의전”이란 지적이 콕 눈에 박힌다.
“꾸짖는 언론에 묻자. 그 젊은 공무원이 처음부터 뒤에서 무릎 꿇고 있었나? 옆에 있던 사람 뒤로 가라, 앉아라, 손 보이니 더 앉아라 한 건 누구인가? 법무부는 취재진이 그리 요구했다 하고, 현장 영상에도 그렇게 보이는 장면과 소리가 담겼던데 그거 취재진 아니고 법무부가 그리 한 건가? 이거 확인한 뒤 기사 쓴 거 맞나?
취재진 요구가 없었다면 더 욕먹어도 싸다. 헌데 취재진 요구였다면 이건 ‘법무차관 황제의전’이 아니라 ‘언론 황제의전’이다. 물론 취재진 요구 있었더라도 그런 상황 거부하지 않은 법무부 책임도 작지 않다. 다만 딱 그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