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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20. 2017

간첩이 된 애국자, 그가 물었다 "이게 옳은 겁니까?"

영화 <스노든>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영화 <스노든>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투옥된다거나 다른 안 좋은 결과가 나올지라도, 저나 다른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자유, 지적인 자유가 위협받고 축소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지만, 자기희생이 아니에요. 선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입니다."

거칠게 나누자면, 세계는 스노든의 출현 전과 후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내부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정보기관의 무분별한 도감청을 폭로한지 벌써 4년이 흘렀다. 2013년 당시 이 내부고발자의 실제 폭로 상황을 둘러싼 긴박함과 국제 정세, 고발의 이유 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시티즌포>(2015)에서 스노든은 폭로의 심리적 배경을 위와 같이 설명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로라 포이트라스는 스노든이 폭로할 당시 홍콩에서 그를 만났고, 그 이전부터 스노든의 '폭로 작전'에 연결돼 있던 인물이다. 스노든은 이 다큐에서 자기희생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스노든은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았던 조국으로부터 간첩 딱지가 붙여졌고, 국제적인 도망자 신세로 전락해야 했다. 

당시 전 세계 언론은 각자의 입장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스노든을 스캔들메이커에서부터 위대한 내부고발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로 그려냈고, 각국의 입장 역시 개별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스노든은 그 어디에도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정책의 변화가 있어야지만 국가(의 불법 행위)를 제지하고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단순한 반대는 의미가 없어요. 아주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죠. 어떤 뛰어난 개인이나 집단이 가능한 수단과 능력을 동원해도 힘들어요. 그리고 드론 공격의 강화를 예로 들 수 있듯,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의 약속을 배신하고 계속 이탈해 가는 걸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죠."

흥미로운 점은 스노든이 폭로를 결심한 시기가 바로 진보적인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세상에 또 없는 '애국자'임을 자처했던 '애국청년' 스노든이 내부고발을 결심한 계기는 무척이나 '영화적'일 수밖에 없다. <시티즌포>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다큐였다. 

반면, 할리우드의 유명한 '반골' 감독 올리버 스톤이 직접 각본까지 쓴 <스노든>(2월 9일 개봉)은 무엇이 한 애국자의 신념을 송두리째 바꿨는가에 대한 10여 년에 걸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순간을 재현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 그 현실에 짓눌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기록이 현 시기 한국사회에도 꽤나 큰 울림과 시사점을 던져 준다. 

'질문의 영화' <스노든>  
  

영화 <스노든>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9.11 테러가 시작이었다. 이 참상을 목격한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조셉 고든 레빗 분)은 자신의 애국심을 발휘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고자 한다. 특수부대 '그린베레'에 자원입대한 그는 격한 훈련과정을 견디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의병제대한다. 남다른 지능과 뛰어난 컴퓨터 관련 실력을 지녔던 스노든은 CIA의 IT 보안담당자를 NSA에 입성한다. 계속되는 갈등과 고뇌를 안고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합니까?"

정보기관은 끊임없이 묻는다(그리고 영화는 마치 관객에게 묻고 있다). 입사하고 이직을 할 때마다, 당신은 애국자냐고, 우리 편이냐고. 처음엔, 이 질문에 스노든도 거리낄 게 없었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며, 정보를 관장하며 테러를 막는 자신의 행위가 가치 있다고 확신했던 그였다. 공화당을 지지할 것 같은 소위 '보수주의자'에 가까웠다. 전방위적인 '빅브라더'로 기능하는 '프리즘 프로젝트'를 목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네바, 도쿄 등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와중에 스노든은 점점 피해망상과 편집증에 시달린다. 진보적인 이념을 가지도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스노든의 근무지로 함께 이주했던 애인 린지(쉐일리 우들린 분)와의 갈등도 커진다. 오바마 행정부 역시 이러한 도감청과 전 세계에 걸친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을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노든은 또 한 번 크게 충격을 받는다. 급기야 미 정보기관은 변모한 스노든의 언행을 주시하다 그를 직접 도감청하기에 이른다. 

가디언지 기자 글렌과 다큐멘터리스트 로라와 스노든이 만나는 2013년 6월 홍콩으로부터 출발하는 <스노든>은 20대 초반 군 복무 시절부터 그의 과거를 추적해 나간다. 무엇이 그를 쫓기게 만들었는지, 왜 그는 내부고발자가 되어야 했는지를 '역추적'하는 것이다.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는 행동에 단순한 이유란 있을 수 없다. <스노든>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지속적으로 그 행동의 이유가 무엇이었냐고 질문을 던진다.   

<스노든>이 말하는 '진실에 대하여'
  

영화 <스노든>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어떻게 정당화하든지, 진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이건 테러의 문제가 아니에요. 테러는 변명일 뿐이죠. 이건 경제와 사회 통제에 관한 문제예요. 그런데 실제 사람들이 엄호하고 있는 건 정부의 패권이죠."

다큐멘터리 감독이 "왜?"라고 묻자 스노든은 이렇게 말한다. 테러방지라는 미명은 패권주의의 다른 말일 뿐이다. 더군다나 포식자의 습성은 더 많고 더 큰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법이다. 민주당 정권도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었다. 발전하는 기술을 발판으로 삼은 미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범위와 강도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IT 전문가인 스노든이 보기에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행태에 회의감을 느낀 스노든 자신과 애인에게까지 통제와 감시의 손길이 뻗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스노든은 어렵사리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과감하고 빠르게 실행에 옮긴다. 그래서 그가 자료를 빼내고 다시 출근하지 않은 NSA 하와이 지부는 그의 마지막 근무지가 됐다. 

<JFK>와 <닉슨> 등을 통해 미국 역사에 있어 주요한 실존 인물을 여러 번 영화화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역시나 이 스노든을 영웅시할 생각이 없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를 집요하게 따져 물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물론 이 둘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스노든은 한 줌 권력을 가진 적도 없고, 오히려 광범위한 개인들의 정보를 손쉽게 습득할 수 있는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행태에 점차 반감을 갖게 되는 인물일 뿐이다. 

사실 스노든의 내부고발 과정과 미 정보기관의 '빅브라더'와 같은 행태 중 어느 쪽이 더 영화 갔느냐고도 물을 수 있다. 스톤 감독은 아마도 후자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과거 근무지를 따라 가는 영화의 구조가 스노든의 심리 변화를 자연스레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 그리하여, 10여년에 걸친 스노든의 궤적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한 젊은 '보수주의자'를 전 세계가 인정한 '내부고발자'로 변신시켰는가에 대한 꽤나 정치적이고, 인권적인 보고서로 탈바꿈 된다. 개인의 심리 변화까지를 내밀하게 품고 있는.   

한편으로 <스노든>은 구조상, 그리고 내용상 자연스레 긴박감을 품고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장기다. 홍콩에서 쫓기듯 인터뷰하는 스노든과 언론인들의 상황 자체가 그러하며, 스노든이 다루는 기밀과 그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정보기관의 특성이 그러하다.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영혼을 바친' 스노든이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게 해 주는 것은 애인인 린지와 함께하는 '사람 냄새'나는 시간들뿐이다. 

<스노든>은 이러한 배경과 스노든의 심리 변화, 그러니까 구조와 인간 모두를 품으려는 야심찬 기획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질문하는. 스노든은 상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래도 되겠느냐"고 질문을 하고, 다큐멘터리스트와 기자는 '내부고발자'인 스노든에게 "왜?"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에게 "너희는?"이라고 묻는다. <스노든>은 분명 '질문의 영화'다. 영화 말미, 청중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스노든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국민은 정부에게 질문(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포기해선 안 됩니다. 그 원칙을 기반을 미국이란 나라가 세워진 겁니다. 우리가 국가의 안보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그 원칙을 지켜내야 합니다."

스노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영화 <스노든>의 포스터.ⓒ 리틀빅픽쳐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전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이 나서게 될 겁니다. 내부고발자와 언론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요. 권력자들이 모든 것을 기밀로 만들고 그 안에 숨어 버린다면, 우리는 그들을 밖으로 호출해 낼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겁을 주면서 우리의 기본 인권을 희생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포기하지도 않고, 또 침묵하지 않을 겁니다." 

<스노든>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영화 말미에 준비돼 있다. 청중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스노든은 어느새 배우 조셉 고든 레빗에서 실제 에드워드 스노든으로 바뀌어져 있다. 그리고 그는 환하게 웃는다. 실화 영화임을 숨길수도 없는 <스노든>은 이 전 세계적인 폭로 이후 오바마 정부의 정책 변화와 함께 스노든의 달라진 현재 삶을 언급하며 끝을 맺는다. 실제 스노든은 당분간 조국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애인과 함께 "더 이상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다행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리고, 물론 우리에게도 내부고발자들이 존재한다. 또한 '테러방지법'이 한차례 한국사회에 폭탄을 안겨주기도 했다. 지금은 잠자코 있지만, 해외도 아닌 우리 국민들을 향한 국정원의 활약(?)은 예나 지금이나 정보인권의 가장 큰 화두다. 그 테러방지법을 밀어 붙인 이 정권의 맨얼굴을 폭로한 몇몇 내부고발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하는 중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에게 질문을, 요구를 할 수 있겠는가. <스노든>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며칠 전, 에드워드 스노든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러한 글을 적었다. 실제 스노든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다시, 당신은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매 순간,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 스스로에 물어보십시오. "이게 옳습니까?". 영웅은 없습니다. 오직 영웅적인 선택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In every moment, look around and ask yourself: "Is this right?" There are no heroes, only heroic choices. Act according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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