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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22. 2017

"연대감"이 진부하다는, 켄 로치 감독의 작품세계

켄 로치 감독이 한국 관객들에게 전하는 편지.ⓒ 영화사 진진


"친구들에게.

한 편의 영화로 우리가 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건 언제나 놀랍습니다. 영국 정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요. 우리는 많은 나라에서 같은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씩은 다를지라도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들이지요.

아마 당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들의 영화를 봐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에게 희망과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켄 로치(감독), 폴 래버티(작가), 레베카 오브라이언(프로듀서)으로부터" 전해진 편지는 문자 그대로 영국으로부터 전해진 "희망과 연대의 마음"이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폴 래버티 작가, 켄 로치 감독, 레베카 오브라이언 프로듀서.ⓒ 영화사 진진


작년 연말, 켄 로치 감독과 동료들이 한국 관객들에게 보낸 편지는 "친구들에게"(Dear, friends)로 시작된다. 아마도, 팔순을 맞은 이 노장의 영화들 역시 전 세계 노동계급 '친구들'에게 보내는 지속적인 편지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켄 로치 만큼 집요하리만치 꾸준하게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의 희로애락을 마치 이야기를 들어주듯 한평생 영화로 만든 이가 어디 흔하던가. 심지어 그는 신자유주의 반대의 선봉에 선 감독답게, 영국과 유럽을 넘어 이주노동자의 현실까지 영화에 녹여내고자 노력했던 감독이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시민 (불복종) 선언'에, 그리고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결말에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는 한국의 관객들 역시 켄 로치 감독에게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전 세계 '노동자 친구'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병환으로 인한 실직의 와중에 관료주의에 찌든 국가 복지제도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결국 스러져간 다니엘 블레이크는,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 앞에서 보수 정권이 노동 계급의 삶을, 국가 복지제도를 점점 더 벼랑 끝에 내몰고 있음을 확실히 자각 중인 한국 관객들에게 "많은 나라에서 같은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이자 공감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인물로 다가온다.

그렇게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시민 선언'에 감동한 관객들에게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몇 편을 더 추천하고자 한다. 신기한 것은 그의 6, 7년 전이나 수십 년 전 작품을 꺼내 봐도, 노동 계급의, 빈곤층의 처지는 예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문제가 있는 현실이야말로 켄 로치 감독이 1960년대부터 영화로서 투쟁을 벌여온 변치 않는 이유였으리라. 여전히 유효한 그 투쟁의 기록을 좀 더 들여다보자.

켄 로치의 주인공들, 노동자와 실직자들 
  

영화 <레이닝 스톤>의 포스터.ⓒ 백두대간


여기 실직한 남성 가장이 있다. 먹고 살기도 힘겨워 죽겠는데, 아내에게 눈치는 보이는데, 하필 애지중지 키운 딸의 가톨릭 성찬식이 코앞이다. 돈은 없고, 드레스는 꼭 입히고 싶고. 그런데 또 드레스는 왜 이리 비싼지. 밥의 애가 타들어 간다. 그리하여 이 밥이 '절친' 토미와 닥치는 대로 하는 일의 양상이 가관이다.  

양이 그리 빨리 달리는 동물인지 미처 몰랐다. 방목 중인 양을 훔치고자 이리저리 뛰고 넘어지는 밥과 토미의 액션(?)은 코미디가 따로 없다. 정화조 청소도 하고, 나이트클럽 경비원에 지원도 해 보지만,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동네 친구들 몇몇과 보수당 건물 앞 잔디를 훔쳐다 팔아도 보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사채업자들의 폭력뿐이다. 밥에게 해피엔딩이란 너무나 먼 얘기일까. 

사실 일용직과 실직자야말로 켄 로치 영화들의 단골 주인공들이다.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직 가장의 이야기인 <레이닝 스톤>(1993)에 앞서 만든 <하층민들> 역시 일용직 노동자 커플의 일상을 담담히 그린다. 그가 그리는 청년들은 대부분 백수(<엔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키스>, 2013)거나 보통의 양부모 가정과는 거리가 멀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10대(<달콤한 열여섯>, 2002)이기 일쑤다. 심지어 멕시코에서 넘어온 일용직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회사의 실직 처분에 맞서 파업을 벌인다(<빵과 장미>, 2000). 

영화적인 치장이나 미학에 매달리지 않는 우직한 리얼리즘이야말로 켄 로치 영화의 실천적인 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주변 캐릭터의 입을 빌린 약간의 설교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현실 범주 안에 들어있는 '비전'에 가깝다. 

이들 실직자들은 크나 큰 운명이나 휘둘리기는커녕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시스템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마모되는 인간형들이다. 켄 로치는 때로는 이들에게 얼마간의 희망도 주지만, 대체로 냉정을 잃지 않는다. 어설픈 영화적인 봉합이나 해피엔딩 따위는 현실엔 없다는 듯이, 노동 계급인 주인공들이 실제로 맞닥뜨릴 현실 위에서 열린 결말을 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듯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속 '시민 선언'의 벅참 이후에 오는 급작스런 맺음이 비감을 주는 것은 그래서다. 

2016년 현재, 켄 로치의 세계관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더욱 더 비관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을, 한국은 비선실세 최순실을 탄생시키지 않았나. 아 참, 그래서 밥은 딸의 성찬식을 무사히 치렀느냐고? 23년 전 작품인 <레이닝 스톤>을 꼭 찾아보시길. 답은 언제나 영화 안에 있는 법이니까. 또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본 관객들이라면 그럴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기도 하니까. 

켄 로치, 브렉시트를 예견하고 준비하다   
  

영화 <자유로운 세계>의 포스터.ⓒ 영화사 진진


"<자유로운 세계>의 시대는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다. 나는 그 세상의 일부이고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내 세상의 일부다. 나는 가장 평범한 설정을 통해 현대 영국 사회를 비롯한 세계 노동 시장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2008년작인 <자유로운 세계>는 우리의 시각을 좀 더 확장시켜주는 작품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영국인, 그러니까 오롯이 내부인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의 주인공은 이주노동자 직업소개소 계약직에서 일약 회사의 사장으로 신분상승하는 여성 앤지다. 

우연찮은 기회에 회사를 차린 앤지는 그 전까지 저임금에 시달리는 '싱글맘'이었다. 마을 술집과 공터 등에서 이주노동자를 구하던 앤지는 합법보다 불법이 가깝고 또 돈이 된다는 사실을 체득한 이후부터 불법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며 이윤을 취하는 방식에 매달리게 된다. 돈은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불법은 더 큰 불법을 불러 오기 마련이다. 그 자본주의의 법칙에 홀린 듯, 앤지도 그 불법 사업에 점점 맛을 들인다. 물론, 그 불법이란 덫이 파놓은 함정의 역습은 앤지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켄 로치는 일찌감치 작금의 브렉시트나 난민의 시대를 경고해 왔다. 그건 민족주의가 알게 모르게 흥하는 유럽의 이면을 파악한 노장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에서 인간의 얼굴을 지우고 이윤만으로 환원하는 신자유주의에서 반기를 들어왔던 그의 좌파적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영국인 중산층 여성과 중동계 상류층 남성과의 사랑을 그린 <다정한 입맞춤>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나타난 켄 로치식 멜로드라마였고, <빵과 장미>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응원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자유로운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가치와 대비되는 지극히 역설적인 제목이지만, 그 세계 안에서 노동 계급 끼리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부한 단어는 '연대감'입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는 성공했을까.ⓒ 영화사진진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이 노장은 그럼에도 각자의 현실 속에서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2008년 9월, 영화주간지 <필름2.0>과 나눈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무슨 문제를 다룰까'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만약에 그런 식으로 계속 영화를 만든다면 선전(Propaganda)일 뿐이다. 꼬여 있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켄 로치 작품세계의 한 축을 역사드라마가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전 세계적인 계급적인 연대와 한계(<랜드 앤 프리덤>, 1994), 영국 노동당의 출범과 비전, 그리고 현재(를 그린 다큐멘터리 <1945년의 시대정신>), 아일랜드 혁명 시기의 민족주의와 계급주의의 갈등(<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06), 대공황 시기 한 사회주의자가 펼쳐낸 조직과 연대의 기록(<지미스홀>, 2014)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켄 로치식 배움의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시 연대. 아마도 뼛속같이 사회주의자일 이 켄 로치 감독에게 연대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리라.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벼랑까지 몰린 다니엘과 케이티가 끝끝내 놓을 수 없던 손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책임감과 연대감을 동일선상에서 사고하고 '역설'하는 그의 과거 인터뷰는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다. 50여 년간 일관된 작품 세계를 추구한 이 1936년생의 노장 감독은 우리 시대의 '어른'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제 생각에 알고 있다는 것은, '책임'입니다. 만약 당신이 (세상의 어떤 사안을)알지 못 한다면, 당신은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하게 진부한 단어는 '연대감'입니다. 진심으로." (1998년 <가디언>지와 인터뷰 중에서)

  

켄 로치 감독. 이 노장이야말로 시대의 '어른'으로 불릴 만하다.ⓒ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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