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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23. 2017

'설리'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  <아수라> <다음 침공은 어디?>와 한국사회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사람은 나아지거나 부패하거나 둘 중 하나다."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아버지가 해줬다는 말이다. 지난 2013년 국내 출간된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가 직접 털어놓는 영화와 인생 이야기를 모아 놓은 인터뷰집이다. 여기서 이 노장은 예전에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전하며, 나이 듦과 연기의 숙성에 대해 "나이가 들수록 이전엔 절대 맡을 수 없었던 인물 연기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맞다. 멈춰 있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나아지거나 부패하거나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사실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할 사람들은 범인들보다는 한줌의 권력이라도 더 가진 이들일 것이다. 그렇다. 부패한 이들이 나아지지는 못할망정 부패했을 때 미치는 '나쁜 영향'들을, 우리는 전 세계 그 누구들보다 지금 혹독하게 경험하는 중이다.

그의 최근작인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다시 봤다. 지난 2009년 1월 15일, US항공 1549편 여객기가 새떼와 충돌한 뒤 양쪽 엔진에 손상을 입어 뉴욕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하게 되는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을 다시 대하며, 개봉 때나 지금이나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지난 9월 개봉 당시엔 자연스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지만, 국정을 농단한 부패한 악인들의 면면이 드러난 지금 이 작품을 다시 보는 감정은 훨씬 더 착잡함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 영화가 담담하고도 둔중하게 가리키는 개인의 책무와 사회 시스템의 책임이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방치되고 하찮게 여겨져 왔는가. 그걸 새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져 왔다.       

그리고서는 단숨에 두 편의 영화가 더 머리를 스쳤다. 다가오는 2017년을 위해, 새로운 한국사회를 위해 개인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또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릴 만한 작품들의 리스트가 말이다. 이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과 함께 한국영화 한 편과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다시 소개할까 한다. 굳이 결산이란 표현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더 나아지는 2017년을 위해 꼭 보고 넘어가야 할 영화라고 해 두자.  

한국사회가 꼭 가져야 할 가치,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세월호 참사'에 패러디한 패러디 포스터.ⓒ 인터넷 갈무리


"난 내 일을 했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다."

추락 위기에서 탑승객 155명을 살린 여객기 조종사 체슬리 설리 설린버거(톰 행크스 분)는 부기장인 제프(아론 에크하트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국가운수안전위원회의 조사를 무사히, 보기 좋게 마치고 난 뒤였다.

그에 앞서, 미 국가운수안전위원회는 '국민적 영웅'이 된 이 기장에게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동원해 철저한 검증에 나선다. 사고 당시 잘못된 판단은 없었는지, 승객 전원의 목숨을 걸고 무모한 선택을 한 건 아닌지에 대해 위원회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검증하려고 한다. 그것이 이 '영웅'을 몰아붙이고 결과적으로 심리적 위축감을 더하게 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여기엔 '좋은 게 좋은 거'란 무사안일주의식 사고방식도, 인맥이나 위치에 좌우되는 일도 없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장소에 있었다"는 대사는 어쩔 수 없이 뼈아팠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아이들을 수장시킨 한국사회의 일원이 듣기에는 먼 나라 이야기이자 어떤 사치이자 허영으로까지 느껴질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게다가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삼았다. 이 영화를 뛰어넘는 이야기가, 실화라니.

하긴. 지금 우리도 그 영화를 뛰어넘는 경악할 만한 현실과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이 '보수주의자'이자 공화당 지지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이 한 사회의 견고한 시스템을 지탱해준다는 듯이, 그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의 할 일이라는 듯이.

그래서 더욱 놀랄 수밖에 없던 장면은 후반부에 기다리고 있었다. 설리가 강 위에 착수시킨 비행기와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경찰과 구조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걸음에 달려오는 마지막 장면은 그것이 영화적인 허세라고 하더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목숨을 살린 이후에도 끊임없이 스스로 잘못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회의하는 설리.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체계적인 안전 시스템이 구축된 미국사회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다 못해 진정한 직업윤리의 화신으로 그려진 설리가 충분히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함께 사고를 겪고 무사히 살아남은 실존 인물들이 반갑게 인사할 때 전해지는 감동은 단순히 실화라서 더해지는 감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지금도, 앞으로도 잊지 않고 안고 살아야 할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 짓는 장면에 훨씬 더 익숙하지 않은가.

<아수라>의 지옥도를 체험하라 
  

영화 <아수라>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아수라>는 확실히 저평가된 작품이다. 이른바 '알탕 영화'라는 오명은 일정 정도 남자들만이 바글바글한 느와르 영화의 일견을 적확하게 잡아낸 지적일 수 있다. 출구 없는 지옥도에서 펼쳐지는 폭력의 연쇄와 감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그 폭력을 밀어붙이는 연출은 분명 일반적인 한국 장르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예컨대, 동종 장르로 분류됐던 <신세계>의 장르적 쾌감이나 <내부자들>의 현실반영이나 달달한 해피엔딩, 최근 폭발적으로 흥행 중인 <마스터>의 상업적인 감각과 윤리적 '나이스'함을 <아수라>는 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20세기 말의 청춘들의 교과서로 자리잡았던 <비트>의 김성수 감독과 배우 정우성은 20여 년 후, <비트>의 고등학생 민이 그대로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아 아저씨가 돼서 저지를 법한 악행의 연쇄를 그리는 데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안남시'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와 그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살인까지 불사하는 한도경(정우성 분), 그리고 그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 정치인들의 부패상. 그리하여 "다 죽어 버렸으면"과 같은 불안증과 원인 모를 열패감, 죄책감에 시달리는 도경은 끝내 자신을 그 지옥도로 밀어붙인다.

그 지옥도를 미학적으로나 이야기 구조상으로나 끝끝내 밀어붙이는 <아수라>는 그래서 일종의 '체험의 영화'라 할 만하다. <아수라>는 이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옥과 같은 '헬조선' 한국사회를 대리 체험케 하는 은유이자,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그리고 부역자들만이 우글거리는 (나쁜)남자, 남성성으로 가득 찬 '개새끼'들의 사회를 바닥까지 체험케 한다.  

이 정도라면, 오히려 한국 사회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나쁜 남성성에 대한 처절한 자기비판으로 읽을 만하지 않은가. 촛불집회에 '안남시' 깃발이 들어서고, 배우 정우성을 상영회에 불러내,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외치게 만든 <아수라> 마니아들이 양산됐던 이유는 분명 존재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로 바닥을 쳐야, 안남시와는 다른 새로운 한국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된 마이클 무어의 '배움'이 한국사회에 주는 교훈
  

<다음 침공은 어디?>의 포스터ⓒ 판씨네마(주)


그리고 좀 더 유연해지고 어른이 된 마이클 무어. 역시 지난 가을 개봉한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는 더 이상 마이클 무어가 악동이 아님을 선언하는 듯한 영화다. 데뷔작 <로저와 나>에서 제네럴모터스의 사장을 찾아가 카메라를 들이대던, <화씨 911>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던 그 마이클 무어는 더 이상 없다는 얘기다.

<다음 침공은 어디?>가 2017년의 한국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명징하다. 미국 '촌놈' 마이클 무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유럽의 9개 국가다. 미국식 자본주의 전반을 비판한 <전작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나 오바마의 '헬스케어'에 발맞춰 미국식 의료체계의 위험성을 고발했던 <식코>에서 캐나다나 일부 유럽 국가를 돌아봤던 것에서 한층 시야를 넓힌 것이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좀 덜 신랄하고 좀 더 유연하게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할 수 없는 사회‧복지‧교육 정책들과 유럽식 가치관들을 찾아 헤맨다. 이를 마이클 무어는 '침공'이라 부르는데, 이 유럽 9개 국가의 정책들은 우리 한국에도 없는 것 투성이다. 아니, 우리에게 꼭,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정책들이다. 짧고 굵게 나열해 보면 이러하다.

한 해 8주 유급휴가와 13번 월급이 보장된 이탈리아, 무상급식으로 미국의 프렌치 프라이대신 미슐랭 3스타급 학교급식이 나오는 프랑스, 교육수준 세계 1위의 위엄을 자랑하는, 학생과 교사 모두 '행복'을 논하는 동시에 교육수준까지 높은 핀란드,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한 슬로베니아, 재소자 인권을 향상시켜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도우면서 최저 재범률을 기록한 노르웨이, 전 세계에서 지탄받았던 나치 관련 과거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도록 교육하는 독일, 그리고 전 세계 1등 여성 인권신장 국가로서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룬 아이슬란드까지.

때로는 발랄하고, 때로는 진중하게 이들 국가의 장점들을 취하고 경청하는 마이클 무어의 이 유럽 순례는 사회개혁이 절실히 요구되고 또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는 2017년의 한국사회가 경청해야 할 만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악동' 마이클 무어가 유럽 전역을 돌아보며 미국 사회와 그에 속한 스스로를 자성하는 동시에 그 여정을 통한 배움을 다큐를 통해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에서 1930년생의 노장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세월호 7시간'을 감추고 있는 대통령을 탄핵시켰고, 이제는 적폐 청산이 시대의 화두가 된 우리야말로 경청해야 할 경험담이라 할 만 하다. 어쩌면 '악동' 마이클 무어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실행했는지도 모르겠다.

"배움을 멈추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와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사람들이 '감독님이 바뀌신 겁니까'라고 물어보는데요, 저는 '그랬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합니다. 10, 20, 30, 40년 내내 바뀌는 게 정상이에요. 그렇게 넓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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