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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Aug 15. 2023

'지나치게 잘한' 이병헌, 크리스토퍼 놀란 막아낼까

<콘크리트 유토피아> 약진 속 15일 개봉하는 세 편의 영화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렇게까지 잘 할 필요는 없지 않았니? 지나치게 잘한 것 아냐?"


박찬욱 감독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난 뒤 배우 이병헌에게 건넸다는 첫 마디는 이랬다. 영화 개봉에 앞서 엄태화 감독과 특별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박 감독은 그러면서 "이병헌 연기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칸에서 이 영화를 선정하지 않은 건 실수지만, 그 정서를 이해 못 할테니 이해는 간다"는 상찬을 남겼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흥행 열기가 제대로 오른 지난 주말, 이병헌의 연기에 대한 상찬들이 온라인을 달궜다. 영화인들 역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갖가지 표현으로 동료 배우의 연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그 이병헌이라지만 관객들이 배우의 이미지가 아닌 연기 자체를 극찬하는 한국영화는 실로 오랜만이다. OTT가 아닌 극장에 갈 요인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관객들에게 배우의 연기가 선택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이병헌이 증명했다고 할까.


그렇게 배우들의 연기가 호평을 얻고 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 첫 주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누적 관객 수 154만(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을 돌파했다. 토요일이던 지난 12일 45만, 일요일 13일에 42만을 동원했다. 지난 주말을 통과하며 본격적인 흥행 궤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1일 개봉 17일째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긴 <밀수>의 흥행 궤적과 비교하면 셈이 쉽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도 개봉 첫주 주말이던 7월 29일과 30일 나란히 47만 관객을 동원하며 정점을 찍었다. <밀수>는 13일까지 누적 관객 435만 명을 동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여름 텐트폴 영화로 내세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애초 암울하고 진지한 아포칼립스 장르로 인해 흥행 전망이 불투명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 아파트 공화국에 대한 진중한 물음이 담긴 인간 군상극, 나무랄 것 없는 비주얼과 '봉준호, 박찬욱의 상업영화를 연상시킨다'는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호평이 어우러지며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문제는 이른바 '출혈 경쟁'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여름 극장가의 배급 경쟁. 징검다리 연휴인 오는 15일 광복절을 맞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와 정우성 감독의 데뷔작 <보호자>, 유해진과 김희선 주연의 중년 로맨스 코미디 <달짝지근해: 7510>(아래 <달짝지근해>)이 나란히 개봉한다.


아무리 이병헌이라도 세 편에 달하는 물량 공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일 터. 14일(오후 2시 기준) 영진위 실시간 예매율을 보면, <오펜하이머>가 56.2%로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이다. 이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15.6%로 2위, <달짝지근해>가 7.0%, <보호자> 4.8%다.


관건은 팬 층이 두터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사전 예매만 40만장에 달하는 압도적인 관심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느냐 일 터. 여기에 흥행 궤도에 오른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얼마나 방어할 수 있을지, 유해진의 코미디와 배우 정우성의 데뷔작이 틈새 공략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8월 흥행 경쟁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언론에 먼저 선보인 15일 개봉작 세 편의 흥행 전망은 어떨까.


크리스토퍼 놀란, <덩케르크> 뛰어넘을까

   

▲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 ⓒ 유니버설 픽쳐스


놀란 감독의 전작 <테넷>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그에 앞서 전쟁영화 <덩케르크>도 2017년 7월 개봉, 300만에 육박하는 279만 관객을 모았다. 2014년 11월 <인터스텔라>로 '천만'을 달성한 만큼 '믿고 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값을 증명한 수치라 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의 경우, 미국 및 해외 관객들이 먼저 화제성과 작품성을 인증한 경우다. 지난 7월 21일 북미 지역 개봉 이후 전 세계에서 순차 개봉 중인 <오펜하이머>는 북미 수익 2억 6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여름 개봉 영화 중 1위를 달리는 <바비>엔 못 미치지만 글로벌 흥행 수익도 6억 4900만 달러에 달한다. 배급사에 따르면,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 49개국에서 크리스토퍼 감독의 전작들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다.


핵심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맞는 첫 여름 시장에서 놀란 감독의 이러한 이름값이 얼마나 장기간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다. 사전 예매 40만 장은 지난 5월 63만에 달했던 <범죄도시3>의 2/3 수준이다. 개봉일 1위 달성은 이미 예약된 상태. 과연 광복절 휴일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두 한국영화들을 우리 관객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선택할지가 관심을 모은다.


앞서 기자 시사에서 뚜껑을 연 <오펜하이머>는 영화 팬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놀란 감독의 영화 세계를 한 차원 높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비슈퍼히어로 영화인 데다 엔터테인먼트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한 시대 배경에 오펜하이머라는 '핵폭탄'을 창시한 과학자의 진지하고 철학적인 전기 영화다.


3시간이란 만만치 않은 상영시간 동안 과학과 정치의 관계, 1940년대 미국사회의 전체주의적 면모, 프로메테우스에 핵폭탄의 창시자를 비교하게 만든 과학자의 고뇌까지 가히 작가주의 영화라 부를 정도의 깊이와 넓이를 자랑한다. <인터스텔라> 이후 10여 년 만에 하고 싶은 인물과 주제,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연출력이 만개했다는 평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스릴러와 느와르, 슈퍼히어로와 SF, 전쟁영화까지 워낙 종합선물세트와 같이 어떤 장르에서도 남다른 완성도를 자랑했던 놀란 감독. <오펜하이머>가 <덩케르크>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해진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지우고 오로지 무거운 주제에 천착하는 <오펜하이머>의 대중적인 확장성이 어디까지일지 말이다.


유해진이 '장르'인 <달짝지근해>, 정우성 데뷔작 <보호자>

   

▲ 영화 <달짝지근해:7510>의 한 장면. ⓒ 무비락


지난해 8월 24일 개봉한 <육사오(6/45)>는 장기 흥행 끝에 198만 관객을 동원해 영화계에 놀라움을 안겨줬다. 신선한 소재에 웰메이드한 코미디에 대한 관객들의 수요가 여전함을 증명해 보이는 기분 좋은 흥행 성공이었다.


역시나 여름 시장의 마지막 주자 중 하나이자 유해진표 코미디인 <달짝지근해>의 흥행 결과가 관심을 모으는 것도 그래서다. 특히 흥행 배우 유해진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유해진은 2000년대 <공공의 적> 시리즈로 얼굴 도장을 찍은 뒤 <이장과 군수> 등 코미디 영화의 주연으로 올라섰고, 이후 2015년 <럭키>로 697만 관객을 동원하며 홈런을 쳤다.


그런 유해진이 중년 코미디에, 그것도 20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김희선과 함께 중년 로맨스를 연기한다. 신생 배급사 작품이니 만큼 상대적으로 홍보나 배급은 열세인 반면 시사회로 먼저 접한 관객들의 실 관람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다. 예매율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어 3위다. 유해진이 지난해 <육사오(6/45)>의 깜짝 흥행을 재현할지, 본격 로맨스 코미디에 관객들이 몰릴지 주목된다.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이 각본에 이름을 올리고, <완득이> <증인>의 이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달짝지근해>는 소위 '너드'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제약회사 연구원 주인공이 싱글맘에다 적극적인 여성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알아가게 되는 쉽고 단순한 이야기다. 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자기만의 숨을 불어 넣은 유해진의 연기 역시 부담 없이 다가온다. 여름 극장가의 유일한 코미디라는 희소성이 빛을 발할지 지켜볼 일이다.

  

▲ 영화 <보호자> 스틸컷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단짝인 배우 이정재가 <헌트>를 통해 성공적인 데뷔전을 마쳤다. 딱 1년 만에 정우성의 차례가 됐다. 정우성은 애당초 배우로 참여했다가 연출자가 물러나며 직접 감독까지 도맡게 됐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2월 촬영에 돌입했다.


얘기는 이렇다. 10년을 복역 후 갓 출소한 조폭이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선언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몰랐던 딸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조직과 킬러가 그를 편히 놔두지 않는다. 장르나 흥행 포인트가 명확하다기보다 정우성의 연출과 의도를 읽는 재미를 즐기는 편을 추천할 만한 영화다. 외양적인 소재 자체가 그렇다.

 

<보호자>에서 정우성은 <비트>의 민이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수혁을 직접 연기했다. 감독 정우성은 이 수혁이란 캐릭터보다 그 주변 인물들의 반작용을 즐기라고 권유한다. 어색하고 장난기 어린 킬러 우진(김남길), 제 성질머리를 못 참는 조직 보스의 오른팔 성준(김준한) 등이 수혁을 평범하지 못하게 만드는 인물들이다.


<보호자>는 이들의 관계, 인물의 정서, 사건의 극적 긴장이나 몰입 모두에 관심이 별로 없다. 벌어지는 사건들 자체도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우성 감독은 수혁이란 캐릭터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반응과 각 장면들의 다소 고전적인 영화적 재현을 주목해 달라고 요구하는 듯 보인다. 단짝 이정재 감독의 <헌트>와는 정반대 길을 간 <보호자>는 <더 문>과 같은 280억 짜리 SF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의 신작 대결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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