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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n 04. 2017

<알쓸신잡>, '나영석 월드'의 진화

        ▲<알쓸신잡>의 홍보 포스터. 산뜻하게 출발했다.ⓒ tvN


유희열이 유시민에게 물었다. 왜 출연을 결정했느냐고. 먼저 유시민은 출연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나영석 PD와 스태프들이 찾아 왔다고 답했다. 결정적으로, "이런 거 결정할 때 물어본다"며 아내의 의견을 넌지시 물었다고 했다. 돌아온 대답은 "나영석 피디하는 건 다 괜찮다던데"였다고 한다. 나름 주변인들의 모니터링을 거친 결과였다.

나영석 피디가 하는 예능이 그렇다. 최근 <윤식당>도 홈런을 쳤고, <삼시세끼> 시리즈와 <꽃보다> 시리즈는 tvN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물며 <신서유기> 역시 시즌4를 앞두고 있다. 이쯤 되면, 회사를 먹여 살리는 PD를 넘어 웬만한 예능 시청자들까지 그의 얼굴을 아는 '스타 PD'의 선두주자라 할 만하다. 그가 지난 2일 새로운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아래 <알쓸신잡>)을 선보였다.

결론적으로, '홈런'은 몰라도 최소한 '3루타'는 칠 수 있는 조짐이 엿보인다. '여행'에 '먹방', 그리고 예사롭지 않은 '토크'까지 겸비했다. 예의 그 아기자기하고 잘 짜인 편집과 조화는 기본이다.

<썰전>을 넘어 예능까지 접수한 유시민 작가를 필두로,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 소설가 김영하에 진행자 유희열까지 출연진도 화려하고 이색적이다. 무엇보다, 너른 대중성을 자랑했던 '나영석 표' 예능에 길든 혹은 물린 시청자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형식을 자랑한다.

전국 5.4%(닐슨코리아 기준)로 출발한 시청률도 준수하다. 1회 '통영' 편을 보자마자 2회 '순천' 편이 기다려질 정도다. 한 마디로, <알쓸신잡>은 나영석 PD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과 아직 하지 않았던, 그러나 지금 예능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영역을 잘 버무려 놓은 느낌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통영으로 간 네 명의 박사들  
  

        tvN <알쓸신잡>의 유희열, 유시민, 김영하. 이들의 입담은 유쾌하면서도 깊다.ⓒ tvN


'문학박사' 김영하, '수다박사' 유희열, '잡학박사' 유시민, '미식박사' 황교익, '과학박사' 정재승. 제작진은 <알쓸신잡>의 출연진을 이렇게 명명했다. 쉽게, 여행하며 식도락을 즐기고 수다를 떠는 '인문학' 어벤저스 정도 되겠다. 여기에 유희열은 "저는 잘 모르지만"이라며 질문을 던지는 대중을 대표한다고 보면 맞다.

이들이 국내로 여행을 떠난다. 첫 여행지는 경상남도 통영이다. '입담'하면 모자를 이들이 모여서인지, 통영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도 알아두면 쓸모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수다 혹은 문답이 이어진다. 점심 메뉴로는 장어탕이 좋은지 복국이 좋은지, 장어의 종류는 어떻게 되는지, 거기에 '매판자본'은 무엇인지와 같은 잡지식들이 깨알같이 나열된다. 중간중간 취향이나 객쩍은 농담들이 끼어들지만, 중심만은 잃지 않는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통영', '통영'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고, 한려수도가 바라보이는 수려한 풍광의 도시이자 백석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을 낳았던 바로 그 '한국의 베네치아' 통영 말이다. 일찍이 여행지로 유명한 그 통영이 이들 네 명, 아니 다섯 명의 수다와 잡학, 그리고 제작진이 잘 찍고 잘 편집한 화면으로 인해 더욱 풍성하게 재탄생하는 것이다.

출연진의 포지션도 더할 나위 없다. 방대한 잡학을 자랑하는 '나이로도 첫째' 유시민 작가가 선두를 치고 나가면 소설가 김영하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거든다. 유희열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런데 과학적으로는?"이란 궁금증에 정재승 교수가 뜬금없어 보이지만 과학과 연관된 답을 내놓는다. "장어가 정력에 좋으냐"는 질문에 "정력은 그렇게 함부로 올라가지 않습니다"라는 명답을 내놓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각자 통영을 둘러보고, 저녁 때에 모여 담소를 나눈다. 그 담소들이 한껏 '고급진' 술자리 인문학 토크로 거듭난다. 자신들이 둘러 본 한려수도와 박경리 생가, 백석 시비 등 통영의 구석구석이 개인의 경험과 지식, 취향으로 버무려져 유쾌하고 쓸 데 있는 지식의 경연장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나영석 월드'의 또 한 번의 진화  
  

        tvN <알쓸신잡>의 정재승 교수. 그의 독특한 매력이 앞으로 어떻게 발산될지 기대된다.ⓒ tvN


"공부 의욕이 팍팍 든다"라거나 "유시민 출연방송은 내가 똑똑해지는 기분"이란 시청 평들은 괜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모여 <토지>는 왜 위대한 소설인가를 논하고, 백석을 비롯해 예술가들이 왜 통영에서 많이 배출됐는지를 유추하며, 이순신 장군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 순간들은 진지하되 어렵지 않고, 흥미롭지만 가볍지 않다. 더욱이 '수다'에 잉태된 팩트들은 제작진이 편집을 통해 거들어 준다.

<어쩌다 어른>은 한 명사의 집중 강연이다. 여기에 고정 출연자들의 질문을 더 한 것이 <차이나는 클라스>다. 또 <썰전>은 여타 정치 예능을 줄줄이 탄생시키는 효과를 낳았고, 한편에선 역사를 품은 에듀 예능들이 선전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문학 예능 혹은 인문교양 예능의 전성시대다.

<알쓸신잡>은 '여행 예능'의 창시자인 나 PD의 작품답게 좀 더 스케일을 벌렸다고 할 수 있다. 통영과 순천 같은 지역으로 직접 떠나, 자연과 역사, 향토 음식을 품은 지역의 이모저모를 직접 체험하고 그에 대한 '박사'들의 지식을 탈탈 털어내는 방식이다. 다만, '여행'과 '음식' 카테고리를 주로 삼기보다 '토크'에 방점을 뒀다.

한 마디로, 유시민과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유시민과 친구들과 나누는 여행지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다고 보면 맞다. 그렇게 <알쓸신잡>은 처음 <꽃보다 할배>가 줬던 신선함을 살짝 비튼 것과 같은 재미와 교양을 담보해냈다.

출연진의 캐릭터도 확고하다. 정재승 교수의 과학 이야기는 의표를 찌르듯 신선하고, 아직 그 매력을 다 발산하지 못한 소설가 김영하는 세련된 친근함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까지 진출한 유시민 작가와 '세 살 차이'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앙상블도 제작진이 포착한 재미 요소라 할 만하다. 각자의 전공이 확실한 만큼, 그에 바탕을 둔 '잡지식' 토크는 마치 그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리하여, <알쓸신잡>은 나영석 PD가 완성한 또 하나의 '시리즈'로 자리 잡을 공산이 커 보인다. 유희열을 제외하고 또 다른 영역의 또 다른 '박사'들을 캐스팅한 후 국내는 물론 해외 어디로도 변환이 가능한 형식이기 마련이다. 남성 네 명 말고 당장 여성 네 명으로 후편을 제작해도 무방할 형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영석 월드'가 또 한 번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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