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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n 06. 2017

넷플릭스 vs. CGV... <옥자> 개봉논란에 대하여

 영화 <옥자>의 스틸컷.ⓒ 넷플릭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영화인은 넷플릭스 측이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미개봉 영화의 독점 배급에 관심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저예산 독립영화인 데다 배급이나 개봉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영화인만큼 넷플릭스를 통한 전 세계 독점 배급은 솔깃할 수밖에 없는 청사진이었을 터다.

2017년 넷플릭스의 국내 행보는 거침이 없다. 지난 4월, 넷플릭스와 JTBC는 약 600시간의 드라마와 그 외 주요 콘텐츠 방영권 계약을 맺었다. <썰전> <아는 형님> <맨투맨> 등 JTBC의 주요 예능과 드라마들이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 중이다. 그에 앞서 3월에는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제작 소식도 알렸다.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가 손을 잡은 작품이다.

그 중심엔 물론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자리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옥자>는 최초로 올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의 서비스 방식에 프랑스 극장협회 등이 반발하면서 영화제 기간 내내 <옥자>는 '전통 vs. 변화'를 상징하듯 화제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예견됐던 제2라운드가 한국 극장가에서 펼쳐지고 있다.

<옥자>가 촉발시킨 영화 개봉의 '전통 vs. 변화' 프레임
  

지난 5월 영화 <옥자>의 기자 간담회 당시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절대 극장 개봉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옥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콘텐츠 최고 책임자의 말이다. 6월 29일을 공개일로 정한 <옥자>의 한국 개봉 역시 세계 최고의 OTT(Over the Top) 서비스인 넷플릭스와 일반 극장 개봉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이미 제한적으로 극장 개봉을 확정했다. 한국 배급사는 NEW가 맡았다. NEW의 간판 영화인 <변호인>도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 중이다.

하지만,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가 적극 반발하고 나섰다. <뉴스1>에 따르면, CGV는 5일 "극장과 온라인에서의 동시 개봉은 절대 불가하다"는 원칙을 고수 중이다. "최후통첩은 아니다"라면서 이후 협의의 여지는 남겨뒀다. 제2, 제3 멀티플렉스 체인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는 CGV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고, 오히려 서울극장이나 대한극장과 같은 중소 멀티플렉스나 단일 개봉관들은 <옥자>의 개봉을 반기는 눈치다.

CGV의 논리는 단순하다. CGV는 그간 묵계처럼 지켜져 왔던 '극장 개봉 후 온라인(인터넷 IPTV나 케이블 TV를 포함한 부가 플랫폼) 서비스' 원칙이 <옥자>의 넷플릭스와 극장 동시 공개를 통해 깨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 산업의 생태계 균형"이란 거창한 수사까지 운운했다. 흥행이 예상되는 <옥자>의 개봉이 IPTV의 등장 이후 점점 그 기간이 짧아지거나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홀드백(hold back, 한 작품이 극장 개봉 이후 수익 창출을 위해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란 관행을 깨트릴 것이란 우려를 돌려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칸에서 벌어진 상황을 봤을 때, 결국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공존하게 되리라 본다. 넷플릭스의 역사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어떻게 공존하는 게 가장 아름다운 방법인지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영화관에 갈 수도 있고 블루레이나 DVD, 넷플릭스, IPTV, 인터넷 합법 다운로드 등 점점 늘어간다. 그런 과정 중에 작은 소동일 뿐이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CGV라는 공룡 멀티플렉스는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을까
  

지난 5월 <옥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입장에서 보면, <옥자>의 한국 개봉 수익은 그리 중요치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옥자>를 통해 겨냥하는 시청자들은 전 세계 1억 명에 육박한다. <옥자>는 이미 어마어마한 숫자의 예비 관객층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완성도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지만 작년 공개한 <와호장룡2: 운명의 검> 역시 아시아 시장과 무협 마니아층을 겨냥해 넷플릭스가 야심 차게 자체 제작한 영화였다.

넷플릭스가 60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전액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의 경우,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까지 진출하며 넷플릭스 홍보의 일등 공신이 됐다. 자체 제작 드라마로서 넷플릭스의 대중화에 지대하게 공헌한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와 함께 <옥자>는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영화를 대표하는 '킬러 콘텐츠'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 가입자 수가 1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국내에서 <옥자>의 공개가 가입자 수를 늘리는 신호탄으로 작용하게 될지도 관심사다.  

반면 CGV의 논리는 옹색하다. 이미 과도한 스크린 밀어주기를 비롯해 CGV 등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 등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영화계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손꼽힌지 오래다. 일부 수입영화의 경우 '상영작 프리미엄'을 노린 IPTV 동시 서비스를 통해 홀드백 제도를 스스로 무너뜨려 왔다.

한국 영화 역시 극장 흥행에서 실패할 경우 IPTV 공개 시점을 앞당기면서 수익 보전을 위해 힘써왔다. 2~3주라는 전통적인 개념의 홀드백 개념이 깨진 지 오래란 얘기다. '옹색'이란 표현을 쓴 것도 같은 이유다. CGV가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향후 <옥자>와 같이 한국 관객들이 관심을 갖는 대형 영화들이 넷플릭스와 같이 극장 동시 개봉을 추진하고 또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를 조금이라도 늦춰보자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그러나, CGV(와 롯데, 메가박스)는 프랑스극장협회와 같지 않다. 그간 엄격한 홀드백 기간을 준수하지도 않았고, 영화/극장 생태계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자사 이익에 충실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옥자> 개봉 논란에서 관객들이 멀티플렉스들의 손을 쉽사리 들어주는 기류가 형성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도 2017년의 관객들은 다채로운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소비하는 중이다. 그 사이,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차곡차곡 이름값을 높이고 있다. 이미 흥행 성공이 예견된 <옥자>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 역시 점점 커지는 중이다. CGV는 관객들의 드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동시 개봉 절대 불가"의 방침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옥자>로 촉발된 '전통 vs. 변화'란 영화 개봉을 둘러싼 논란이 한국에서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귀추가 주목되는 지금이다. 과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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