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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Aug 26. 2024

다행인데 답답하다... 고 이선균 둘러싼 두 가지 풍경

이선균 특별전 여는 부산국제영화제, 현실 외면한 언론


▲ 이선균 배우의 유작 <행복의 나라> 포스터. ⓒ NEW


'영화는 다시 찾아볼 수 있지만 사람은 다시 찾아볼 수 없다.'


원론적인 경구지만 2024년이라 더 울컥해진다. 배우 유재명이 고 이선균 배우를 향한 마음을 전하면 든 비유다. 여기서 영화는 <행복의 나라>고, 사람은 이선균이다.


지난 6일 <행복의 나라> 기자 시사 당시 유재명은 위와 같이 함께 연기했던 이선균 배우를 언급하며 과거 들었다는 오프닝 멘트를 소개했다. 그 역시 울컥해했다. 그리고, 올 여름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 된 두 편이 나란히 공개됐다.


먼저, <행복의 나라> 속 이선균은 중앙정보부장의 명령으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은 박태주 수행비서관을 연기했다. 박태주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당한 바로 그 사건 속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 삼았다. 역시 10.26을 소재로 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한석규가 연기한 캐릭터이자 격동의 현대사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인물이다.


앞서 개봉한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이선균은 차정원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을 연기했다. 유력 대선주자의 2인자인 차정원은 딸과 함께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서 맞닥뜨린 통제 불능의 군사견들과의 사투 속에 살아남은 후 사건 발생의 원인이 유력 대선주자의 야욕이었음을 폭로하게 된다. 정치 한복판에서 본인이 충성했던 정치인의 이면을 까발리는 인물인 셈이다.


한편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뒤바꾼 실화 배경 드라마고, 한편은 칸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재난영화였다. 흥행 여부와 별개로, 이처럼 각기 다른 장르 속에서 이선균을 스크린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불가항력과 같이 만감을 교차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다. 유재명 배우처럼 '다시 볼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은 기본이요,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만든 사건의 처리 결과를 되짚게 만들 수밖에 없다. 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수반한다. 그리고, 최근 영화계 안팎에서 이선균에 대한 두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둘 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라는 점에서 다행스러움과 한탄이 교차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알려온 이선균에 대한 헌사

  

▲ 영화 <기생충>과 <행복의 나라> 속 이선균. ⓒ 부산국제영화제


어느 정도 기대했고, 또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오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고 이선균에 대한 헌사 말이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토크를 포함한 특별기획 프로그램과 올해의 한국영화공로상(Korea Cinema Award) 수상자로 고 이선균 배우를 선정했음을 알렸다. '고운 사람, 이선균'이란 누군가에게는 더 시큰하게 다가올 특별기획 제목도 심금을 울린다.


<파주>(2009), <우리 선희>(2013), <끝까지 간다>(2014), <기생충>(2019), <행복의 나라>(2024). 올해 부산영화제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이선균의 출연작 다섯 편과 드라마 한 편이다. 유작인 <행복의 나라>를 제외하고, 네 편 모두 지난 15년 간 해외에 이선균의 얼굴을 알린 작품들이다.


박찬옥 감독의 <파주>로 이선균은 2010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는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상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선균 팬덤'은 물론 대중들에게 폭넓게 사랑받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스크린으로 만나는 일도 특별한 체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나의 아저씨>에 대해 "담담하고 따뜻한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감동을 안긴 드라마"라며 "총 16화 중 배우 이선균, 그리고 그가 연기한 극중 박동훈의 감정과 숨결을 한 편의 영화처럼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를 선택했고, 다섯 번째 에피소드인 5화를 상영한다"고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공로상은 한국영화에 대한 전세계적 대중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한국영화를 국제영화계에 널리 소개하는데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주로 해외 영화인이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영화인이 수상했고, 지난 2021년엔 고 이춘연 대표, 지난해엔 고 윤정희 배우가 수상했다.


한 해 한국영화를 정리하는 기운이 강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떤 형태로든 이선균 배우에 대한 헌사 혹은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1월 '고(故)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 발표' 당시 29개 문화예술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결성된 '문화예술인 연대회의(가칭)'에도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더디고 더딘 영화계 밖 현실

  

▲ 봉준호 감독, 장항준 감독, 배우 김의성, 최덕문, 가수 겸 작곡가 윤종신 등 문화예술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지난 1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故)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다행이다. 아니, 당연한 귀결이다. 영화인들이,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고(故)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 성명 발표 당시 2천여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연명에 함께 했다.


당시 이들은 성명서에서 "고(故) 이선균 배우의 장례 기간 내내 방송, 영화, 음악 등 연예계를 총망라한 많은 분들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수사당국의 수사절차의 적법성을 따져 물었고, 녹취를 보도한 KBS를 포함한 언론 및 미디어의 보도가 '사이버 렉카'와 같이 이선균을 죽음으로 몰아간 건 아닌지 꼬집었으며, 마지막으로 정부 및 국회에 이렇게 요구한 바 있다.


설령 수사당국의 수사절차가 적법했다고 하더라도 정부 및 국회는 이번 사망사건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형사사건 공개금지와 수사에 관한 인권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에 문제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법령의 제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수사당국이 법의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선균을 둘러싼 작금의 영화계 밖 움직임은 어떨까.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해 이선균이 포함됐던 경찰의 유명인들 마약 의혹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된 모양새다. 경찰이 이선균과 함께 입건해 포토라인에 세웠던 '지드래곤' 권지용도 무혐의 처분 됐다. 수사 당시 이선균을 앞에 내세웠던 경찰은 함께 수사 선상에 올랐던 11명 중 5명만 검찰에 송치했다.


이선균 관련 보도를 쏟아냈던 대다수 언론들이 이 같은 경찰의 수사 종결 내용을 두고 '용두사미', '흐지부지', '조용히 끝났다'와 같은 제목의 보도를 내놨다. 보도 자체가 조용했다. 아예 가치 판단이 없는 제목도 다수였다.


지난 1월, 문화예술인들이 이선균 보도에 나섰던 언론 및 미디어를 향해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정녕 자정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라고 물었던 것이 머쓱해지는 보도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헌사와 달리 영화계 밖 현실은 '이선균 전후'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총선 직후인 지난 5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유정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이선균 (재발)방지법 (제정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같은 당 양부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피의사실공표금지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역시 '이선균 재발 방지법(가칭)' 발의를 예고한 민주당 주철현 국회의원이 주최했던 '검·경 조사과정 자살자 전수조사 결과에 따른 재발 방지 토론회'도 토론회에 그쳤을 뿐이다. 지난 8월 초 열린 '온라인 사이버렉카 피해 대책 마련 위한 정책 토론회' 역시 이선균 배우의 사례가 언급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선균 영화를 찾아보는 일은 빠르지만 '이선균 재발 방지법'을 현실화 하는 일은 무척 더딘 상황이라고 할까. 나아가, 더딘 이선균 재발 방지법의 국회 통과가 전부일 수 없다. 같은 사안이 반복될수록, 그리고 이선균이란 이름이 회자할 때마다 '이선균 수사'가 정치, 그리고 정치에 복무한 수사기관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복기하게 된다.


'영화는 다시 찾아볼 수 있지만 사람은 다시 찾아볼 수 없다'는 유재명 배우가 길어 올린 경구가 뼈 아프게 다가오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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