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스터> 속 진현필 회장을 연기한 배우 이병헌.ⓒ CJ 엔터테인먼트
"나 데리고 가면 세상 뒤집어질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화 <마스터> 속 진회장(이병헌 분)은 자신만만했다. '건국 이래 최대의 게이트'를 꿈꾸는 이 사기꾼을 이병헌이 연기했다. '악인들이 더 잘 잔다'는 명제를 영화적이고, 장르적으로 현현할 수 있는 연기자 이병헌은 '할리우드' 배우다운 여유와 품격을 선사한다.
<내부자들>로 각종 영화제의 주연상을 휩쓴 그 배우답다. 강동원도 기본을 다하고, 김우빈의 눈빛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김엄마' 역의 진경은 중량감 넘치고, 형사 '신젬마' 역의 엄지원과 '황변호사' 역의 오달수는 등장만으로 든든하다.
그런데, 진짜 세상이 벌써 뒤집어져 있었다. 작년 연말, '리얼 월드'에서는 건국 이래 최대의 정치 게이트가 진짜 세상을 뒤집어 놨다. 영화보다 더 극악무도한 악인이 판치고, 그 경악스러운 현실에 국민이 울분을 쏟아내며 패닉에 빠졌고, 외신들도 열성을 다해 그 게이트를 중계하고 분석했다. 이미 감당하기 버겁다. "현실에 졌다"는 영화인들의 토로와 한탄도 쏟아졌다.
<마스터>는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범죄오락액션물이지만, 사회비판영화의 기능을 답지했던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영화들의 기호도 반영됐다. 143분이란 다소 긴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마스터>에 대한 호불호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군계일학 이병헌과 균형잡힌 연출력
영화 <마스터>는 사기꾼 진회장과 이를 잡으려는 김재명의 줄다리기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박장군의 이야기이다.ⓒ CJ 엔터테인먼트
'좋은 놈, 나쁜 놈, 헷갈리는 놈.'
화려한 언변, 사람을 현혹하는 재능, 정관계를 넘나드는 인맥으로 수만 명 회원에게 사기를 치며 승승장구해 온 원네트워크 진회장(이병헌 분), 투철한 정의감을 바탕으로 좌천을 감수하면서까지 진회장을 쫓는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강동원 분), 진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이자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과 명석한 두뇌로 원네트워크를 키워 온 박장군(김우빈 분).
<마스터>는 이 세 남자 주연배우의 캐릭터를 균등하게 조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 강박은 일정 정도 영화의 균형감에 일조한다. 진 회장의 카리스마와 범죄자로서의 잔혹함도 그려야 한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김재명의 사명감은 극을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극적 재미와 반전 대부분은 김재명으로부터 원네트워크 전산실 위치와 진 회장의 로비 장부를 넘기라는 압박을 받는 박장군의 배신과 갈등으로부터 온다.
전작 <감시자들>로부터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상찬을 받았던 김의석 감독은 이 세 캐릭터 모두에게 애정을 기울이는 균형감을 발휘한다. 이건 분명하게 장점으로 기능할 수 있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넷플릭스의 미드 <나르코스>와 같은 '범죄왕'의 내밀한 심리묘사는 영화의 장르를 바꿔 버린다. 범죄자를 쫓는 경찰만의 시선으로 경도되는 '경찰 드라마'는 이미 <감시자들>에서 경험했다. 오롯이 박장군을 중심에 놓기엔 이야기 구조를 심히 뒤틀어야 한다거나 주제가 더 무거워지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신, 실제 사건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한 '범죄상'은 영화적 재미와 주제와도 연결된다. 세 캐릭터를 고루 다루기에도 용이하다. 다소 평면적인 '경찰' 김재명 캐릭터보다 범죄자인 진회장의 어두운 면이 훨씬 매력적이고, 박장군의 굴곡이야말로 중반과 후반의 반전을 강화하는 키포인트다.
그래서 <마스터>가 선택한 것이 '안전하게, 장대하게'의 전략이다. 어느 한 캐릭터에 묘사가 함몰되지도 않고, 눈살을 찌푸리게 캐릭터를 망가뜨리지도 않으며, 진회장의 거대 사기극을 훑어가고 관망하는 쫓아가는 이야기의 구조적 재미에 치중하는 것이다.
다시, 이러한 <마스터>의 전략은 분명 성공적이다. 그런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조금 과하다는 게 문제다. 짧고 끊어 갈 수 있는 부분이나 비정해야 할 때도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배우들에 대한 비중 탓인지 중반부가 다소 늘어진다. 속도감이 필요하거나 감정의 강약이 필요한 대목도 마냥 매끄럽고 매너가 넘친다. '건국 이래 최대 사기극'인데, 감정의 파토스가 일지 않는 것이다.
이 매끈한 범죄오락액션 영화에 드는 허전함
영화 <마스터>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다른 기득권의 범죄를 다룬 사회 비판 영화가 아니라 현 시국 자체이다ⓒ CJ 엔터테인먼트
"너 하나 감당하자고 여기까지 온 거 아냐. 네 장부에 있는 새끼들 모조리 작살내줄게. 잘 봐, 네가 말한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극 중 이 김재명의 대사는 <마스터>의 주제적인 측면과 연결된다. 현실의 나쁜 놈들을 단죄하고자 하는 영화적인 열망은 그러나 진회장의 반대편의 선 캐릭터들과 단단히 결부되지 못하면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진회장을 쫓는 이야기 구조의 쾌감이 그를 꼭 작살내야 한다는 감정으로까지 승화되지 못한다고 할까.
<마스터>는 결국 박장군 캐릭터의 변화상이 이야기의 큰 축일 수밖에 없다. 마스터의 범죄에 깊게 가담했던 범죄자 박장군이 회개한 뒤 그 마스터의 돈을 빼내고 단죄를 가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박장군에게 욕을 퍼붓던 사기극의 피해자들을 단역으로 등장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결말엔 그들에게 보상을 주는 장면을 이어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왠지 억지스럽다. 범죄오락영화의 쿨한 전개와 결말과 현실의 피해자들을 보듬으려는 주제적인 측면의 강조가 자연스레 붙지 않는다. 그러한 접합을 박장군의 고난을 짧게 묘사하고 넘어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후반부, 거대 사기극의 실질적인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대목이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영화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다. 장르와 현실의 어쩔 수 없는 괴리감이랄까.
작년 한 해, <내부자들>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아수라>의 지옥도가 현실로 판명됐으며, <판도라>는 예견된 원전의 공포를 스크린에 그럴싸하게 재현시켰다. 한쪽에선, 이러한 경향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다. <마스터>도 일정 정도 이러한 경향에 발을 걸치고 있다.
예컨대, <마스터>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프로파일러 표창원과 함께 중국까지 가서 쫓았지만, 의문의 죽음으로 사건이 종결된 조희팔(진현필의 초성 ㅈㅎㅍ은 이 조희팔에서 따왔고 한다) 사건의 전말, 엘시티 이영복 회장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결정적인 장부의 존재, 구원파 유병언 회장의 죽음과 '김엄마'라는 호칭 등이 어른거린다.
<마스터>는 이 실제 사건에서 따온 듯한 설정들을 그럴싸하게 영화적으로 직조해냈다. 이야기의 매듭이나 오락물로서의 외형이나 쾌감도 만족스럽다. 이병헌을 위시한 배우자들의 연기 또한 나무랄 데 없다. 그런데도 어딘가 허전하다. 그 허전함이, 실제 사건과의 접합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방식과 익명의 피해자들까지 영화적으로라도 구제하고자 하는 욕망이 공공연히 과시되는 것 때문은 아닌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허전함이 초유의 실제 게이트로 인해 '뒤집어져 버린' 우리네 현실 때문인지, 강약 조절이 살짝 부족한 영화적인 매무새 때문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찌 됐건, 사회 비판적인 영화를 준비하던 몇몇 영화인들이, 이를테면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 시리즈의 후속편을,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2>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시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