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블랙 앤 크롬>의 홍보 로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절망적인 시대에도 어떤 횃불, 이를테면 인간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제작의도에서 밝힌 그 횃불이 작년 겨울 대한민국의 광장에서 타올랐다. 조지 밀러가 말한 그 인간애를 우리는 '민의'와 '민심'이라 불렀고, 그 횃불은 새 정권의 철학적 바탕이 됐다. 그래서 더더욱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블랙 앤 크롬>(아래 <매드맥스>)은 한국 관객들에게 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지 않나 싶다.
<매드맥스>는 조지 밀러 감독이 직접 흑백 버전으로 다시 매만졌고, 2D와 4DX 두 가지 버전으로 선보였다. 2015년 개봉 당시, '혁명적 서사의 묵시록'으로 받아들여졌던, 더욱이 흔치 않은 페미니즘 액션 블록버스터로 인정받았던 <매드맥스>의 흑백 버전은 강렬한 아날로그 액션이 선사하는 쾌감 역시 흑백의 화면 위에서 배가됐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블랙 앤 크롬>의 스틸 이미지. 강렬했던 색감이 그리웠던 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흑백이라는 선택은 훌륭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20세기 걸작에서 시작해 21세기 관객들과 만나는 22세기 재난 블록버스터."
이보다 더 멋들어진, <매드맥스>를 잘 설명하는 홍보 카피가 또 있을까. 그런데, 정말 그렇다.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3부작의 시작이 1979년이었고, 부활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전 세계 관객들과 평단의 사랑을 받은 것이 지난 2015년이었다. 그리고 2016년을 연말에 돌아온 흑백 버전의 <매드맥스>는 또 다른 깊이감과 본판과는 차별화된 감성을 지녔다.
우선 흑백 화면이 주는 몰입감의 강도. 빨간 옷의 기타리스트가 주는 생경함과 재미가 그리운 관객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블랙의 <매드맥스>는 원작의 아날로그 액션이 주를 이루는 본편의 매력을 훨씬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완성됐다.
황야의 회오리 폭풍과 같은 컴퓨터그래픽 효과는 자연스레 그 빛을 잃으면서 최소화됐다. 그래서 액션의 동선은 물론이요, 맥스(톰 하디 분)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분), 눅스(니콜라스 홀트 분)의 클로즈업 역시 극도의 몰입감을 자랑하게 됐다.
한마디로, 본편의 시각적인 현란함은 흑백의 대비가 주는 일체감으로 승화됐고, 미장센은 물론 서사와 캐릭터의 강점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스크린으로 흑백 버전을 다시 확인한다면, 조지 밀러 감독이 밝힌 제작 의도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봉 시에는 트렌드에 따라 화려한 색상들로 다이내믹함을 줬지만, 포스트 묵시록 영화에는 흑백 영화가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버전으로 차별화를 줘 다시 개봉하기로 결정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블랙 앤 크롬>의 스틸컷. 컬러가 흑백으로 치환될 때, 관객은 색 정보 대신 다른 데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흑백영화가 원래 그런 법이다. 컬러의 색감이 줄어드는 대신, 관객들은 촬영의 구도, 클로즈업 화면에 꽉 찬 배우들의 연기, 음악과 같은 영화 외적인 요소들에 훨씬 더 몰입하기 마련이다. 컴퓨터 그래픽을 최대한 배제한 역동적인 화면과 편집이 일품이었던 <매드맥스> 역시 마치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클래식한 감정까지 일으킬 만큼 흑백의 미장센은 매혹적이다.
액션의 동선 역시 훨씬 더 투박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투박함은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는 맥스의 감정이나 여성들을 지키고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퓨리오사의 책임감 등 주요 캐릭터들의 성격을 강조하는 데 일조한다.
군더더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컬러의 현란함이 줄어들면서 좀 더 인물의 감정에 직접 반응하게 되는 결과랄까. 딱히 호불호가 갈리기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흑백과 컬러의 장점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버전이란 얘기 되겠다.
흥미로운 점은 이 흑백 버전이 증폭시킨 감정이 어떠한 방향을 귀결되느냐다. 그러니까, 눅스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노예성을 벗고 주체성을 획득할 때, 퓨리오사와 맥스가 폭력의 질주 끝에 기어코 임모탄의 노예들을 해방할 때, 흑백의 대비와 그 단순한 시각적 강렬함은 <매드맥스>의 주제인 혁명의 기운과 이를 추동하는 분노를 좀 더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전달한다. 원래, 심플함이 훨씬 힘이 센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