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팡라오 공항 밤샘대기 현장
어두운 밤에 공항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공항 입구에는 테이블 하나가 있었고, 직원이 항공편을 검사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이티켓과 여권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항에 들어서니 짐을 검사하는 곳이 나왔다.
나는 생수병을 가방에 넣어놨던 걸 잊었다면서 미안하다고 하고 바로 생수병을 뺐다. 남편은 내가 물을 넣은 걸 모르고 있었다가 내가 생수병을 빼자 얼른 물병을 모아놓는 곳에 놓았다. 그렇게 숙소에서 떠나기 전에 담은 생수병을 허무하게 버리고, 검사를 마쳤다.
"보또보또?"
보또보또? 과자 뽀또가 생각나는 귀여운 말이었다.
혹시 필리핀어인 따갈로그어로 말하는 건가?
'감사합니다'가 따갈로그어로 '살라맛뽀' 였다. 뽀로 끝나는 말이여서 따갈로그어인 것 같았다.
"I'm sorry. I don't understand what you mean." (죄송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를 담당했던 직원은 굉장히 어려보였고, 신입으로 보였다. 그 직원 바로 뒤에서 시니어로 보이는 직원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뒤에 있었던 경험이 많아 보이는 직원이 나에게 다시 또박또박 한국말로 말해줬다.
"복도복도."
어린 직원은 멋쩍은 듯 웃으면서 검지손가락 두 개를 들어서 붙였다가 떨어뜨렸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명 다 복도 자리에 앉을 거냐고 묻는 게 분명했다. 바디랭귀지가 명확했다.
"Oh, I understand now." ( 아. 이제 이해 했어요.)
남편하고 떨어져서 앉는건 싫다.
"No. I'd like to sit next to my husband." (아니요. 저는 제 남편 옆에 앉고 싶어요.)
"Together?" (함께요?)
"Yes. Together." (네. 함께요.)
'투게더'라고 말하니깐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과 여행 내내 함께 있었지만, 마지막 비행기에서도 '함께' 앉아서 갈 것이다.
우리에겐 떨어져야 하는 시간들이 있으니,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그러고보니 보홀에서 한 번도 커피숍에 간 적이 없네.' 맥도날드와 졸리비, 그리고 리조트 조식으로 커피를 마신 것 빼고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아무래도 패키지투어니까 당연한 것 같다. 혼자 여행가면 그 지역의 커피숍은 꼭 들려보는 편인 것 같다. 커피숍에서 흐르는 음악, 분위기, 적절한 소음, 커피맛, 커피숍에서 음악소리에 묻혀서 들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는 마치 '카페소음'을 유튜브로 틀어논 것 같다. 카페갈 생각이 안 들정도로 알차고 재밌게 놀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사주는 커피는 좋다. 남편은 센스도 넘치고 귀엽고 예쁜 행동만 한다.
"공항세는 어디에서 내는 거에요?"
"아 그건 안에 들어가서 내는건데, 아직 문 안 열렸어요."
우리 다 처음 보홀에 왔지만, 공항에 먼저오셔서 그런지 공항에 대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오늘 오후에 서로 떨어져있는 동안 뭐 했는지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다가 드디어 보안검색대가 열렸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분은 "늦게 오면 대기할 때 좋은 자리가 없어요." 라고 하면서 먼저 가셨다. 하지만 나는 아아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지막 커피를 이렇게 후루룩 마셔버릴 순 없잖아요."
"응. 천천히 마셔."
보홀에서 먹는 마지막 필리핀 커피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마신 후, 남편과 들어갔다.
공공장소여서 그런지 눕긴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남편도 눈만 감고있을 뿐 안 자고 있었을 수도 있다. 대기할 때는 의자를 앞뒤로 해서 누워있었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다.
게이트가 열렸다. 대기하는 인원 모두가 같은 비행기를 타나보다. 다 같은 게이트로 들어갔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목베개를 하고나서 바로 잠들어서 눈을 떴을 때는 이제 한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눈깜짝할새 도착한 한국. 온 몸을 압박하는 습한 더위가 날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