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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티 Sep 08. 2024

어릴 적 어둠, 그때 죽을 뻔 했을까

기억 보내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어수선하다.


눈을 감았다 뜬다.


다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는 흐느끼며 운다.

엄마 목소리다.


눈을 감았다 뜬다.


여전히 어둡다.


다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동생 이름을 부른다.



아,

동생이랑 어둠에 있구나.


작게 동생 이름을 부른다.


"A야 거기 있어?"

"응.."

작은 대답이 들린다.


밖에선 아이들 목소리가 난다는 말을 한다.


다시 웅성거린다.




왜 동생과 내가 어둠에 있는지 기억을 되돌린다.


분명 아빠가 운전하던 경운기 뒷자리에서

동생이랑 노래부르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어두워졌다.

죽음이 이런 한순간의 빛 꺼짐일까.






엄마가 계속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절규같은 목소리도 들린다.

다른 어른의 괜찮냐는 물음이 들린다.


괜찮다 대답한다.


동생도 괜찮냐는 물음이 들린다.


동생도 괜찮다고 대답한다.



작은 생명체가 공포에 굳어있음이 손 닿지 않는 거리임에도 느껴진다.


'A야 괜찮아. 엄마랑 아빠 올꺼야. 우리 꺼내줄꺼야. 괜찮아.'


몇 분이 흐른지 모른다.


몇 번의 '괜찮아'를 말했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울면 안된다는 것만 알았다.

그저 옆의 작은 생명체한테 안도감을 줘야한다는 것만 알았다.



이때가 내가 5~6살, 동생이 3~4살 기억이다.




책상 모니터에 항상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오늘 과연 하고 싶을까?"

라는 문장을 적어두었다.


마지막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제노사이드>라는 소설책에서 소년병의 죽음을 통해

그저 한순간에 찾아오는 어둠뿐이라는 걸,

간접 경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만약 마지막을 알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나는 지금 하려는 일을 할까. 라는 물음으로 오전을 보냈다.



어렴풋한 질문에 와닿지 않아,

내가 죽을뻔 한 위기가 있던 기억들을 훑어본다.



직장인 때 한번쯤 다음날 눈뜨지 않았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중학생 때 하던 것을 못하게 될 때, 원망스러웠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위기는 없었다.



계속 생각하다 잊고 있던 어렴풋한 기억에,

엄마에게 전화해 묻는다.


'엄마, 혹시 이런 일 있지 않았어?'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며 놀라신다.


그 어둠은 내가 잊고 있었던 진짜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죽을 뻔한 경험으로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한다.


그는 내게

한번의 인생

너무 힘 쏟으며 긴장하며 살지 말라고 한다.

맘 편히 그냥 별거 아닌 듯 살아보라 한다.


그게 되지 않는다.


어릴 적 어둠을 소환해보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더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다.


내가 없어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이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여전히 나는 힘을 뺄 수 없다.



바들바들 떨고 있을지도 모를 동생에게

'괜찮냐'고 물을 힘이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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