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보내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어수선하다.
눈을 감았다 뜬다.
다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는 흐느끼며 운다.
엄마 목소리다.
눈을 감았다 뜬다.
여전히 어둡다.
다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리고 동생 이름을 부른다.
아,
동생이랑 어둠에 있구나.
작게 동생 이름을 부른다.
"A야 거기 있어?"
"응.."
작은 대답이 들린다.
밖에선 아이들 목소리가 난다는 말을 한다.
다시 웅성거린다.
왜 동생과 내가 어둠에 있는지 기억을 되돌린다.
분명 아빠가 운전하던 경운기 뒷자리에서
동생이랑 노래부르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어두워졌다.
죽음이 이런 한순간의 빛 꺼짐일까.
엄마가 계속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절규같은 목소리도 들린다.
다른 어른의 괜찮냐는 물음이 들린다.
괜찮다 대답한다.
동생도 괜찮냐는 물음이 들린다.
동생도 괜찮다고 대답한다.
작은 생명체가 공포에 굳어있음이 손 닿지 않는 거리임에도 느껴진다.
'A야 괜찮아. 엄마랑 아빠 올꺼야. 우리 꺼내줄꺼야. 괜찮아.'
몇 분이 흐른지 모른다.
몇 번의 '괜찮아'를 말했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울면 안된다는 것만 알았다.
그저 옆의 작은 생명체한테 안도감을 줘야한다는 것만 알았다.
이때가 내가 5~6살, 동생이 3~4살 기억이다.
책상 모니터에 항상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오늘 과연 하고 싶을까?"
라는 문장을 적어두었다.
마지막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제노사이드>라는 소설책에서 소년병의 죽음을 통해
그저 한순간에 찾아오는 어둠뿐이라는 걸,
간접 경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만약 마지막을 알 수 있는 행운이 있다면,
나는 지금 하려는 일을 할까. 라는 물음으로 오전을 보냈다.
어렴풋한 질문에 와닿지 않아,
내가 죽을뻔 한 위기가 있던 기억들을 훑어본다.
직장인 때 한번쯤 다음날 눈뜨지 않았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중학생 때 하던 것을 못하게 될 때, 원망스러웠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위기는 없었다.
계속 생각하다 잊고 있던 어렴풋한 기억에,
엄마에게 전화해 묻는다.
'엄마, 혹시 이런 일 있지 않았어?'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며 놀라신다.
그 어둠은 내가 잊고 있었던 진짜 경험이었다.
누군가는 죽을 뻔한 경험으로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한다.
그는 내게
한번의 인생
너무 힘 쏟으며 긴장하며 살지 말라고 한다.
맘 편히 그냥 별거 아닌 듯 살아보라 한다.
그게 되지 않는다.
어릴 적 어둠을 소환해보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더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다.
내가 없어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이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래서
여전히 나는 힘을 뺄 수 없다.
바들바들 떨고 있을지도 모를 동생에게
'괜찮냐'고 물을 힘이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