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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티 Oct 06. 2024

견디기

미혼을 선택한 여자 사람

프로그래머가 아닌 기술영업팀에 배치되고

그 부서에서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새로운 길을 받아들이고 걸어가는 데 집중했었다.


입사한 지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직속 상사와의 대화.


"저... 혹시 제가 왜 영업팀으로 배치된 건지 아시나요?"


상사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너 토익 점수가 높잖아. 회사에서 해외영업을 키우려고 해서 그 쪽에 맞는 인재가 필요했어."

"그렇지만, 전 프로그래머로 지원했는데요..."

"알아, 근데 우리한텐 네 영어 실력이 더 중요했어."



그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나의 선택과 회사의 필요가 다르다는 점에서 혼란스러웠지만, 그때 느낀 것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영어와 영업을 더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업무 후 남아서 영어 문서를 읽고, 해외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에서 자주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건 다 배움의 과정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모르는 단어는 모두 검색했고, 부끄러워도 계속 선배들을 괴롭혀 물어봤고, 점심시간을 활용해 전화영어 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리 진급 시기가 다가왔다.


당시는 여직원들이 진급을 거의 포기하는 분위기였었다.


"넌 진급에 욕심 있어?"

"사실, 별로 기대 안 해. 우리 회사에서 여자들이 진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잖어. 최소 5년있어야 해."

"맞아, 나도 그냥 이대로 다니면서 적당히 할 생각이야."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했다.

포기하기엔 그동안 쌓아온 노력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시도 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힘든 시간에도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언젠가는 이게 다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노력, 힘겨움 그리고 다시 극복이 반복되는 시간이 지나 

마침내, 바라던 것은 현실이 되었다.


4년 만에 대리로 진급한 유일한 여직원이 된 순간,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또한 보수적인 회사에서 포기라는 단어에 갖혀 시도하지 않는 여자 후배들이 없는 예시를 만들었다는 데에 스스로가 대견하던 때였다.


내 미래인 줄 알았던 곳을 떠나기로 결심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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