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약속한 3가지

by 걸침

나는 나하고 세 가지 약속을 했다. 그중 두 가지는 지켰고 다른 하나는 아직 진행 중이다.


지킨 약속 하나는 금연이다. 동료들과 일본연수를 갔을 때 단체로 후지산 정상에 올랐다. 무언가 남기겠다는 뜻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분화구 안으로 던지며 쓸데없는 선언을 하고 말았다. 내가 다시 담배를 필 요량이면 여기 올라와 저 담배를 다시 꺼내 피울 것이라고. 연수에서 돌아와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한 대 피울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러려면 일본행 티켓을 끊어야지, 저 높은 산을 다시 올라야지, 여간 복잡한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 나 혼자 몰래 한 약속이었다면 살짝 손이 갈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공언이란 그리 무서운 것인 줄 몰랐다. 이것도 양자역학에 속하는 것일까. 혼자 있을 땐 여유 있는 파동인데 누군가 관찰을 하면 딱딱한 입자로 돌아가는 빛의 속성처럼 말이다.

두 번째 약속은 금주다. 다른 점은 금주를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 금주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담배는 혼자서 즐기는 기호식품이지만 술이란 것은 다분히 사회성이란 기의를 지닌 음료이다. 누구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좀처럼 들여다볼 수 없는 상대의 심연까지 내려갈 수 있다던가, 쓸데없이 생긴 오해를 얼굴 붉히지 않고 (물론 얼굴은 불콰하게 취할 수 있겠지만) 해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필름이 끊기거나 모든 교통수단의 종점을 순방하게 된다는 일탈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약속의 이유 중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우리 아버지는 말술이었다. 하루에 옛날 진로소주 10병을 드셨다. 한 달에 한번 공병장수가 와서 리어카에 싣곤 할 정도였다. 그런데 칠순이 지나 배탈이 났다 하셔서 처음으로 의원이라는 데를 모시고 갔다. 하루에 그만큼의 약주를 드신다고 했더니 의사왈 “그렇게 마시면 6개월 넘기기 힘드십니다.” 협박 반, 주의 반을 주었다. 모처럼 의사라는 사람을 만난 아버지는 적이 놀래 한 달간 술잔을 쳐다만 보셨다. 그러시더니 하시는 말씀, “나, 일찍 가련다. 가져와라.” 그렇게 잠깐 끊어졌던 음주습관을 이어가셨다. 6개월이라던 의사의 말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고 15년을 더 사셨다. 그런 아버지 밑에 남자로는 3형제가 있는데 위의 형님들이 술을 못하신다. 그래서 아버님의 대를 한 사람이라도 잇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하는 묘한 효심이 발동했다. 나는 내가 술을 좋아서 먹는 게 아니라 오로지 의무감 내지 사명감으로 마시는 것이라 주위에 공언을 하고 있지만 아내의 콧방귀만큼은 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약속 한 가지를 더했다. 바로 스마트폰 줄이기. 지난해 한두 달을 그렇게 해봤다. 그러나 곧 원위치가 되었다. 원인을 분석해 보니 그 기기 속에는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욕구단계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부터 자아실현 욕구까지. 필수적인 의식주에 대한 정보,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예방등 안전의 욕구, SNS와 블로그 카톡등 사회적 욕구, 그 속에서 좋아요나 구독을 받고 싶은 자아존중의 욕구, 그리고 글을 쓰거나 취미활동을 하며 성취감을 쌓는 자아실현 욕구까지. 게다가 매슬로우가 나중에 더한 두 가지 욕구까지 충족을 해준다. 바로 각종 검색과 뉴스 등의 호기심, 지적 욕구. 그리고 아름다운 사진, 그림, 글 등을 보고 표현하는 균형, 미의 욕구까지. 그 모든 것이 스마트폰이라는 여의주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다이소처럼 모든 물품과 욕망이 다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득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찌 함부로 그 모든 욕망에서 고개를 돌릴 수 있겠는가. 어제만 해도 유튜브에서 탁구 영상을 보고 게임에 써먹어보니 바로 효과가 있는 것을. 브런치에 올릴 글과 그림을 정리하면서 맞춤법 검사를 하고 무료 사진사이트에서 멋진 사진을 고르는 즐거움을 봤는데. 그러니 무조건 그 요물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하기 힘들게 되어있다.

단, 한 가지 다짐은 하고 있다. 수동적이 되지 말자.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간의 경계를 넘어 끌려다니고 있다. 시간 단위건 내용단위 건 능동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열기 전에 5초를 센다. 과연 지금 꼭 필요한가. 내가 정한 시간이나 다른 부분을 찾을 때 봐도 되지 않나.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음주의 경우와 닿아있다.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만나서 10분 정도 되면 또 그렇고 그런 얘기에, 반복되는 대화를 억지로 들어줘야 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왜 만나자고 했던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차라리 술이 고플 땐 잠깐 심호흡을 하거나 나 혼자 우선 한잔을 마셔본다. 그러고도 친구가 보고 싶으면 그때 만나는 것이다. 정지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금연도 한때 그런 심호흡법을 쓰곤 했다.


어쨌든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관리한다는 것은. 그러나 웬만한 성숙함이 있지 않고서는 게임중독과 같이 수동적인 하루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이제 정반합의 논리를 기대해 봐야겠다. 담배는 끊었고 술은 계속하고 있으니 그 가운데 어디쯤 합의 지점이 나올 수 있지 않을지.

그런데 벌써 왼손이 스마트폰 쪽으로 가려한다. 오른손이 따라가 막아선다.

심호흡을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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