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밀장소
그곳에는 세 가지가 없어 3無齋라 부른다.
전기가 없고 물이 없고 화장실이 없다. 그저 시골의 조그만 농막으로 컨테이너를 갖다 놓은 것뿐이다. 시골 고향 냇가 옆의 텃밭에. 컨테이너는 인터넷으로 설계를 해서 주문해 온 것으로 앞에는 커다란 통창을 냈다.
물론 전기를 끌어들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전기가 들어오면 TV가 들어오게 되고. 그러면 서울의 시끄러운 생활과 무엇이 다르랴 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참았다. 물은 지하수를 파야 했지만, 가끔씩 들리는 처지라 식수만 집에서 가져가고 농수나 기타 물은 개울물을 이용했다. 바로 앞이 개울이긴 하지만 수십 번 물을 퍼 나르는 일은 거의 수도승의 경지였다. 그리고 화장실. 물론 이것도 정화조를 설치하는 등 약간의 절차와 공사를 거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밭의 한 편에 심은 오가피나무 사이에 삽으로 구덩이를 파서 일을 보고 흙으로 덮어가면 다음 해 그 흙은 퇴비로 사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무엇보다 아내가 위의 세 가지를 흔쾌히 받아들여 감내하니 고맙기 그지없을 뿐이다. 사람은 너무 편한 것보다 약간 불편함 속에 저절로 운동이 되고 수도가 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농사도 제법 여러 가지로 짓다가 이제는 게을러져서 손바닥만큼만 짓고 나머지는 유실수를 심었다.
아내와 이곳에 가면 아내는 호미부터 찾아 밭으로 나가고 나는 대금과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개미와 베짱이 식이다. 한참 지나 밖에서 부르면 억지로 나가 몇 번 거들다가 다시 들어와 내 방식대로 놀기 시작한다. 끊임없는 시소게임을 하다가 저녁이면 솥뚜껑에 삼겹살을 구워가며 막걸리를 곁들이면 저절로 판소리 한 대목이 터지고 창부타령이 늘어진다. 이제는 초기에 심은 나무가 컨테이너 지붕 위를 덮을 만큼 커졌다. 최근엔 작은 데크를 만들까 하여 전기톱을 쓸 요량으로 전기를 끌어들였다. 이제 촛불 대신 스탠드를 켤 수 있어 많이 발전했다. 가스난로 대신 전기 난로를 쓸 수 있어 편해졌다. 16년만의 일이다. 물도 끌어들였다. 마을에선 윗마을 산에서 끌어들인 수돗물을 받아 먹는다. 길 위에 있는 먼 친척 집에서 길게 호스로 끌어들여 컨테이너 위에 만든 물 탱크에 저장하여 쓰는 것으로 했다. 매번 식수를 챙기고 개울물을 퍼나르다가 얼마나 편해진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화장실만은 그대로다. 무언가 하나는 부족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역설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이제는 ‘일무재’가 되어버렸지만 그곳에 앉아 피리를 불고 아코디언을 치면 아무런 상념이 없다. 무념무상의 그 두 가지의 무, 없을 無가 두 개 있으니 아직 3무재가 아닐까. 도시가 피곤해지고 초록이 그리워지면 언제나 찾아 숨을 수 있는 곳, 나만의 약간은 불편한 비밀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