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비울수록 채워지는 것들

by 걸침

흐물흐물 움직이는 그것이 나는 무엇인지 몰랐다.

왕고모 머리 위에 얹힌 검은 비닐에 쌓인 그 물체가. 왕고모는 머리를 못 가눌 정도의 무게를 겨우 견디면서 내게로 다가오셨다. 시골을 내려가신다면서 어머니에게 전할 보따리 하나를 내게 주시고 떠날 차비를 하신다. 그때서야 머리 위에 얹힌 것이 양잿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누가 귀하던 시절이니 값싼 양잿물로 빨래를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왕고모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 쪽으로 힘들게 걸음을 옮기셨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왕고모 뒷모습에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주머니를 뒤지니 청량리역까지 택시 태워 드릴 돈은 되지 싶었다. 그런데, 그런데 아직까지 점심을 채우지 못한 배에서 신호가 울려왔다. 맛있는 짜장면 그릇이 머리를 스쳐갔다. 잠깐 망설이는 사이 왕고모는 저만치 가고 계신다. ‘그래, 인사까지 드렸는데 뭘.’ 속으로 자위를 하면서 가시는 뒷모습을 바라다보았다. 곧 넘어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내 뱃속 때문에 택시 하나 못 태워 드린 이 알량한 이기심이여.......

그 사건은 어린 내 뇌리에 오래 기억되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한심 스러 보였을 때가 없었다. 얼마 후 왕고모가 돌아가셨다. 그 소식에 어린 나는 골방에 들어가 눈가가 촉촉해질 때까지 멍하게 앉아 있었다. 한참 뒤였나. 시골에 계시던 둘째 누님이 상경하였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는 것으로는 자식을 키울 요량이 없었다. 무어라도 해보실 생각으로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부수입 일을 하려도 밑천이 있어야 하는 법. 누님은 그냥 며칠을 돌아만 다니고 계셨다. 어느 주말, 대문을 나서는 누님의 발걸음에서 돌아가신 왕고모의 뒷모습이 보였다. 순간 무언가 번쩍하고 머리를 스쳤다. 그때 그 골방에서의 후회감. 바로 주머니를 뒤지고 돼지 저금통을 부셨다. 그래봐야 얼마 나오지 않는 쌈짓돈이었다. 저녁에 누님이 들어오시고 오늘도 힘없이 방바닥에 주저앉으셨다. 나는 조용히 누님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쥐어 드렸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보던 누님의 눈빛만 아스라이 그려질 뿐이다. 다음 날 누님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을 알았다. 그동안 봐 뒀던 부수입의 일을 시작하셨다. 시장에서 생 도라지를 받아다가 하루종일 까고 쪼개서 요리용 도라지로 갖다 주는 식으로 조금씩 일거리를 늘려 나가셨다.

몇십 년이 흘렀다. 다섯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이제는 편안하게 지내시던 둘째 누님이 나를 만나자고 연락이 오셨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우리 부부는 오랜만의 나들이 겸 약속한 커피숍에 들어섰다. 저만치 먼저 와 계시던 누님이 일어서서 반갑게 맞이한다. 한참을 얘기하시다가 가방에서 조그만 봉투를 하나 꺼내신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신다.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예상치도 않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우리는 그냥 받을 수 없다며 손을 내 저었다. 그제야 누님은 예전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때 손에 쥐어 준 코 묻은 돈으로 누님의 서울생활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네 알량한 그 저금통을 부순 마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고. 그제야 예전의 까마득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우린 다시 손을 저었다. 그때 얼마 안 되는 거였다고. 이렇게 많이 받을 수는 없다고. 누님이 얘기하신다. 그래 지금은 이게 나도 얼마 안 되는 거니 그냥 받아두라고. 돈의 액수는 달라도 마음은 똑같은 눈금이니 받아 두라고. 옆에 있던 아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고맙다고 하며 받아 든다. 내가 집어서 다시 누님께 드리려고 했지만 한사코 사양하고 먼저 일어나서 나가신다. 문밖으로 나가시는 뒷모습에서 어머니가, 왕고모가 얼핏 스쳐간다. 고맙습니다 누님.


어쨌든 어렸을 적 일이 도화선이 되었을까. 살아가면서 나누고 비우는 습관이 점차 익숙해졌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경쟁피티를 했는데 우리가 떨어졌다. 떨어지면 그동안에 들어간 모든 경비는 온전히 우리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클라이언트 사장이 매우 상식적인 분이어서 피티준비 비용을 어느 정도나마 보전해 주어야 한다며 일정액을 보내온 것이다. 우리 쪽에서도 놀랐으나 내 상사는 감사한 일이라고 그대로 수령하였다. 고마운 일은 사실이나 나는 조용히 그동안 들어간 실비용을 계산해 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들인 비용보다 많이 보내온 것이다. 나는 상사에게 올라가 그 차액만큼 돌려주자고 했다. 상대가 업계 처음으로 그만큼의 호의를 베풀었지 않은가. 그런 따뜻한 마음을 우리도 조금은 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상사는 내 제안을 들어 차액을 돌려주기로 하였다. 그러고는 우리는 한참 그 일을 잊고 있었다. 어느 날 그 클라이언트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 새로 나온 브랜드 건을 경합 없이 우리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우리가 경쟁하여 떨어진 브랜드의 마케팅 액수만큼의 큰 금액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보전해 준 피티 비용을 되돌려 보낸 사실을 그쪽 사장님이 듣고 적이 놀랬다고 한다. 경쟁에서 떨어져 보전받은 다른 회사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유독 우리 회사만 실비용만큼 받겠다는 그 순수함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 베푼 만큼 돌려 드린 것뿐인데 그에 대한 보답은 몇 백배로 돌아온 것이다. 마음을 비우니 그만큼 채워준 것이다.


어쨌든 그러저러한 사건 이후로 나의 비움과 나눔의 생각은 강화된 것 같다. 한 번은 내 차례가 되어 당연히 받아도 될 대통령상을 선배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만약에 내가 받아서 이력서에 한 줄 올라갔더라면 내 성격에 기고만장하여 얼마나 떠들고 다녔겠는가. 이만큼 겸손하게 나이를 먹게 해 준 것에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돌아가신 왕고모께 감사한 일이다. 가지고 있어 봐야 곧 부질 없어질 것들은 빨리 나누는 게 좋은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 가셨으니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빼기와 나누기가 중요한 것임을. 때로는 비울수록 더 많이 채워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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