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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바나 Aug 09. 2024

나는 나쁜 딸이지만 인간은 다 나쁘다

엄마가 우리 신혼집으로 요양을 왔다. 엄마의 상태는 정말 심각했고 임시방편이라도 하지 않으면 큰 일 날거같아서 내가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 나는 엄마의 밥을 신경 써야 했고 엄마의 부탁과 요구사항을 그때 그때 들어줘야 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신경 쓰이지 않게 태도를 취해야 했다. 어느 곳보다 편했던 집에 꽤 많은 제약이 생겼고 마음속에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이 힘든 것은 육체적 노동뿐만은 아니라는 걸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부모이기 때문에 참 나와 닮은 그 사람이 이제는 나이가 들고 병에 걸려 기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자면 마치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희망보다는 좌절감과 우울감이 든다. 자꾸만 마음 어딘가가 매여있어서 밖에 나가도 그리 자유롭지가 않다. 그래도 그 힘든 걸 좀 잘 참아내고 친절하게 대했으면 좀 좋았을까... 인내심은 채 4일을 가지 못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불편함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눈치를 보고 미안해하기 시작했다. 그게 마음이 안 좋으면서도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막아지지를 않았다. 엄마는 나를 참 많이 참아줬는데 나는 4일을 못 가다니, 나는 정말 못돼 처먹은 딸임이 분명했다.


일주일은 요양을 하기엔 짧았지만 그 사이 엄마는 아주 조금 좋아졌다. 아직 20대인 나이, 다른 부부들은 아이를 낳고 부모님께 양육을 부탁하는 시기에 내 삶에는 부모님 봉양이라는 이슈가 서서히 던져졌다. 마음이 무겁다. 부모님은 늘 나를 위해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는데 나는 부모님을 위해 작은 것 하나 하기도 버거워한다. 처음에는 그런 나에게 실망했었다. 그렇지만 죄책감은 엄마를 돕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아니 오히려 방해만 되기에 그냥 자기 합리화를 하려고 한다. 그냥 원래 인간이 이런 거라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도리를 하려는 그 마음이 중요한 거라고 말이다. 내가 서있어야만 엄마를 도울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한 부모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도 비교하지 않으려고 한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언젠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시기가 온다. 나는 그 시기가 좀 더 일찍 왔을 뿐이다. 억울한 마음보단 당연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 다른 과제가 주어진다. 이건 나의 과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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