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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Nov 14. 2018

이따금 굳건히 서 계시던 보험 아저씨가 생각난다.

유독 더웠던 올여름 이야기다.

베이지 톤의 여름 정장을 위아래 세트로 말끔히 갖춰 입었다. 넥타이도 맸고 내 기억이 맞다면 발치에는 서류가방과 물 한 병 그리고 전단이 놓여 있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장소는 뚝섬역 인근 택시 회사 주차장 입구. 시간은 토요일 정오쯤이었다. 해가 높이 솟아 가만히 있어도 진이 빠질 만큼 더운 날씨에 그는 차고지로 복귀하시는 기사님들께 열심히 전단을 건넸다. 택시가 들어오지 않을 땐 미동 없이 차렷 자세로 서 계셨는데 흐르는 땀을 닦으시라 손수건이라도 드리고 싶을 만큼 더위가 느껴졌다. 전단을 흘긋 보니 자동차 보험 상품을 소개하는 내용 같았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기사님이 아저씨를 지나쳤고, 그의 열심만큼 방법이 효과적인 것 같지 않았다.


흔치 않은 풍경이라 자꾸 시선이 갔지만 볼수록 불편 한 마음이 생겼다. 이제 곧 더웠던 여름만큼 추운 겨울이 올 텐데. 왜 일까? 무엇이 그를 거리로 나오게 한 걸까? 오늘 눈을 뜨고 또 감기까지 어떤 의지로 손과 발과 머리를 움직일까. 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따금 굳건히 서 계시던 보험 아저씨가 생각난다. 자유를 누리고자 책임을 견디고 계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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