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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마트에서 웃다

Laughing at H-mart

by 최 콩

미국 집에서 로 20~30 분거리에 H- 마트, 롯데마트, K 마트 등 한인마트들이 있 는 외국에서 사는 것치곤 가까운 거리에서 그리운 한국 식재료를 쉽게 공수할 수 있는 편이다. 하지만 미국 정착 초기에는 운전이 서툴러 가까운 거리여도 한인마트에 선뜻 쉬이 가지 못하고 어떻게든 가까운 미국 마트에서 먹거리를 사 오는 것으로 보기 방향을 정했었다. 하지만 2주도 안돼 한계가 오고 나는 H마트로 달려가게 된다.


엄마 찜닭이 먹고 싶어요


"엄마 매콤한 찜닭이 먹고 싶어요! 넓적 당면 넣고 해 주세요 얇은 거 말고 꼭 넓적 당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국할 때 당분간 먹을 한국 식재료를 챙겨 오면서 일반 당면 한 봉지도 가져왔다. 그러나 딸은 꼭 찜닭에 넙적 당면을 넣어 달란다. 딸의 특명을 받아 간 한인마트에서 딸이 원하는 당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당면뿐이겠는가? 한국에서 봐왔던 익숙한 재료가 즐비하다. 한인마트만 가도 숨통이 트이고 뭔가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든다. 분명 한국에서는 별로 먹지 않던 것인데 한국음식이라는 이유로 사고 싶고 먹어보고 싶어진다.

넙적당면을 넣은 찜닭

미국 현지 마트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에서 산 꽈리고추와 알디(ALDI)에서 산 할라피뇨가 찜닭의 매운맛을 담당한다. 하지만 오늘 찜닭맛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넙적 당면이다. 가족들은 당면을 건져 먹느라 젓가락이 바쁘고 딸은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했다.


김밥에 단무지가 없다면 너무 서운해


미국에 와서 제일 많이 만든 음식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1등은 김밥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김밥을 많이 쌌었다. 방학 때 점심식사를 챙겨놓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김밥은 언젠가부턴 우리 집에서 늘 함께인 음식이었다.


미국에서 도시락을 싸게 되면서 김밥을 더 자주 만들게 되었는데 김밥의 속재료 중 다른 것들은 안 들어가거나 대체가 가능하지만 나에게 단무지만큼은 꼭 어서는 안 되는 김밥의 필수 재료이다. 따라서 미국 집 냉장고에 단무지는 항상 구비돼 있고 떨어지기 전에 나는 한인 마트로 갔다.

아이들 도시락으로 싼 참치김밥

미국에서 음식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원하는 모든 재료가 없더라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김밥을 쌀 때는 모든 재료가 다 있어야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참치 김밥을 쌀 때면 꼭 깻잎 있어야 했다. 깻잎이 없다면 반드 마트에서 구입 후에 김밥을 쌌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깻잎을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깻잎 이외의 재료도 최소화해 만들었다. 참치, 계란, 단무지 세 개만으로도 밥의 간만 맞으면 충분히 맛있는 참치 김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재료가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 ' 없으면 없는 대로 해도 괜찮아!' 단무지 너만 있다면 말이다.


나... 팥죽이 먹고 싶은 거 같아


동짓날이다. 한국에서도 잘 챙기지 않았는데 팥죽이 먹고 싶어 졌다. 라인 카페에서는 팥죽을 파는 음식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는 또 한인마트로 갔다. 팥 한 봉지를 구입해서 유튜브 선생님의 팥죽 레시피를 찾아본다. 여러 가지 팥죽 레시피 중에 쉽고 간편한 레시피를 두세 번 반복해서 돌려 본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삶고 갈아서 끓이기만 하면 된단다.


직접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팥죽의 단 정도와 팥죽의 농도를 내가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덜 달게 적당히 단맛을 내고 팥을 다 갈지 않고 씹는 맛이 느껴지도록 통팥도 넣고 살짝 뭉갠 팥도 넣는다. 한마디로 달지 않고 씹는 맛이 느껴지는 나의 취향에 맞는 '최 콩' 표 팥죽을 만들고 싶은 거였다. 팥죽에 새알이 없다면 이 또한 아쉽다. 찹쌀가루를 사서 새알도 만들어 본다. 중학교 가정 시간에 새알은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을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어라? 차가운 물로도 잘 뭉쳐진다. 만들기도 어렵지 않네. 이렇게 만든 나의 미국에서의 새알 동지팥죽은 대성공이었다

갓 만든 팥죽 한그릇

뜨끈한 팥죽 한 그릇은 미국 음식점에서 사 먹는 수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내 몸의 '메이드 인 한국 세포'들이 반가워할 만한 소울푸드 같았다. 팥죽은 뜨거울 때도 맛있지만 식어서 차가운 팥죽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놀라운 점은 우리 집에서 팥으로 만든 음식은 나를 빼곤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남편도 아이들도 이날 팥죽 한 그릇씩 싹싹 비웠다는 점이다. '너희들도 팥죽 땡긴 거였어?'


아귀찜의 추억


미국에 있으니 한국보다 생선을 먹을 기회가 적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친구가 한인마트 생선코너에 아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정말이지 정겨운 아구(monkfish)를 팔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귀찜을 할 수 있을까? 역시나 유튜브 선생님을 찾아보니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간사이즈 아구 두 마리를 사고 콩나물도 산다. 그런데 한인마트에서도 미나리를 찾을 수가 없다. 미나리 없으면 서운한대.. 미나리 대신 생파슬리를 넣으면 미나리 식감을 대신할 수 있다는 친구의 추천에 따라 생파슬리를 넣어 공을 들인 아귀찜을 완성하였다.


아귀찜은 나에겐 추억의 음식이다. 어릴 적 엄마는 아빠 생신이나 집에 온 가족이 모일 때 아귀찜을 종종 하셨다. 아귀찜을 먹는 날은 분명 좋은 날이었다. 엄마의 아귀찜은 맵지 않고, 간도 적당했으며, 하루이틀이 지나면 국물맛이 더 깊어져 그 국물에 밥을 볶아먹거나 비벼먹곤 했다. 버지니아에서 내가 만든 아귀찜은 엄마의 깊은 맛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 맛에 닮아가려 애쓰며 만들어보았다.

미국이 아귀찜도 만들게 한다

아이들은 아귀찜을 먹지 않기에 남편과 나는 둘이서 저 많은 양을 고추냉이 장에 찍어 가면서 배불리 먹었다. 그야말로 든든히 아귀찜 포식을 한 만찬이었다. 미국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며 이러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한인마트에 장을 보러 가려한다. 마트에서 냉이나 달래, 봄동 같은 봄철 음식을 발견한다면 아마 기쁜 마음으로 또 담아 오겠지. H 마트에서 장 볼 때마다 돌아가신 한국인 엄마가 생각이 나서 울었다는 미셸 자우너의 'H 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은 나는 오늘 한인마트에서 익숙한 우리나라 식재료들을 사 오면서 한국에 엄마가 계신 것에 감사하며 웃으며 영상 통화 한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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