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에 안경닦이 먹는 하마가 살고 있나 봐
나는 집안일 중 빨래 개기가 제일 싫다. 빨래하기는 세탁을 하지 않으면 당장 입을 옷이 없으니 평균 주중에 두 번 주말에 한번 열심히 세탁기를 돌리나 세탁 후 건조를 마친 빨래를 개는 일은 그야말로 나에겐 귀찮은 일이다.
회사를 다닐 땐 건조가 끝난 빨래를 거실에 펼쳐놓으면 가족들이 거기서 그냥 옷을 찾아 입기도 했고, 거실에 가져다 놓는 것조차 못할 때에는 건조기에서 바로 옷을 찾아 입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라지는 양말
특히나 빨래 개기 중에서 '양말 짝 맞추기'란 나에게 있어 영원히 맞추지 못하는 퍼즐 같다. 온갖 색이 다른 양말과 길이가 다른 양말이 뒤섞여 짝을 맞추지 못한 양말이 반드시 하나이상 나온다.
이렇게 짝이 없는 양말은 별도로 따로 모아놓아 다음번에 운 좋게 짝을 맞추면 옆에 양말 칸으로 옮겨지나 영영 짝을 못 찾은 양말은 결국 창틀 먼지를 한번 닦고 버려지는 존재가 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2년 전부터 우리 집의 양말은 대부분 검정 양말로 통일하여 구입하여 양말짝 찾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감소 되었으나 색은 맞췄지만 아직 길이 맞추는 것까지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어 같은 색의 양말을 신은 날도 오른쪽은 장목, 왼쪽은 중목의 양말을 신고 있는 날도 종종 있다.
사라지는 머리끈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다이소에 가면 주기적으로 집어 오는 품목 중에 하나가 머리끈이다.
" 엄마 머리끈 있어?"
" 응? 저번에 사줬잖아. 없어? 침대 밑에 봐봐.."
" 없는데? "
" 거실 화장실에서 하나 본 거 같은데"
" 젖었잖아... "
" 야.. 너 학교 늦어, 이거라도 그냥 하고 가"
양말 짝 찾기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분이라도 머리를 묶는 단발이상 머리길이의 분이라면 공감가능한 이야기가 머리끈 찾기가 아닐까 한다.
나는 30대 후반 이후 단발머리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출근을 할 때는 아침에 머리를 감은 게 아까워서라도 드라이를 한 머리에 헤어 에센스를 바르고 풀고 간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두 세시쯤 되면 단발머리도 뒤로 질끈 묶고 싶어 진다. 특히 언제부터인가 그날 완료를 해야 하는 기안문이 있거나 다른 미션이 있는 날은 맥심 믹스 커피 한잔 마시기와 머리 질끈 묶기가 회사에서의 오후 리추얼이 되어 버렸다. 머리를 묶기 위해 회사에 여분의 머리끈을 가져다 놓았지만 어느샌가 그 머리끈은 발이 달렸는지 다 사라지고 없고, 나는 회사 서랍을 뒤적여 노란 고무줄을 찾아 머리를 묶거나 노란 고무줄 마저 없는 날엔 옆자리 앞자리 동료들에게 고무줄이 있냐고 묻곤 했다.
그 많던 안경닦이는 어디 갔을까?
우리 가족 네 명은 모두 안경을 쓴다. 미국으로 오기 전에 동네 단골 안경점에서 가족 모두 여분의 안경을 하나씩 더 맞추면서 안경점 사장님께서 안경닦이를 10개나 챙겨주셨다. 평상시에 안경나사를 조이거나 안경코받침을 교체하러 갈 때에도 안경닦이를 챙겨주시는 인심 좋은 사장님이시다. 이번 안경닦이는 런던의 타워브리지, 빅벤 등이 인쇄된 안경닦이였다. 미국에 온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10개의 런던 안경닦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행정팀에서 일을 하고 직장 후배 A는 재무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안경닦이가 없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안경이 잘 안 보이면 나는 재무팀 A에게 간다.
A 자리에는 모니터 앞에 늘 반듯하게 고이 접혀 있는 파란색 안경닦이가 있다.
"똑똑, 안경 좀 닦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그 해 나의 생일날 A는 카드엽서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이 프린팅 된 다른 그림의 안경닦이 세 개를 선물했다.
"팀장님, 가방에도, 차에도, 회사 책상에도 하나씩 놓고 쓰세요. 그렇지만 안경닦이가 있어도 제자리엔 한 번씩 꼭 오세요! 생일 축하드려요 "
A의 이 방법은 놀라웠다. 안경닦이에 각자 자리를 정해주자 생존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빨강머리 앤 안경닦이를 한 개나(?)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 사라지는 안경닦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없을까?
여긴 한국처럼 편하게 갈 수 있는 동네 안경점도 없어 아마존에서 안경닦이를 주문해야 한다. 안경닦이를 서칭 하던 중 나에게 좋은 생각이 났다.
양말 색 맞추기와 회사후배의 방법을 결합한 해결책인데 가족 네 명에게 각기 다른 색의 안경닦이를 지정해 주고 각기 다른 자리에 놓는 일이었다.
아마존에서 이런 나의 니즈에 딱 맞춘 듯한 여덟 개 들이 네 가지 색상의 안경닦이를 4달러에 판매를 하고 있지 않은가!
배송 온 안경닦이를 가족에게 각기 두 개씩 다른 색으로 나눠주었다. 거실 공통 함에 안경닦이를 하나씩 놓고 나머지 여분의 하나씩은 남편은 차에 첫째는 학교가방에 둘째는 도시락 가방에 나는 시장 다닐 때 휘뚜루마뚜루 들고 다니는 작은 가방에 두도록 자리를 정하였다.
그러자 우리 집 안경 닦이 찾기에도 봄이 왔다. 각자 색이 다르니 서로 내 거라 우기면서 싸울 일은 없다. 여덟 개 모두 잘 있냐고 물어보신다면 자신이 없지만 그전보다 확실히 개선되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열 개의 런던 안경닦이는 왜 한 개도 안보일까? 음.. 그건 그날따라 배가 무지고픈 안경닦이만 골라먹는 하마가 잠깐 우리 집에 다녀간 걸로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