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픈 두 다리로 날아갈 것 같이 가벼운 행복을 품고 있기는 버거운 일이다.
날아가는 행복을 붙잡고 나도 같이 날아가면 될 일인 것을.
나는 이 땅에 뭐 그리 욕심이 많은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땅에 처박고는 꿋꿋이 버텨낸다.
뭐가 그리 중요하길래 웃는 얼굴은 내팽개치고 입꼬리마저 땅속에 처박아 둔 것일까.
흡연자들이 연신 담배를 피우 듯이 나는 게으름을 뻐끔뻐끔 피운다.
들숨에 게으름을, 날숨에 영혼을 태운다.
어느새 몸 안에 영혼은 동이 나고 육신은 메말라 흙이 되었다.
살아남은 정신은 꿈틀꿈틀 지렁이가 되어 고통의 몸부림을 친다.
어서 촉촉한 흙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렁이는 가는 둥 마는 둥 진전이 없어 보인다.
진전 없는 침체는 발암물질처럼 나를 병들게 했다.
차라리 건강을 위해 담배를 피워볼까.
요즘은 CD나 LP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워낙 레트로를 좋아해서 점점 더 과거로 향하고 있다.
자주 과거에 사는 내게는 알맞은 방법이지 않을까.
문득 과거를 지나가다 너를 마주쳤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아무런 추억도 없는 채로.
아무튼 앨범 안에 든 한두 곡을 위해 통장 잔고와 동시에 집의 공간도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파민을 위해 어쩔 수 없다.
블루투스를 연결해 손쉽게 좋아하는 곡을 듣는 것과 가수가 직접 순서를 정한 앨범 속 서사를 듣다
마침내 좋아하는 곡을 듣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 전율을 위해 끈기 있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끈기 있게 들어낸 것치고는 끈기 없는 행복인 것을 알지만.
책을 열어 세상을 배우고 구경하고 꿈도 꾼다.
책을 덮으며 세상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
부질없는 일 같지만 몹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잠시라도 삶이 삶 같아서.
태어났음의 불편함이란 책에는 굉장히 흥미로운 글이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나를 견딥니다"라는 답변을 한다.
나 또한 온종일 나를 견뎌내는 일을 한다.
이것이 내 일이자 직업이고 삶인 것처럼.
하지만 나는 자주 아니 매일 같이 견뎌내기를 포기한다.
도무지 나는 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살고는 싶어서 몸을 구겨 비좁은 탈출구를 이용한다.
비좁은 탈출구 안에는 비겁한 것들이 잔뜩 모여져 있다.
그중에서 나는 강박을 꼭 껴안는다.
강박은 불완전함을 꽤나 그럴싸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버리고 그의 노예가 되기로 자처한다.
이것들은 연약한 오늘을 살게 하고 살게 할 가냘픈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