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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량 Jan 07. 2024

같은 이야기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갖는 희망

FANDOM :: 팬더머블 띵

강준만 ·강지원,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 소통 공동체 형성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팬덤』

(인물과사상사:2016)



“난 네 말이 잊히지가 않아.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이 종교인 그것과 비슷하다는 말. 그다음부터는 네 모습이 신기한 게 아니라 나랑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거든.”


    태어나 자라는 내내 종교를 마음의 의지할 데로 삼아 온 고등학교 친구가 내게 종종 하던 질문은 ‘너 아직도 걔네 좋아해?’, ‘걔네가 왜 좋은데?’ 같은, 재차 설명해도 친구의 궁금증에 답이 되기에는 부족하기만 한 것이었다. 나도 신전을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태어나 줄곧 믿음을 강요받던 나는 고분고분하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를 지나 ‘참지 못하는’ 성질머리의 싹이 발현되기 시작하던 고학년 무렵부터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분은 어디에 존재하나요?’, ‘왜 우리가 그분을 믿어야 하나요?’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분의 실재함 그저 받아들이라 하였지만 나는 결국 초등학교 6학년쯤부터 신전 출석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내가 찾은 믿음에 탐닉했다. 그건 아이돌이었다.


“너 매번 정기적으로 어딘가에 가서 같은 대상을 따르는 사람들을 만나 노래 부르고, 그의 말이 담겨 있다는 책을 읽고, 가끔은 다 같이 놀러 가서 옷도 맞춰 입고 즐거운 시간 보내지? 나도 그래. 처음 만난 18살부터 10년이 지나도록 같은 질문을 일삼던 친구의 눈이 보기 드물게 크게 뜨였다. 친구의 뿌리 깊은 신념 체계에 맞춘 설명은 [이해 100%]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의 이야기가 아주 보편적이고도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인식했고 나의 예민함과 섬세함이 결을 같이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돌의 노래로부터 보편의 공감을 얻고 특별한 위로를 받으며 내 삶에 살을 붙여나갔다. 그러니까 이건, 팬 생활은, 내게 종교의 다른 이름이자 믿음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내게 아이돌은 더 이상 예전만큼 중요한 삶의 화두가 아니다. 십 대 내내 god-세븐-보아-동방신기를 거친 아이돌 애호의 계보는 대학을 들어설 무렵 맥이 끊겼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시점에 팬덤의 저변을 확대한 <프로듀스101> 시리즈로 부활해 윤지성-몬스타엑스-세븐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좋아하는 대상을 달리하며, 그들이 음악으로 전하는 메시지와 삶으로 표현하는 가치를 내 삶에 녹여내며 나의 화두 역시 변모해 왔다. 그사이 나는 음악 산업과 가까이한 일 경험을 쌓아왔고 내가 그리던 이상적 진심을 현실적 전략과 견주며 일의 지향 역시 각도를 달리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이 주는 즐거움보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연대(팬덤문화)와 그 연대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성장(내면탐구)에 더 크게 감응한다.





“우리가 주목한 테마는 ‘소통 공동체 형성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팬덤’이다. 스타도 중요하지만,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소통, 연대, 결속, 우정 등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가 스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p.16)
“같은 취향이나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주는 기쁨은 매우 크다. 영국 시인 존 돈Jonh Donne이 갈파했듯이, “그 누구도 섬은 아니다 No man is an island”. (p.104)
“동방신기에 열광한다는 것은 동방신기 자체에 열광하는 것에 더해 팬들 간의 강렬한 연대감에 매혹된다는 뜻일 수 있다.” (p.112)
“혼자만 스타를 좋아하면 무슨 재민겨. 스타는 다른 사람들, 특히 또래집단과 더불어 같이 좋아해야 재미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재미 이상의 의미까지 찾을 수 있다. 팬덤 공동체 내부에서 얻거나 획득하는 위로, 인정, 만족, 소통, 연대, 결속 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p.238-239)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2016년에 발간된 책은 공동 저자가 팬 생활 경험이 있는 딸과 그 아버지이면서 동 대학 언론학도라는 특성답게 경험적 사실풍부한 참고 자료에서 비롯한 객관성이 어우러져 따뜻한 시선과 유익한 질문으로 서술돼 편하게 읽힌다. 팬덤문화에 관한 공부로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책의 표현을 빌어)빠순이로서 빠순이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대단히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형식과 밀접하게 관계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빠순이나 덕후 대신 팬/팬덤, 덕질 대신 팬놀이ㅡ<슬램덩크>의 인기와 함께 널리 쓰인 ‘농놀(농구놀이)'에서 차용한 것이 맞다ㅡ/팬활동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순이’, ‘-질’ 같은 표현에 내재한 비하와 자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서는 빠순이와 그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것을 드러내어 사용함으로써 다른 의미를 축적하고 획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지만 2016년으로부터 7~8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발적인 제목에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선정한 책이었으나 결론적으로 내가 공부해 가고자 하는 관심사와 결을 같이 하는 책으로 여기게 되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소통 공동체 형성을 위한 투쟁으로서의 팬덤’에 관한 논의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이거야!’라는 반가움이 드는 서두였다. 케이팝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팬덤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가능성과 한계까지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좋은 동료이지만, 팬으로서의 삶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버지와 이제는 팬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딸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외부자의 시선은 저자가 학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팬덤의 다양한 면면을 다루고 있어 팬덤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입문서로 읽기를 추천하고, 다만 유행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특성상 팬덤의 양상과 논의의 주제 역시 빠른 속도로 변화하며 전개되기에 현재와는 다른 부분이 제법 많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팬덤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관한 이해, 더 좁게는 스스로에 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느낀다. 팬이라는 개인의 결핍, 동기, 욕구와 팬덤이라는 집단의 선호, 갈등, 성장은 인간의 미묘한 심리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특정 세대의 문제’라거나 ‘재밌자고 하는 일에 진지해지기 싫다’는 반응으로 탐구의 이상을 일축하는 사람들이 있다. ‘헤맨 만큼 자기 땅이 된다’는 글을 보았다. 나는 무엇을 진실로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넓은 세상을 열의를 다해 헤매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답이 없는 일을 자신의 삶과 용기 있게 얽어내기로 결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기에.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준 음악과 아티스트의 이야기, 그리고 팬덤으로서 경험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같은 관심사로 만났지만 삶이라는 더 큰 차원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결핍과 욕구를 헤아리고 집단 안에서 이를 회복해 나갈 수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 그를 동기 삼아 건강하게 가능한 한 오래 활동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나와 연결된 모두가 자기 삶을 온전하게 누린다면, 진실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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